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 마케터가 AI 세계에 뛰어든 이유
문과생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는 걸까?
저는 문과생입니다. 고등학교 때 영어, 대학교 때 국어를 전공했어요. 대학 시절 CC였다는 저희 부모님은 경영학과 철학을 전공하셨죠. 인문학이 답이네, 책이 도끼네 하던 호시절에는 문과생의 삶도 썩 괜찮았습니다. 오히려 ‘기술을 활용하는 건 상상력을 가진 사람의 몫이지!’ 라며 나름 자부심도 있었고요.
2016년, 그 유명한 알파고가 제 얄팍한 자부심에는 근거가 없었다는 걸 일깨워 줬습니다. 체스는 몰라도 바둑만은 절대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 없을 거라더니, 바둑으로 세계에서 짱먹던 이세돌을 4:1로 이겼잖아요.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 게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AI의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는 걸 보니 이건 반짝하고 사라지는 유행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 메가트렌드 같습니다. 인터넷처럼요.
인터넷이 막 대중화됐을 땐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더욱 다양해졌다는 이야기가 함께 나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따뜻했죠. 영화 ‘접속’이나 ‘유브 갓 메일’처럼 로맨스가 있었고요. 그런데 왜 AI가 언급될 때면 사람을 대체할 거라는 무시무시한 미래부터 떠오를까요? 초당 1억 장의 법률 문서를 검토하는 로스, 수십만 명 환자 정보와 1500만 페이지 의학 자료를 보유한 왓슨.1) 얘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기냔 말이죠.
보아하니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만 노리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소설 쓰는 AI, 기사 쓰는 AI까지 나오고 있으니까요. 상상력을 가진 사람의 역할만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을 거란 예측도 의심스럽습니다. 이젠 심지어 제 밥그릇까지 노리고 있더라니까요.
“얼마 전 마케팅부서에서 일하던 250여명이 정리해고되었다. 알고리즘으로 그들의 일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AI로 대체된 250명의 마케터' 중2)
아니, 그나마 문과생들 먹고살 길인 마케팅까지 기계가 다 해 먹으면
우리 문과생들은 이제 뭘 해야 하죠?
알파고가 인간을 이긴 게 고작 2년 전 일인데, 그새 AI가 세상을 이만큼 바꿔 놓았습니다. 이쯤 되니 궁금해집니다. 인공지능, AI는 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죠? 어떤 원리로 인간의 일자리를 꿰찰 수 있게 된 걸까요? 기술 발전 수준에 한계는 없을까요? 설마 세상을 지배하려 할까요?
이 질문에 제가 제대로 답할 수 있는 건 1도 없었습니다. 이제야 알게 된 겁니다. 제가 품고 있던 건 그저 막연한 두려움 뿐이었다는 걸요.
시대의 변화, 그 거대한 파도에 살포시 올라타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인터넷이 생길 무렵 다음 카페 찾아가며 배운 포토샵을 아직도 써먹는 저도 어찌 보면 수혜자고요. 인터넷만큼이나 세상을 뒤바꾸는 중인 AI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건 큰 기회를 놓치는 것일지 모릅니다. 기회뿐이겠어요. 내 일만 잘하면 되겠지 하며 손 놓고 있다간 제 자리를 쓱싹해갈지도 모르죠.
문과생인 제가 코딩을 시작해야겠다거나 학교로 돌아가 인공지능 학위를 따야겠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AI가 만드는 세상의 변화를 직접 이끌진 못해도, 그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확산될지는 알아야겠습니다. 변화 안에서 유연하게 내 길을 찾는 것이야말로 문과생인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리하여 저는 문과생의 신분으로 AI 세계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출처
1) 윤석만, 10년 뒤, AI 변호사·의사 등과 경쟁하려면… 내 핵심 역량은, <중앙일보>, 2018/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