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깊은 바다 Sep 28. 2019

초등 1학년의 그림일기

초등 1학년 글쓰기 지도(2)

학부모님께. 

안녕하세요?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요즘 학교는 가을운동회 분위기로 한창입니다. 저희 학교는 요즘의 추세와 달리 선생님들이 손수 아이들을 연습시키고 준비해서 운동회를 하는데요, (많이들 업체 불러서 즐겁게 레크리에이션 하는 추세예요.) 선생님들이 수업하랴 행정업무 하랴 아이들 챙기랴 운동회 준비까지 (심지어 상담주간까지 있었지요.) 정말 몸이 10개라도 모자라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서 정이 쌓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네요. 정말 질서 정연하게 경기에 임하게 하려면 아이들을 '잡을' 수밖에 없는데요, 전 그런 게 너무 싫어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질서와 단합의 즐거움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하다가 올해는 운동회 경기 연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했어요. 학년부장 선생님의 수신호에 따라 '착착' 움직이도록 교실에서 함께 영상을 보며 (주요 부분을 편집해주신 보조선생님, 사랑해요.ㅠㅠ) 실내 시뮬레이션을 해봤는데요, 아이들이 너무 잘하는 거예요!!! 와... 정말 우리 반이 너무 좋아집니다. 칭찬 마구 날아가니 아이들도 좋아하고... 역시 사랑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고민과 관찰과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전달되는 것 같아요. 우리 사이에 사랑이 더 피어납니다. 




2학기 들어서 본격적으로 생각 마당 공책에 글쓰기를 매주 2편씩 하고 있는데요, 이거 검사하고 피드백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난 브런치 글에도 올렸듯이 글쓰기는 저와 아이들의 교감, 대화라는 것이 가장 핵심입니다. 부모님들께서 주말 글쓰기 숙제 교정을 정말 잘 도와주고 계셔서 너무너무 감사하고요, 덕분에 검사하는 것도 정말 즐겁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할 때는 아이들이 막힘없이 글을 썼더라도 제 입장에서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을 때, 꼭 해당 아이와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 후 문장이 완전히 달라지면 제가 새로 써 주기도 해요. 하지만 그건 아이와 대화를 나눈 후,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써 준 것이기 때문에 아이는 자기 글이라고 여깁니다. ("아~ 그래서 이걸 쓴 거구나. 그럼 ~~~라고 쓰면 어때요? 괜찮아요?"하고 꼭 물어봐요. 그럼 아이들이 되는 건 된다, 아닌 건 아니다 분명하게 이야기해주죠. 전적으로 아이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 제가 왼쪽에 써 준 것을 보고 오른쪽에 옮겨 쓰는 과정을 통해 본인의 손으로 다시 쓰는 것이 맞기도 하죠. 일기를 통해 뭔가 좋은 교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아직 1학년이라 어떤 교과서적인 내용으로 마무리 지으면 굉장히 어색합니다. 그런 결말은 글의 분량이 많을 때, 정말 아이가 많은 과정을 통해 실제로 그렇게 느낄 때만 썼으면 하고 대략 4학년 이후부터 그런 내용이 나타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오히려 1학년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사실을 쓰면서도 그 사실 속에 느낌이 들어가서 더 좋은 글일 때도 많답니다. 




오늘은 그림일기에서 그림을 대하는 요령이랄까... 마음가짐이랄까... 접근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그림일기를 쓸 때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은 아주 가볍게 그리면 된다고 말해 주세요. - 이가령, [이가령 선생님의 싱싱 글쓰기], 지식프레임, 73쪽


제가 글쓰기 지도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는데, 저에게 있어서 글쓰기 가이드 책 끝판왕은 이가령 선생님이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을 비롯하여 걸출한 선생님들의 책이 많이 있지만 초임 교사 때는 그런 선생님들의 지도법을 습득할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다시 이오덕 선생님 책을 읽으면 무척 좋을 것 같아요.) 굉장히 실제적인 방법을 많이 알려주시면서도 아이들의 마음을 어찌나 잘 헤아려주시는지요. 읽으면서 엄청 속이 시원했어요. 


위의 인용글처럼, 기본적으로 저는 그림보다 글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림을 '가볍게' 그려도 된다는 것은 애매하지요. 아이가 그림 그리기 싫어서 아무렇게나 그리고 대충 색칠하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근심이 찾아오지 않나요...? ^^ (그림을 못 그리는 건 괜찮은데 불성실하거나 귀찮아하는 것은 봐주기 어려운 것이 보통 어른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문자로 표현하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은 그림을 곁들이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공책이라는 것이 그림을 그려도 그만, 안 그려도 그만이기는 좀 어렵고... 칸이 있으면 채우고 싶어 하는 것이 아이들의 본능이기 때문에 그림을 '가볍게', '적당히'그리는 것이 뭔지를 알려줄 필요가 있어요. 이 부분을 예전에는 학부모 서신으로 만들어 인쇄해서 보내드리기도 했었는데 잘 전달되는 느낌이 안 들어서 브런치 글을 통해 알려드립니다. 


<그림일기의 그림 그리는 방법 1. 중요한 것을 크게 그리기>

정말 그리고 싶은 것이 많아서 작게 많은 것을 그리는 아이들도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부족할 때도 있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부담될 때도 있지요. 특히, 아이들은 배경을 그리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에 부담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때 중요한 것을 크게 그리게 합니다. '크게'는 가급적 그림 그리는 칸의 가장 중간에,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도록 그리는 정도를 말합니다. 

(예 1) 민속박물관에서 널뛰기를 했으면 배경을 생략하고 널과 뛰는 두 사람을 크게 그리면 충분합니다. 

(예 2) 가족에 대한 글을 썼다면 그 가족의 얼굴과 몸을 크게 그리면 됩니다. 

(예 3) 캠핑장에 다녀온 것을 자세히 그리기 어렵다면 자기만의 텐트를 상상해서 크게 하나 그려도 그만입니다. 

그림을 크게 그려야 바탕을 칠하는 부담도 줄어듭니다. 바탕 칠하는 팁은 다시 알려드릴게요. 


<그림일기의 그림 그리는 방법 2. 여러 색깔을 사용하여 색칠하기>

사람을 작게 그리고 그 작은 사람마저 모두 한 색깔로 칠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작으면 여러 색을 색칠하기 어렵죠. 색연필이 두꺼우니까요. 그래서 작게 그린 아이들은 지친 나머지 머리, 얼굴, 손, 옷, 발까지 모두 초록색으로 칠한다던가 파란색으로 칠한다던가 합니다. 처음에 이렇게 하더라도 다음번에는 다르게 할 수 있도록 알려주면 됩니다. (화내거나 혼내는 것은 최대한 보류해주세요. 아이들은 될 때까지 알려주면 열심히 합니다.) 그러니 크게 그린 후, 머리카락, 얼굴, 상의, 하의, 신발 등을 다르게 칠하면 편하면서도 적당히 보기 좋습니다. 


<그림일기의 그림 그리는 방법 3. 바탕 : 꼼꼼하게 색칠할 시간도 힘도 없다면 연한 색을 선택하기. 꼭 한 방향으로 색칠하기>

우리 딸이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선생님이 그림일기 바탕을 아주 꼼꼼히 칠하라고 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손목 힘이 부족한데 바탕을 크레파스로 꼭꼭 채워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거의 제가 바탕을 칠했던 기억이 납니다. - 이가령 선생님의 싱싱 글쓰기 중


선생님들 중에는 바탕을 아주 꼼꼼히 칠하길 바라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러면 정말 깔끔하고 정성스러워 보이거든요. 아이들도 힘들긴 해도 그런 정성이 모인 일기장을 작품집처럼 흐뭇하게 바라보게 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글쓰기 지도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에 아이들이 에너지를 가급적 글에 집중했으면 해서요. 물론 꼼꼼하게 정성스럽게 하면 많이 칭찬해주긴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정말 손목 힘이 부족한데도 힘들게 바탕을 칠하다가 일기 숙제를 떠올리면 한숨 쉬거든요. 그러진 않았으면 해요. 글쓰기를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알려주는 팁은, 바탕색은 가급적 연한 색으로 고르도록 하는 겁니다. 노란색, 하늘색, 연두색 등... 좀 덜 꼼꼼해도 티가 안 나도록이요. ㅎㅎㅎ 그리고 꼭 한 방향으로 칠하도록 합니다. 

여러 색깔을 사용해서 바탕을 칠했네요. 방향이 일정한 것 보이시죠? 사선 방향을 선택했네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바탕을 동그라미로 했다가 위아래로 했다가 좌우로 했다가 마구 칠합니다. 그렇게 되면 꼼꼼하게 빼곡히 칠하지 않는 이상 굉장히 지저분하고 성의 없어 보여요. ㅎㅎ 빼곡하게 칠하지 않았어도 이 예시처럼 한 방향으로 칠하면 덜 힘들죠. 요즘 저희 반 여학생들은 무지개색으로 바탕 칠하기가 살짝 유행이에요. 작년에는 2~3가지 색을 겹쳐서 칠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요, 그것도 정말 예쁘더라고요. (그림을 크게 그리면 바탕을 덜 칠해도 돼서 좋습니다.ㅎㅎ) 그리고 저는 바탕에 스티커처럼 꾸밈을 넣어보도록 유도해요. 위의 아이도 자신의 모습 주변에 하트를 그렸네요. 지금 제가 공책을 가지고 있다면 사진을 더 넣을 수 있었을 텐데 사진이 딱 한 장밖에 없어서 더 많은 예시를 보여드리지 못하네요. (이것도 우연히 찍어두게 된 것...)


<그림일기의 그림 그리는 방법 4. 튀어나가지 않게 색칠하려고 노력하기>

그림을 크게 그리면 튀어나가지 않게 색칠하기 좋습니다. 튀어나가지 않게 색칠하는 것은 소근육 발달에 좋고, 경계선 인식 및 '정교함'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기 위해 강조하는 편입니다. 만약 그림을 어쩔 수 없이 작게 그렸다면 좀 얇은 수채화용 색연필을 활용해보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요. 그게 힘들면 다음부터는 크게 그리면 되니까요.  




요즘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며 대화를 많이 하니 정말 재밌습니다. 그림도, 글도 한 번에 되지 않습니다. 이번에 못한 것은 잘 기억해뒀다가 다음 글쓰기 할 때 이야기해주면 됩니다. 가르침은 타이밍의 예술인 것 같아요. 지금 말해봤자인 것은 말하지 않습니다. 적절한 때를 찾아 이야기해주는 것. 이걸 잘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오늘 글은 뭔가 너무 주절주절하고 만연체라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시간이 없어서 맘에 안 드는 데로 그냥 올립니다. 남은 주말도 즐겁고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 


- 담임 드림♡ -


작가의 이전글 베 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