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유서비스가 대세다.
차량도 공유하고, 사무실도 공유하고, 집도 공유하고, 부엌까지 공유한다.
공유를 하면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도 줄이고, 비용도 절감하고, 물건을 구매하느라, 처분하느라 시간낭비도 줄이고, 많은면에서 편리한 서비스이다. 요즘같은 디지탈 시대에 걸맞는 훌륭한 서비스이다.
다만, 공유서비스를 이용하면 우리 아이가 5년전 토했던 차, 대학졸업하고 갓 취직하여 어리버리 실수도 많았던 사무실 등등의 여러가지 추억이 깃들어 있는 무게가 없는 듯하여 아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유년시절, 교과서에서 이어령 교수님의 삶의 광택이란 수필을 본적이 있다.
아들에게 스스로 문지르고 닦아주고, 관리를 해야 광택이 나는 나무책상이 아닌, 인공적 광택을 가지고 있는 포마이커 책상을 사준 것을 후회하며, 투박한 곳에서 내면의 빛을 솟아나게 하는 그러한 희열이 적어지는 세태에 대해 통찰한 글이다.
그때는 그러한 추억, 정성, 관리 이런 관점을 떠나서 나무책상을 닦으면 광택이 난다고? 하는 점이 신기했고, 그래서 재미있게 읽은 글이다. 만년필을 쓰고 있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한테 익숙해져 가는 물건을 관리를 한다는 내용이 무의식중에 끌렸나보다.
나는 이십여년전부터 만년필을 사용하고 있다.
그 중 이 펠리칸 m150이란 만년필은 2006년도에 구입해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펜이다. 처음에는 사각사각하던 펜인데, 이제는 내 필기습관에 길들여져 내 필기각에 맞춰 부드럽게 잉크를 내뿜는다.
이 만년필을 손에 쥐면, 다시는 하고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잠시나마 2007년 손으로 차트를 쓰던 인턴시절로 돌아간다. 그 수많은 차트를 몇시간동안 잠도 못자고 작성하던 시절, 이 녀석은 늘 함께 했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중요한 서류의 서명을 담당하고, 다양한 글을 작성하며 나와 함께 하고 있다.
만년필은 불편하고,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잉크를 계속 충전해서 사용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사용해줘야 잉크가 안에서 마르지 않는다. 가끔씩은 미온수로 세척도 해줘야 한다. 그리고, 일반펜에 비해 고가의 펜이라 잃어버리지 않게 잘 챙겨야 한다. 요즘같이 유성펜, 수성펜, 중성펜까지 잘 나오는 시대에는 많이 불편한 필기구이다. 하지만, 위 수필의 나무책상처럼. 처음에는 사각거리며 불편하던 펜이 쓰면 쓸수록 나에게 맞춰져 나만의 펜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경험하면, 시대역행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만년필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만년필은 중고로 거래가 많이 된다. 예전에 단종된 만년필은 지금도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만년필의 명기로 일컬어지는 파카사의 51이라는 만년필이 그중 하나이다.
1941년 출시되어서 1978년 단종된 만년필로, 지금 남아 있는 만년필들은 최소 40년, 최대 80년된 펜들이다. 이 파카51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베를린조약 서명시에도 사용되었다. 그래서 나도 그 만년필을 사용해보고 싶어서 중고로 구입했다. 잉크를 주입하고 필기를 해보니, 잉크흐름은 40년이상된 만년필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데, 나한테는 어색함이 느껴진다. 중고물품이다 보니, 이전에 사용하던 사용자의 필각과 내가 만년필을 사용하는 필각이 안맞아서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어색함은 수리를 받아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파카 만년필은 예전 단종된 모델도 국내 유통사인 항소에서 as를 받아준다. 대단하다.) 어색함 때문인지 펜을 쓰게 될 일이 있을 때는 파카51보다는 원래쓰던 펠리칸m150만년필에 손이 가 있다. 참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펜의 완성이 구매가 전부가 아니라 구매 이후 나한테 맞추어가는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그렇게 하여 일생동안 사용하는 나만의 펜이 완성이 되는 것이다.
요즘같은 디지털 시대,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고, 여러가지 공유경제의 효율성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하지만 너무나 급속한 변화로 효율성과 편리함의 그늘속에서 나만의 오래된 추억이 깃든 물건이 점차적으로 사라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나부터도 여러 IT기기를 좋아하고, 얼리어댑터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물건을 써보고 바꾸고 하게 된다. 그럼에도 내 책상 위 펜케이스에는 매번 잉크를 채워져야 하고, 관리 성가시고, 세척해줘야 하지만 내손에 쥐어지면 잉크를 부드럽게 내뿜는 10여년된 만년필 한자루가 아직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