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공의 시작 전날
시작은
언제나 또 다른 끝에.
그 끝에서
아주 조금 더 나아간 자리.
그 자리에서 돌아보면,
익숙한 길들을 따라
한참을 와 있다.
하지만 앞을 내다보면,
갈 길 없는 덤불숲.
날카로운 덤불 가시에
생채기 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길을 내어야 한다.
그래도 행복하지 않은가?
상처를 참아낼
최소한의 인내가 있고,
앞으로 나아갈
충분한 힘이 있으니.
정신과 전공의 1년 차 시작하기 전날, 감상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글이다.
그래도 여러 복잡한 감정을 산문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가 없었다.
벌써 한참 전 일인데, 아직도 생생하다.
'한 평범한 의대생이 어떻게 정신과 전문의가 되었을까?'
적어 놓고 보니, 그리 중요한 질문은 아닌 게 확실하다.
하지만, 이 세상 누군가는 궁금해하리라 믿는다.
내가 의사로서 제구실을 하기까지 의대생, 인턴과 레지던트 그리고 펠로우까지 긴 수련 과정을 거쳤다.
각 시기마다 남겼던 기록을 통해 그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 스스로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초심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정신과의사가 낯선 사람들에게는 친근하게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혹시 정신과의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반면교사를 삼을 수, 아니 작은 용기를 줄 수 있어도 보람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