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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Sep 20. 2019

선생님

어느 사립초 교사 이야기(2)

학부모님들께 수업과 아이들의 배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브런치를 시작했어요. 

브런치로 수업에 대한 기록을 남기며 어느 때보다 교사로서의 만족감이 높아지고 힐링이 되었습니다. (왜 벌써 과거형 ㅠㅠ) 그런데 2학기엔 학교 행사가 많아... 수업 이외의 일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어요. 브런치 글 조차도 근무 시간 내에만 쓰려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고 싶은데 근무 시간 내에 도저히 수업을 돌아볼 시간이 나지 않는 주간이네요. 물론 저는 퇴근 후라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실제로 퇴근 후에는 육아로 글 쓸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요.) 왜냐면, 교사로서 근무의 가장 큰 비중을 수업을 준비하고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었으면 해서요. 이게 가장 중요한 '근무'였으면 해요. 하지만 저의 바람과 현실과의 괴리는 꽤 큽니다.


先生. 

말 그대로 먼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 

존경하는 한 선생님은 이 '선생님'이라는 말을 좋아해서 '쌤~'이라고 줄여서 불리기가 싫다고 해요. 

저는 오히려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간부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부장님'이라는 명칭이 싫어요. 학교에서 부장 업무를 맡고 있어서 교장, 교감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선생님들이 '부장님'이라고 부르는데요, 저는 오직 먼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긴 '선생님'이 좋아요. 


그 인생은, 뒤따르는 제자들에게 보일만한 것이 있는 인생이어야겠지요. 지금 제가 가르치는 제자들은 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이 중 누구라도 교사가 되어 저와 조우하는 삶을 상상해봅니다. 그때도 부끄럽지 않은 교사이고 싶어요. 


무엇이 그때도 저를 부끄럽지 않게 할까요?

공부라는 것은 더 배우고자 하는 개인의 욕구에서 나온다.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자녀와 학생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배움에 대한 욕구를 스스로 가질 수 있게 그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처럼 경쟁과 (자녀의 스펙) 관리에 매몰시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경쟁과 관리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신이 누구인지 더욱 명확히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행복해질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 김민섭 사회평론가, '자소서 관리 총력전에 희미해진 배움의 이유')
강자는 강자라서, 약자는 약자여서 힘과 권력을 선호하는 것이 동물적 본능이다. 사람의 모습을 한 동물이 진정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부단한 자기 성찰을 필요로 한다. 동물성은 인간성보다 강력하다. 잠시라도 성찰을 게을리하면 이기의 발톱이 살을 뚫고, 오만의 어금니가 날카롭게 돋아난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앞서서 얼마나 누릴 것인가에 있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당신은 평등을 원하지 않는다.')


신문을 보며 스크랩해둔 기사입니다. 배움에 대한 견해가 공감이 돼서요. 이들은 배움을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 성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배움을 붙잡고 실천하는 것이 다음 세대를 이룰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입시와 학벌, 좋은 직업에 진입해 안정적 삶을 보장받기 위한 일종의 '증명서'받기에 집중돼 있는, 교육이라고 말하지만 교육의 본질인 '배움'엔 별 관심이 없는' 사회의 구성원이고(오히려 핵심 구성원일 수 있고), 그런 사회 속에 있는 학교 역시 그런 상황에서 자유로울 리 없지요. 


다시 돌아가, 

교사의 가장 주된 업무는 수업과 그 수업을 성찰하고 준비하는 과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업은 곧 배움을 의미합니다. 교사가 배움을 포기하면,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것도 앞서 보여줄 인생이란 것도 없습니다. 그 배움은 자기 계발과 스펙을 쌓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하고 돌아보는 삶, 그 자체입니다. 또 더 질 높은 수업을 위해 공립 사립을 불문하고, 교사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모험을 하고, 글을 쓰고 더 많은 사람과 대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대 졸업-임용 합격-안정적인 직업 교사'의 시야에 아이들을 가두지 않고 넓고 깊은 세상으로 열어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교의 '일'은 누가 할까요?

당장 제가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는 동아리 활동, 연말 발표회 준비, 운동회 준비 등은 모두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고 기대하는 '교육적인 일'인데 이 일을 강압적인 업무 분장의 결과로써 교사가 맡아서 추진해야만 하는 구조 속에서는 결국 수업과 배움에 대한 에너지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일 또한 비교육적인, 교사의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일이 되어버릴 뿐입니다.


정말 교사의 일을 '배움'에 두는 시대, 끊임없이 공부하는 삶을 살도록 장려하고 신뢰하는 시대가 올까요? 업무를 최소화하고, 그 최소화한 업무조차도 맡은 교사의 자율성과 창조성이 구현되는 또다른 교육의 장으로 변하는 시대가 올까요? 일상적인 수업을 교사들이 학년 단위로 마음껏 계획하고, 실천하고, 반성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퇴직 전에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 맛볼 수 있을까요? 그 일에 정말로 예산을 투자하고, 시간을 쓰고, 필요하다면 자유롭게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 지금의 삶과 괴리가 너무 커 오히려 저를 괴롭게 하는 꿈인데도, 그래서 포기하고 체념하고 살고 싶은데도, 마음대로 포기되어지지 않는 꿈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런 성찰과 배움의 삶을 사는 교사가 있다면, 그 교사의 제자들의 삶은 훨씬 더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갈 것이라는 점.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제자의 삶은 교사의 삶보다 더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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