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장면

사노라면

by 신순영

라스코 동굴 벽에 그려진 선사시대 암벽화를 희미한 불빛에 비춰보듯 내 머릿속 오래된 기억을 비추면 비교적 선명하게 떠오르는 부모님과 관련된 장면 하나가 있다.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은 아빠와 나 둘 뿐이지만 우리는 학교 운동장 한편 모래사장에서 엄마의 형상을 만들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시골서 도시로 이사 오면서 새로 다니게 될 학교를 처음 찾아온 날이었을 것이다.
모래사장에 쪼그리고 앉아서 모래로 봉긋한 엄마의 가슴을 만들던 두 사람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떠올릴 수 있다.

아빠와 둘이서 음반점을 가고 영화관을 가고 주점에서 친구를 만나는데 따라가 옆에 가만히 앉아 있던 기억 속에 엄마는 없다. 엄마와 둘이서만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했던 기억은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을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아빠와 나 그리고 엄마가 등장하는 아주 드물고 특별한 순간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아빠와 나와 둘 만 등장하는 기억은 몇 개가 아직도 또렷한 것에 반해 엄마와 나 둘 만 등장하는 기억이 없는 것은 엄마가 일생을 다섯 딸들과 문제가 있는 아들 하나를 키우느라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써왔기 때문일 거다.
엄마가 나 하나에게만 오롯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줄 틈이 없었을 것이라는 걸 지금의 나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기억을 하지는 못하지만 연년생으로 쌍둥이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일 년 정도는 오롯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을 테니 딱히 억울할 것도 서운할 것도 없지만 엄마와 둘만의 기억이 없는 것은 가끔 서운하다.
그랬으면 나중이라도 엄마와의 추억을 만들만했을 텐데 또 그러지도 못했다.

​부모님에 대해 나는 오래도록 데면데면했다..
어릴 때는 아빠는 엄격하고 엄마는 차갑다고 느꼈었다. 대체로 화목한 가정이었지만 두 분 다 자식들을 품에 안고 물며 빨며 예뻐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에게 애교를 부리며 덥석덥석 안기는 딸들도 없었다.
나는 특히 애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빠는 멀고 어려운 존재였고 감정적이고 잔소리 많은 엄마하고는 자주 싸웠다.

부모님이 부모님으로서 또는 한 인간으로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 나서부터다.
왜 안 그럴까?
한 가정을 이루고 나서야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일의 막중함이 이해되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넘길 때마다 여섯 자식을 데리고 부모님이 지나왔을 삶의 고비가 짚어지는 것을.
부모님의 삶이 애틋하고 장하고 기가 막히고 대단하다는 것을 아는데 그저 비슷한 나의 경험이 필요했을 뿐이다.
자식이 없음에도 삶이 만만치 않았는데 내 부모야 말해 무엇하랴.
심정적으로 그랬다고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도 나는 부모님을 잘 찾지 않는 딸이었다.
대신에 돌아가실 때까지 외할머니를 살뜰히 챙겼던 쌍둥이 자매들은 결혼하고 나서도 부모님을 잘 챙겼다. 대신 나는 발달장애가 있는 남동생을 만났다.
자매들 사이에 암묵적인 합의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남동생에게 신경 쓰는 대신 다른 자매들은 부모님에게 좀 더 살피자는 무언의 약속 같은 거.
자주 불러 밥도 사드리고 가까운 곳에 모시고 나가기도 하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쌍둥이 자매들이 제일 열심이다.
결혼한 네 명의 여동생들은 다행히 부지런히 엄마를 찾는다. 다른 사회활동이 거의 없는 엄마에게 여전히 자신을 찾는 딸들이 있다는 것은 큰 보람이자 즐거움이다.

​부모님을 불러 집에서 가까운 양수리 두물머리에라도 다녀오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남편이었다.
생각해보니 결혼하고 우리 부부가 친정 부모님만 모시고 어디를 가 본 적이 없다며.
나는 남편의 제안이 반가웠고 아빠 엄마는 우리 제안을 무척 반가워하셨다.
주말마다 비가 와서 말이 나온 지 삼 주 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두물머리를 찾았다.
강가를 걷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수종사를 들렸다가 하남 마방집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올림픽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난 후 두 분은 집으로 돌아가셨다.
내내 즐거워하셨고 많은 얘기를 하셨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자주 이런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
모든 일이 너무 늦기 전에 일어나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두 분은 건강하셔야 하고 우리는 좀 더 자주 기회를 만들어야 할 일이다.
두물머리 강가에서 아빠는 이현주 목사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이런 풍경을 보면 시 하나쯤은 읊을 줄 알아야 한다면서.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이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한강 되어 흐르네
아름다운 사람아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는 서로 만나 무엇을 버릴까?

​먼 훗날 이 날을 생각할 때 나는 강가에서 시를 읊던 아빠의 모습과 찔레꽃 향이 좋다던 엄마의 목소리와 가만가만 뒤따르던 남편의 뒷모습 등을 떠올릴까?
따듯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즐거움이 떠돌던 5월 23일의 한 장면이 오래도록 선명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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