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이 무한리필 되는 도시, 강릉

바다는 익숙해도, 이 여유는 강릉에서 처음 만났다

by 온빛

강릉에서 배운 건 바다 풍경이 아니라, ‘천천히 사는 법’이었다.

부산의 빠른 호흡을 잠시 내려놓고 찾아간 그곳에는, 예상보다 더 따뜻하고 유쾌하며 오래 기억될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빵집에서 시작된 낯선 친절

첫날밤 9시가 넘어서 불빛이 새어 나오던 작은 빵집 문을 열었다.

DJ 부스가 있고, 큰 스피커에서는 양파의 목소리가 흘렀다. 그리고 달콤한 빵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메뉴판을 보며 ‘음료도 시켜야 하나, 배가 너무 부른데…’ 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마치 제 마음을 읽은 듯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직접 끓인 보리차 맛보세요.”


차가운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자, 늦은 밤의 피곤함이 사르르 풀렸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얼굴만 한 감자 고로케를 건네주며 “이건 서비스예요”라고 말하는 순간, 이 도시가 나를 맞이하는 방식이 단번에 느껴졌다.



홍게 앞에서 본전 모드 발동

다음 날, 친구가 20대 지인한테 추천받은 홍게 무한리필 집에 갔다.

이렇게 ‘통째로 쪄서’ 나오는 곳인 줄은 몰랐다.

손질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서 처음엔 당황했지만, 1인에 5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무한리필이라니—그건 그냥 먹으라는 신호였다.


결국 우리는 본전 모드에 돌입했다.

둘이서 15마리를 해치우고, 마지막엔 밥까지 시켜 완벽하게 마무리.

빈 껍데기가 산처럼 쌓였고, 그 순간만큼은 성취감과 만족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작은 순간들이 쌓여 만든 여유

400년 된 두부전골집에서는 옥수수 막걸리를 주문하자 “누가 운전하냐”라고 걱정부터 해주셨다.

정류장이 아닌 길 위에서 버스가 우리를 태우고, 승객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바닷가 편의점에서는 병따개가 필요한 맥주를 샀는데, 주인분이 먼저 “따드릴까요?” 하고 물어봤다.


부산에서는 스쳐 지나갈 이런 장면들이, 강릉에서는 하나하나 내 마음속에 남았다.



여행이 남긴 것

마지막 날, 기차를 타기 전 들른 도넛 가게에서 받은 크림 브륄레는 여행의 끝을 달콤하게 장식했다.

마치 강릉이 “마지막까지 맛있게 가요”라고 배웅하는 듯했다.


강릉에서 보낸 며칠은, 친절이란 게 얼마나 작은 순간에도 스며드는지 보여줬다.

돌아온 뒤에도 그 속도를 흉내 내려 애써 천천히 걷는다.

버스 창밖을 보면서도, 그때의 바람과 사람들의 웃음이 불현듯 떠오른다.


나는 부산에 살지만, 가끔은 강릉처럼 살아보려 한다.

조금 늦게 걷고, 조금 더 자주 웃고, 이유 없이 친절해지는 것처럼.

휴가는 끝났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강릉에서 무한리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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