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딸기농장에 딸기를 따러 체험 가는 날이었다. 엄마표 김밥을 싸주기 위해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분주히 쌀을 씻고 불리고 밥을 안치고
계란. 당근. 단무지. 햄을 썰어 휘리릭 볶아 김밥 속 재료를 준비했다. 이제 돌돌돌 말기만 하면 되는데 시간은 왜 이리 빨리 달아나는지. 정말 붙잡을 수만 있다면 시간이라는 녀석을 붙잡고 싶었다. 김밥을 싸놓으면 아이들이 옆에 앉아있다가 먹고 또 먹어치웠다. 그러다 보니 도시락에 넣을 김밥이 부족했다. 얼른 방울토마토를 씻어 도시락 한 귀퉁이에 살포시 함께 담았다.
내가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날은 그 전날부터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내일 비가 오면 어떻게 하지?
내일은 엄마가 김밥을 예쁘고 맛있게 싸줄까?
차멀미를 하면 안 되는데...' 하는 온갖 걱정을 하며
소풍 전날 잠을 설쳤다.
소풍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생긴 친구들의 도시락을 바라보니
내 도시락 뚜껑을 열기가 망설여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드디어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내 기대와는 달리 한쪽으로 쏠려서 모퉁이가 다 찌그러진 김밥.
여름철 더위로 쉬어버린 김밥.
친구들의 김밥은 오이가 들어가서 아삭아삭하고 색감도 곱던데 내 김밥은 안에 들어간 시금치에서 수분이 나왔는지 물기가 촉촉하다 못해 줄줄 흘러 씹는 식감이 영 좋지 않았다.
그 시절엔 철부지여서
'엄마는 김밥가게에서 김밥을 사서 싸주지 왜 맛도 없고 모양도 엉망인 김밥을 자꾸 싸주는 걸까?' 하며 투덜댔다.
세월이 흘러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들 소풍날 아침에 김밥을 싼다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엄마는 365일 쉬는 날 없이 야채 장사를 하시면서 많이 피곤하고 고되셨을 텐데.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김밥을 열심히 싸주셨을 텐데. 왜 그 마음을 몰랐을까?
내가 소풍날 신이 나서 뛰어서 가방이 많이 흔들려서 김밥 모양이 흐트러졌을 텐데...
여름이어서 무더운 날씨 때문에 김밥이 쉬었을 텐데...
당근과 오이를 같이 먹으면 몸에 안 좋다길래 오이 대신에 시금치를 김밥 속에 넣으셨을 텐데...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그 마음이. 그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어렸을 때 미처 몰랐던 것들을 내가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어보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식을 낳아보니 늘 내 시간은 아이들에게만 내어주는 게 미안한 순간들이 많아졌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내 머릿속에 가득 담겨있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빵도 시장에서 파는 값싼 꽈배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라고 했다.(이기주 작가님) 다음 주 쉬는 날에는 엄마 가게의 문을 열어드리고 가게 앞에 있는 보쌈 가게에서 보쌈을 사드려야겠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내 마음의 빚이 더 많이 쌓이기 전에
엄마와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함께 밥을 먹어야겠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다.
엄마와 함께할 시간이 이제 나에게 아주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나도 모르게 알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