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재미있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by 잡식성나니


웃음에는 종류가 있다. 떠오르는 대로 나열해도 미소, 조소, 냉소, 폭소, 실소. 아마도 더 있겠지. 웃음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공통된 조건이 있다. 웃게 하려는 대상이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은 상당하다. 패밀리라는 모체를 분화한 제목과 세 개의 챕터에 은은하게 냉소와 조소를 기대했던 나는, 물고기의 척추처럼 부드럽게 유영하는 스케이트보드를 따라 미소와 실소, 가끔 고소를 지었다. 어디, 어느, 어떤 과 무관하게 가족이라는 씨앗에서 발화한 웃음이 있다.


잠시 현실을 생각해 보자. 많은 상업 예언가가 인류가 세계화 시대를 졸업했음을 선언하고 AI 시대를 말한다. 다음 세대의 일론 머스크는 '신은 바로 나다'라고 외치지 않을까? 물리적인 확장을 마치고 디지털과 하나가 되어가는 오늘에 놀랍게도!

한 개인의 경험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특히 관계에 대한 경험과 깊이는 더욱 그렇다. 감정의 교류는 아주 많은 정신력을 소비하고, 소비량은 관계가 깊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때문에 관계의 심도는 '누군가 파괴되지 않는'이라는 제한선이 있다.


내가 이 영화에서 특히 시기하는 부분은 공백에 대한 이해도이다. 내 공간과 네 공간 사이. 대사와 대사 사이, 눈빛과 눈빛 사이, 동작과 동작 사이의 그 공백. 그곳에 감정의 교류가 있다. 이 미세함과 미세함 사이에, 날 기다리고 있던 유머가 '짠'하고 나타난다.

이것을 설계한 감독을 생각해 본다. 원하는 모든 관계를 맺 수 없고, 모든 관계는 원하는 만큼 조절할 수 없고, 충분히 깊어진 관계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삶의 공통점 중 하나이다. 이 한계를 넘기 위해 그는 타자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면밀하게 관찰해 온 걸까? 인간이 가진 성질 그 자체에 대한 덕질이다.

애정 없는 관찰은 튀어나온 한 올을 쓸어내리지 않으니까.


나도 나름 이 부분에 대해 욕심을 내며 살아왔다. 이해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유희의 의미도 있다. 인간은 재미있다. 재미있어서 사랑스럽다. 당장은 샘이 난다. 부럽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더 큰 재미와 사랑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면 기대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