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깊은 바다 Sep 12. 2019

일기 쓰기

초등 1학년 글쓰기 지도(1)

안녕하세요? 올해는 추석 연휴가 짧네요.

아이가 셋이 된 이후로는 연휴가 그렇게 기다려지지도 않고 짧다는 게 그렇게 아쉽지도 않아서... 좋네요? ㅎㅎㅎ

어느 날 "평일도 좋고 주말도 좋고... 다 좋은 날이다."라는 말을 하게 된 적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2학기부터 본격적인 읽기, 쓰기 지도가 들어갑니다.

그중 글쓰기 지도에 대한 저의 방향과 관점을 공유하고 싶어요.


우선 일기장이라고 해야 할까, 글쓰기라고 해야 할까부터

짚어야겠어요.

저희 학교는 자체 제작된 그림일기장이 있는데

이 일기장의 이름이 '365 생각 마당'이에요.

아무래도 일기라고 하면 요즘 인권침해 등의 논란이 있어

'일기장'보다는 적당한 이름인 것 같아요.

하지만 선생님들도 "일기장 내세요." 등으로 생각 마당 공책을 편의상 '일기장'으로 부르곤 해요.

그래도 이 공책에 일기를 쓸 때보다 주제 글쓰기를 할 때도 많아서 '생각 마당'이란 이름이 더 적절하네요.

저는 아이들이나 부모님들께서 일기를 꼭 '오늘'있었던 일을 쓰고 맨 끝에 느낌을 붙이는 식의 글로 여기지 않아주셨으면 해요.


사실과 느낌을 구분하기는 모호합니다.

사실만을 쓰면서도 그 안에 글 쓰는 사람의 입장과 감정이 녹아들어 가는 경우도 많거든요.

느낌을 써야 한다는 억지 때문에 '참 재밌었다.'로 끝나는 글보다 사실만 쓰더라도 본인의 생각이 들어가게 하는 글이 훨씬 좋은 글일 것 같아요.




저는 글 쓰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글 읽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글 쓰기 지도에 관심이 많아요.

교사이기에 아이들의 일기나 독서록 같은 글을 검사하는 입장에 놓일 때가 많은데요,

일단 매주 많은 글을 검사해야 하는 저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이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아주 큽니다. ㅎㅎㅎ


우리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면 참 재미있는데

글이 재미없다는 것은 뭔가 모순이지 않겠어요?

모범적인 생각, 올바른 생각, 정답 같은 말이 아니라  

'아이들의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진솔하게 글에 담는 것'

이것이 저의 글쓰기 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지침입니다.


지난 주중에 글쓰기 수업을 처음 시작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학교의 자체 제작된 '생각 마당' 공책은 처음에는 그림의 크기가 크다가 점점 글의 비중이 높아지고 나중에는 아예 그림 그리는 칸이 없어지는,

선배 선생님이 고심해서 제작하신 그림일기 공책이에요. ㅎㅎ


그림의 비중이 3분의 2인 페이지를 1단계,

그림과 글이 반반인 페이지를 2단계,

그림이 작고 글이 3분의 2가 되는 페이지를 3단계,

글 쓰는 칸만 있는 페이지를 4단계라고 한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2단계부터 시작하도록 합니다.

(1단계부터 시작하는 선생님도 계셔요. 저의 주관적인 지도 방법입니다.)


그림일기의 그림은 글 쓰는 일을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보고,

저는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한데

1단계는 그림의 비중이 너무 커서

있었던 일을 두 문장만 써도 글이 끝나버려요.

그래서 글과 그림의 비중이 반반인 2단계를 시작합니다.


글쓰기 첫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에요.

좋아하는 물건도 되고 사람도 되고 음식도 되고...

"뭘 좋아하는지 바로 떠오른 사람이 있나요?"라는 저의 질문에 손을 가장 빨리 든 S의 제시로 예시글이 시작되었습니다.

작년에 저의 건의로 제작된 글쓰기 칠판. 작지만 꾸준히, 제가 있는 곳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에요.


S는 특공 무술에 푹 빠져 있어요.

특공 무술 심사 날이 언제인지 저도 외울 정도로 자주 일정과 결과를 알려주어요.

처음에는 S가 '나는 특공 무술을 좋아한다. 그래서 특공 무술에 매일 간다.'까지만 불러주었어요. 하지만 이 두 문장으론 글이 꽉 채워지지가 않죠.

(기본적으로 주어진 분량은 채우게 합니다. 많이 고민하다가, 분량에 맞게 글을 쓰는 것도 필요한 과정이겠다 싶어 끝까지 쓰게 하고 있어요.)


부모님들께서도 아이들이 집에서 일기를 쓰는데

두 문장을 쓰고 막혀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단순하지만 바로 이때,

아이와 '대화'를 하시면 됩니다.


"S님, 특공 무술이 왜 좋아요?"
(존댓말 쓰기를 하는 우리 학교)

"음... 피구도 하고 무궁화 꽃 놀이도 하고..."

(여기까지는 제가 예상했던 대답이었어요.)

"그래요? 그것만으로 좋아요? 더 좋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아, 아이스크림도 줘요!"

(아이스크림은 보관상의 문제로 학교에서는 거의 줄 수 없는 류에 해당하는 간식이라 진심으로 놀라며)

"정말요? 아이스크림을 준단 말이에요?"


시간이 더 있거나 글 쓰는 칸이 더 많았다면

아이스크림은 어떨 때 받을 수 있느냐,

(저희 아들도 잠시 특공에 다닌 적이 있어서)

스티커도 주시던데 어떤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있느냐 등

대화할 거리는 무궁무진합니다.

이걸 다 글로 정리해서 쓰면 훨씬 긴 글도 쓸 수 있지요.

있었던 사실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쓰다 보면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은 자연스럽게 들어갑니다.


저 예시로 인해

피아노 학원이 좋다고 쓴 아이들도 많이 있었는데요,

좋아하는 이유는 다 달랐어요.

따라 하는 것 같아도

자신의 속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존재가 아이들이죠.

또 그렇게 했을 때 마음껏 격려받을 수 있었으면 해요.




어떤 아이들은 이렇게 썼어요.

나는 선생님이 정말 좋다. 너무 좋다. 선생님이 있어서 좋다. 학교가 즐겁다.

띄어쓰기나 맞춤법은 딱히 틀린 것이 없어요.

하지만 좋다는 말만 반복되니 아쉬움이 있어요.

이때 또 대화를 합니다.


교사 "oo님, 선생님이 왜 좋아요?"

D "...."


교사 "음... 선생님이 예뻐서?"

D "네!"(착한 우리 Dㅎㅎ)


교사 "또 선생님이랑 뭐 할 때가 좋아요?"

D "...."


교사 "선생님이랑 공부할 때?"

D "아니요"(솔직하고 주체성 있는 아이 ㅠㅠ)


교사 "그럼요?"

D "선생님이 안전 만화 틀어주실 때랑 간식 주셔서?"


(제 의도와는 달랐지만 아이의 방향이 이쪽이다 보니)

교사 "아 안전 만화 틀어주고 간식도 주고 놀이시간도 줘서?"

D (놀이 시간이란 말에 엄청 밝은 표정으로) "네!!!"

"그래요, 그럼 이렇게 쓰면 되겠네요."


나는 선생님이 정말 좋다. 우리 선생님은 안전 만화도 틀어주시고 간식도 주신다. 그리고 놀이시간도 주신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 덕분에 학교가 즐겁다.


이렇게 글이 바뀌면 무엇보다 아이가 신나 합니다.

신나게 그림을 그리고 제목도 붙여요.

자신의 생각이 담겼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선생님과 공부하는 시간이 좋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억지로 강요했더라면 D는 웃으며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물론 제 입장에선 공부를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노는 게 더 좋은 아이들의 입장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죠. 사실 노는 게 더 중요하기도 하고요.

그런 D가 수업 시간 중 즐거워하면 저는 더 기쁘지 않을까요?

이렇게 글쓰기는 저와 아이들 사이에 대화를 만들어주고, 더 친밀하게 해주는 좋은 연결고리이고 소통의 도구이자 과정입니다. 부모님들께서도 자녀의 글을 봐주며 대화하는 기쁨을 누리셨으면 해요.




다시 예시글로 돌아가 봅시다.

아직은 글쓰기 2단계라 특공 무술이 왜 좋은지까지 쓰니 끝나요. 그다음 암호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우선, 교정 부호를 4개만 가르쳐주었어요.

'교정 부호'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어렵기 때문에

"선생님의 '암호'를 풀 수 있어야 해요."라는 말로 시작했어요. 이렇게 단어 하나로 인해 아이들은 명탐정이 되야겠다는 눈망울로 저를 바라보네요.


처음에는 제대로 글을 쓰고, 나중에는 교정 부호를 가르쳐주기 위해 일부러 오류를 만들었어요.


암호 1번 : 자리를 바꾸기

암호 2번 : 붙여쓰기

암호 3번 : 틀린 글씨 바꾸기

암호 4번 : 띄어쓰기


암호 4가지를 가르쳐 준 후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글쓰기 단계는 이렇게예요.

저희 반 밴드에 올린 이미지예요. 집에서 글쓰기를 해야 할 때는 교사 대신 부모님께서 교정해주시도록이요.

 

1. 왼쪽에 글만 쓰기

2. 교사의 교정

3. 암호를 보고 고쳐쓰기

4. 날짜, 제목, 그림 넣어 완성하여 내기


글쓰기가 숙제로 나갈 때는 교사 대신 부모님께서

간단하게 교정을 해 주시면 됩니다.

혹시 왼쪽에 쓴 글에 틀린 것이 없는 경우,

틀린 것이 있어도 간단히 수정이 되는 경우는

왼쪽에 그대로 날짜, 제목, 그림을 넣어 완성해도 됩니다.

틀린 것도 없는데 오른쪽에 다시 쓰는 건 고역이지요.



저도 워킹맘이다 보니 어린이집에서 내주는 간단한 주말 과제들도 굉장히 귀찮은데요....ㅎㅎㅎ

부모님들께서 많이 부담이 되실까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도 아이의 글쓰기를 통해 이 시간이라도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우선은 일주일에 하루는 글쓰기를 과제로, 하루는 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으로 두 편씩 글을 쓰게 하고 있어요.

(많이 부담스러우시면 다른 방법을 함께 찾아봐요. ^^)


아직은 저의 교정 부호를 보고도 잘못 쓰는 아이들이 많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잘 쓰게 되니 교정 부호가 너무 많다거나 교정 부호를 보고도 잘못 써서 오른쪽마저 교정 부호가 생긴 경우라도 정말 괜.찮.아.요.

아이를 야단치거나 잡지 말아 주세요. 속으로라도 실망하지 말아 주세요.


저학년 부모님들이나, 예비 학부모님들 중에는

"우리 아이가 아직 맞춤법을 많이 틀려요."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맞춤법은 저도,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있답니다.

어른도 꾸준히 글을 쓰고 고쳐 쓰지 않으면 당연히 틀리는 것이 맞춤법이에요. 그것 때문에 계속 지적받으면 글쓰기가 싫어집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책 읽기, 글 쓰기는 평생 하길 바라고 있어요.

지금도 글을 쓰며 제가 계속 배우고, 사고가 넓어지고, 정교 해지는 것처럼 아이들도 평생 배우는 사람이기를...

10년, 20년 후를 바라보고 교육하고 있답니다.


공책 오른쪽을 완성해서 저에게 내면 제가 코멘트를 적어서 다시 나눠줍니다. (이 때는 글쓰기를 위한 멘트가 아니라 글 내용에 대한 공감의 멘트들)


글쓰기 공책을 나눠준 직후, 곧바로, 선생님이 뭐라고 써 주셨을까 궁금해하며 자기만 보이게 공책을 살짝 펴서 읽어보는 아이들.

재미있는 글을 써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저의 말과 반응을 사랑해주는 아이들.

제 코멘트를 읽어보는 아이들의 표정 자체가 저에게 가장 큰 보상이고 보람입니다.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댓글로 남겨주세요. :)

작가의 이전글 국립 어린이 민속박물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