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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Jul 12. 2024

이사 준비

이사를 준비하는 일은 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사'라는 2글자를 보면 참 쉬워 보이지만, 정작 이사를 준비하게 되면 이사할 집을 찾고 계약하고 그 집에 들어갈 가전과 가구를 구입하고 청소일정을 잡고 처분할 가전가구를 정리하는 등 처리해야 할 일들이 꽤나 많다. 여태 이사를 하는 것은 부모님의 일이었고, 나는 내 방만을 정리하면 되었기에 이사에 큰 부담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임시거처가 아닌 정식거처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챙겨야 할 것들 산더미같이 존재했다. 나는 P형 인간이지만 사회화를 통해 일처리 방식이 J형으로 변화했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이사준비를 계획하고 모든 이사준비가 원하는 일정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열심히 알아본 것도 있지만, 그 외에 주변의 도움도 있었기 때문에 혼자일 때보다는 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30여 년간 쌓아온 짐들을 정리하는데 이 부분이 아이러니컬하게 가장 어렵게 느껴진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방을 알아보고 계약을 하고 돈을 주고받는 금전거래와 같은 부분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런 것들은 한번 결정을 내리면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깔끔한 일들이었다.


진짜 어려운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짐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짐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들이 들어있다. 그래서 돈거래처럼 깔끔하게 딱딱 떨어지는 사고판단이 어려워진다. 그렇게 쌓아온 물건이 하나둘 자리를 차지하다 보니 좁은 공간이 포화상태가 되어버렸고, 결국 보다 넓은 곳으로 이사를 결정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이사를 간 곳에서만큼은 여유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짐들을 정리할 필요가 생긴다. 


그렇게 그동안 쌓아온 물건들을 하나둘 버리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지 모르겠었다. 나는 모든 물건에 대해 여러 개를 소유하려 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화장품이며 가방이며 바지며 티셔츠며 점퍼며 다양한 종류를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습관이 생긴 이유는 쉽게 물건을 잃어버린다는 이유가 있기도 했고, 물건을 어디서든 손쉽게 찾아 쓰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개를 여분으로 사두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물건들을 소유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내가 가진 물건들에 둘러싸여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파악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버려 또 사고 또 사고 계속해서 사게 되는 일을 반복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는 물건들은 가차 없이 존재하다 잊혀 버리고 만다.


내가 나의 물건들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는 그러했던 것 같다. 대충 사서 쓰다 없어져도 그만이라는 마음가짐. 그렇기 때문에 소중히 대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지 않고 언제든 대체할 수 있다는 가벼운 생각을 하며 단순하게 물건의 양을 늘리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물건들을 쉬이 버리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 참 이상하지만.


이번 이사를 통해 그동안 내가 적당히 만족해서 사두었던 물건들과는 작별을 고하고, 잃어버릴 것을 대비해 적당한 가격의 제품을 여분까지 넉넉하게 쟁여두는 소비가 아닌 정말 필요한 물건을 제대로 된 걸로 사서 끝까지 잘 쓰고 잘 버리고 다시 사는 연습을 하며 물건을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리지 않게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파악하고 아껴 쓰는 연습도 같이 말이다.


물건에 속박되지 않게 살려면 조금 불편해도 가진 물건들을 최소화하여 쓸모 있는 것들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만 남기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이사는 어찌 보면 정을 붙이고 살아온 공간과의 이별을 뜻하기도 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나는 이번 이사라는 이슈를 통해 많은 것들을 버리는 연습도 해보고, 또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여태껏 살아온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그 당시의 나의 감정들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사가 참으로 귀찮은 일처럼 느껴졌는데, 이럴 때가 아니면 오히려 내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일부러라도 가져보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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