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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차원 Nov 06. 2024

자신이 자신의 이유인 때가 있습니다

오만함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 우리는 자신마저도 속입니다. 타인을 각각 다르게 대할 때가 그렇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상대에게 있어서라며 변명하지만, 속을 열어보면 이유는 자신 때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누군가를 어떤 시기에 만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입니다. 나이, 경제적 여건 같은 외적인 상황보다, 마음에 틈이 있는지, 잠시 눈 돌릴 겨를이 있던 때인지가 태도를 결정해 버립니다.


몇 년 전 한창 부산을 다닐 때입니다. 듣던대로 부산은 외지인이 운전해 다니기에는 확실히 어려웠어요. 저도 자주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H를 조수석에 태우고 광안대교에서 잘못된 길로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운전하면서 그렇게 짜증을 많이 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을텐데 그랬습니다.


그 짜증을 옆에서 들어내고 있는 H가 없었다면 그러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순간 머리를 식히기까지 나는 10여 분을 혼자 신경질을 냈고 그 뒤로도 나빠진 기분을 따라 말도 없이 운전만 하고 있었습니다.   

  

부경대학교에서 벡스코쪽으로 광안대교를 타고 가다 다리가 끝나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가야하는 걸 우측으로 잘못 들었을 때까지는 길을 틀렸나보다 했었는데, 그렇게 한번 잘못 빠졌다고 20여 킬로미터를 돌아가야 한다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본 순간부터 짜증이 시작됐습니다.


H가 그렇게 안내한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그의 존재에 기대어 더 분을 내며 마치 보란 듯이 썩은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습니다.     

“미안해, 내가 길을 좀 봤어야 했는데.”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그가 이유도 없이 사과 해오고 나서야 마음이 풀렸지만, 부끄러움을 안 건 그 뒤로 한참이나, 그러니깐 2년 정도가 지나 우연히 그때를 기억한 날입니다. 그날 나는, 염치없게도 H를 자주 그렇게 대했다는 것을 쉽게 인정해버렸습니다.


내가 L에게는 어디까지나 품어주는 사람이었던 것을 보면, H에게 유독 못되게 굴었던 건 못난 일입니다. 여기서 H에게서도 잘못을 찾으려 할 필요는 조금도 없습니다. 변명은 내가 해야합니다.


해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때에, 나는 조금의 겨를도 없었습니다. 가슴팍은 겨우 손바닥 한뼘 조금 더 되는 넓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으려 했던 건지, 분명 3차원의 공간이었다면 턱도 없을 것들이 중첩되고 중첩되어 바늘을 찔러넣을 틈도 없었습니다. H를 만났을 때가 그랬고, 쉽게 그를 마음 밖에 둔 것이 내 태도가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H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애쓴건 그였고, 다른 누가 그렇게 호의를 베풀었다면 배로 되돌려주었 법한 일이 많았습니다. 부담으로 불편하게 받아들인 건, 고마워할 겨를조차 없던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선의가 기억되어 다행입니다. 반성과 변명을 헷갈리지 않을 수 있게 된 때에 이른 것도 그렇습니다. 오만한 태도를 취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속여 자신을 허상에 그려두지 않아도 마음이 괜찮은 요즘입니다. 그가 나쁜 것이 아니었고, 나는 버거웠던걸 인정합니다. 그런 때도 지나가는 것이었다니, 다행입니다.     


퇴사한 뒤 고향으로 내려와 있던 중, H로부터 그룹 건설사의 교육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라면만 먹고 지낸다는 말이 안쓰러우니, 서울에 가게 되면 그가 맛있다던 밥이라도 한번 사야겠습니다. 혹시 H에게 버거운 때가 시작되었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기억할 만한 한 번의 선의가 될 수 있도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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