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일 발목 철심제거 수술을 하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버렸다.
그동안은 발목뼈도 온전치 않고 수술을 한 부위의 상처도 다 아물지 않아서 최대한 조용히(?) 지내기 위해 노력했다. 워낙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해오던 나이기에 이런 식으로 갑자기 주어지는 '쉬는 시간'이 낯설기만 하다. 잘 쉬는 방법을 몰라서 그저 유튜브를 보고, 내 앞에 있는 고양이를 키우는데 집중하면서 살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오락가락하는 감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이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하고의 만남도 불편함이었다. 사람들은 항상 '이제 좀 괜찮아?'라고 물어오는데 괜찮을 리가 없기 때문에 수십 번 수백 번 그 말을 반복해서 듣는 것도 안 괜찮은데 그 뒤에 이어지는 설명을 하기 싫어 괜찮은 척하는 것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애초에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사람들을 만나야 하다 보니 그냥 만남 그 자체가 부담스럽고 불편해졌다. 혼자가 제일 편한 순간이었다. 혹은 나의 고양이와 함께 있는 순간이.
그렇게 또다시 찾아온 주말에 나는 고양이와 온전히 둘만의 시간을 즐겼다. 고양이가 혼자 견뎌온 평일날 기다림의 시간을 보상해주고 싶기에 나는 주말에 최선을 다해 고양이에게 힘을 쏟고 놀아주려 했다. 그렇게 고양이와 함께 하는 생활도 이제는 익숙한 나의 삶의 한 단면이 되어 버렸다. 생명을 케어하는 것에 미숙하다 느꼈던 내가 어느새 능숙하게 고양이의 밥과 화장실을 챙기고 케어하고 놀아주며 집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발전하고 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토요일 하루는 푹 쉬고, 일요일이 되자 계속해서 집안에 있는 게 쳐지는 기분이 들어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서 억지로 밖으로 나가보았다. 나는 원래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나 아픈 몸이 되고 나서부터는 자제를 하고 있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상태였다. 한 달이나 참았으니 잠깐은 괜찮지 않겠다 싶어 이제부터는 걷기부터 조금씩 늘려볼 생각으로 운동복과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산책하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조금 달려보려 했으나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걷기만으로 만족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한동안 다니지 못했던 산책로가 어떻게 변했는지, 산책하는 사람들은 어떤 표정으로 걷고 있는지 등을 바라보며 그리고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여러 고민들을 떠올려보며 내가 우리 집 고양이와 만났던 그 길도 다시 한번 걸어보며 그렇게 산책을 이어나갔다.
아무 생각이 없이 나갔지만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자연스럽게 등과 겨드랑이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휠체어를 타고 계셨던 분을 2분이나 만났다는 것인데, 가족의 케어를 받으며 산책을 하고 있는 모습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1년 전에는 나도 휠체어 생활을 몇 달간 했었기에 그 마음이 어떤지 너무나 잘 알기에 시선이 머물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걷지 못한다는 것은 삶의 대다수의 부분이 거세당함과 같다. 그 당시의 나는 그래서 다시 운동을 할 수 있는 건 바라지도 않았고, 그저 걷게만 해달라 하늘에 빌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내 발로 걷고 있고, 조만간 뛸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갑자기 지난 과거와 현재의 내 모습이 스쳐 지났다. 과거의 나는 걷기만 해도 세상이 행복하게 보였을 텐데 지금의 나는 무리 없이 걸음에도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현재 내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찾기 위한 물음표들이 이어졌다. 역시나 마음속에서 나오는 정답은 지난 몇 년간 동일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 그 원인이었다. 지금의 회사는 나에게 많은 것들을 경험시켜 주었고, 무엇보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밑천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했다. 하지만, 이 일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나는 나의 본연의 모습을 거부하고 그런 모습이 부정당하는 것을 묵인하고 지켜봐야만 했다.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나를 느끼며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한 용기와 에너지마저도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연을 끊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회사를 다니며 얻고 있는 이득 부분만을 바라보며 일을 그만두는 것에 미련과 아쉬움을 갖기도 했다. 그래서 쉽게 그만둔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가 다치고 난 이후 더욱 확실해졌다. 아마 내가 조금 더 크게 다쳤다면 나는 회사에서 잘렸을 것이다. 회사란 결국 이익을 위해 모인 집단이기에 사용가치가 떨어진 부품과 같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나를 혹사시키며 더 오랜 시간 버틸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시간을 쏟더라도 나를 위해주는 곳에 머물자. 만에 하나 내가 다치더라도 신체적인 결함으로 인해 일을 그만둬야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쪽으로라도 내가 활약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도와주는 그런 곳을 건강한 상태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나를 위해주는 것들로 채워야 한다. 사람도 일도.
그렇게 나는 어떠한 목적을 갖고 나간 것도 아닌 산책에서 자연스럽게 혼자 집에 있을 때에는 도달하지 못했던 내 안의 정답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1시간가량의 산책은 나의 몸도 마음도 홀가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산책은 나를 마주하고 나에게 답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임에 틀림없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이제 발목이 나아지고 있으니 자주 산책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느낀 감정을 잊고 싶지 않아 집에 돌아와서 컴퓨터를 켜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하루가 대단해지는 것은 큰일이 있어야만이 아니라 그저 이렇게 내가 나와하고자 한 약속들을 하나씩 지켜내고 해 나가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마음먹고 또 그것을 하나씩 성취해 나가는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따듯한 레몬티를 마시고 노래를 들으며 좋아하는 글을 쓰는 지금의 내 시간이 행복하다 느낀다. 고양이도 이제는 철이 좀 들었는지 이제는 혼자 있을 줄도 안다. 산책을 할 때에는 내가 글을 쓰고 싶은데 고양이가 와서 방해하진 않을까? 하고 걱정을 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이번 주말은 꽤나 만족스러운 주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