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여행이야기 - 그 남자

by 신순영

그 남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올해 마흔이라고 했다.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최초로 대화를 나눠 본 북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름에 빛 광자가 들어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말하던 그 남자는 러시아로 파견된 북한 노동자의 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둘이서 대화를 나눈 시간은 30분 남짓. 다른 일행들과 함께 얘기를 나눈 시간까지 햡쳐봐야 불과 1시간 남짓.
아니 사실은 얼마나 오랫동안 혹은 얼마나 짧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는지 알 수가 없다.
아주 긴 시간 대화를 한 듯도 하고 너무 순식간에 대화가 끝난 듯도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눴던가? 왜 그 남자와 나눴던 대화를 생각하면 쓸쓸한 생각이 먼저 드는 걸까?

나는 할아버지가 전쟁 전 함경도 흥남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는 얘기로 서두를 꺼냈고 그 남자는 이름도 모르는 삼촌이 남한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남자는 조심스럽게 여행을 하려면 오랫동안 돈을 모아야 되지 않느냐고 물었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 솔직하게 답했다.
물론 그렇다고.
남자는 다시, 돈을 벌어서 여행을 하고도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냐고 물었고 나는 또 잠시 고민하다 역시 솔직하게 답했다.
어떤 사람은 번 돈으로 여행도 하고 먹고살기에 충분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겨우 겨우 모은 돈으로 여행을 하고 어떤 사람은
간신히 살 만큼 벌기도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무리 벌어도 살기 힘들 기도 하다고.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자는 또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한에서는 누구나 직장을 구할 수 있고 마음대로 이사를 갈 수 있느냐고.
나는 잠시 침묵했다. 남한에서 누구나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직장을 구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더 많아 요즘 청년 실업이 남한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그러나 우리는 어디든 마음대로 이사 갈 자유는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물었다. 북한은 어떠냐고.
남자는 나라에서 직장을 구해준다고 답했고 마음대로 이사를 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선 침묵했다. 그 남자의 침묵이 내겐
답이었다.
남자는 조심스레 연평도 사건이 남한에서 어떻게 보도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물었고 세월호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분노에 대해서도 물었다.
나는 남자의 질문에 대해선 솔직하게 내 생각을 대답했지만 남자가 예민하게 생각할 만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 남자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건 내 질문이 그 남자를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그럼에도 나는 북한 사람들이 젊은 지도자 김정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고 남자는 자신의 젊은 지도자가
인민들을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음을 강한 어조로 설명했다.
남자는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탈북자들이 남한에 가서 북한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잘 모르지만 자신도 북한 사회가 남한에 비해 어렵게 산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가족이 어렵게 산다고 가족을
버리는 일은 옳지 못한 것 아니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당신은 지도자를 부모로 생각하냐고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북한을 하나의 커다란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당신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했다. 남자는 그건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지도자를 부모로 생각하고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를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게다.
다른 시기에 다른 곳에서 나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하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으므로.
가족이라고 말할 때 그 남자의 말속에 배어있던 뜨거움과 그럼에도 문득 고개를 드는 호기심 속에 드러나던 그 남자의 의아함과
하지 못한 질문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우리의 대화는 더 깊어지지 못하고 정작 묻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채 겉을 맴돌기 시작할 때 끝이 났다.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가 그저 피상적이고 진실을 피해 헛도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대화가 내 마음에 일으킨 파동은 적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커다란 강이 흐르는 경우가 있다.
마주 보고 평행선을 그리며 나아갈 수는 있지만 결코 만날 수도 없고 좁혀지지도 않는 거리가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그 강은 사상일 수도 종교일 수도 신념이나 편견일 수도 있고 인종이나 무지로 인한 오해일 수도 있다.
얕고 잔잔하게 흘러 건너갈 수 있는 강인 경우도 있고 강과 강 사이에 다리가 놓일 때도 있지만 거칠고 흉포하게 흘러 건너갈 수
없는 강이 흐르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한국 기독교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 내가 느끼는 강은 거칠고 흉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검고 그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기까지 해서 그런 강 앞에 서면 나는 말없이 뒤로 물러서고 만다.
그 남자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커다란 강물을 느꼈다.
그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던 것처럼 내게도 그런 것이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강물이 거칠게만
느껴지지 않은 것은 타국에서 만난 같은 민족에 대한 감상적인 반가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한 역사의
아래를 흐르고 있는 슬픔과 그리움이 서로에게 투영되었기 때문이지 모를 일이다.

기차가 잠시 정차한 역의 육교에서 그 남자를 다시 만났다.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괜히 늑장을 부리는 그의 몸짓에서 아쉬움을
읽었다면 나의 착각이었을까?
그의 옆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 누님 동생 하자며 괜찮으면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열차 안에서는 다른 동료들의 눈치를 보던 그가 동료들이 없으니 흔쾌히 승낙했다.
"내리기 전에 또 놀러 오시오.”"라는 말을 하며 그가 먼저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 사이로 그 남자가 걸어갔다.
내리기 전에 잠깐 그의 일행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으나 그와 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 지 3일 밤 하고도 4일째 되는 날, 늦은 밤 시간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북한 사람들이 타고 있는 4호차 앞에 가서 작별인사를 했다. 서로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며 기차가
떠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커다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렁차고 비장하게 울려 퍼지던 그의 목소리는 전혀 예기치 못했기에 가슴을 뜨겁게 하는 감동이 있었다.

그가 부른 노래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이 났다.

우리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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