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이해의 사이 그 어디쯤(완결)

소설 - 바다 별

by 온벼리

"바다 별"이 새로 쓰여 "엄마 없는 밤"이 되었습니다.

바다별은 지우려다 그냥 둡니다. 좀 더 다듬어진 글을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브런치북] 엄마 없는 밤 (brunch.co.kr)


소설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전적인 에세이 이기도 합니다. 처음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고 아파서 소설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소설의 형태를 빌어 약간의 조미료가 들어갔을 뿐 실화이고 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화해와 이해의 사이 그 어디쯤

은주는 인터뷰를 하면서 작가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들으려고 애를 썼다. 순자는 모든 날들이 슬픈 것처럼 이야기했고 때때로 목이 메어 힘들어했다.


은주도 자신을 들여다보며 글을 쓸 때 너무도 힘들었었다. 어느 부분이 상처인지 처음 들여다볼 때도 힘들었지만 글을 쓸 때는 그 장면으로 들어가 아주 오랫동안 세세히 살피는 작업을 반복해서 해야 했고 아픈 장면들을 반복해서 들여다보는 것이 고통스럽고 견디기가 힘들어 글을 쓰다가 중단했었다.


일 년 동안 글을 쓰지 않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사이 브런치에서는 작가을 찾는 프로그램된 메시지가 쉼 없이 날아왔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은주는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글과 마주할 용기가 생겼고 담담하게 써 내려가기로 다짐하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자기 정화의 시간이라는 말처럼 처음엔 안개 낀 듯 탁하고 흐릿했던 마음들이 조금씩 맑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은주는 순자도 그러기를 바랐다. 순자가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잊으려고만 한다고 잊히는 것들이 아니었다. 타인 앞에 꺼내놓고 위로받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의 상태를 계속해서 살피다 보면 병들었던 마음도 조금씩 건강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순자가 어릴 적부터 70년에 가까운 삶을 누군가에게 모조리 털어놓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많은 것들을 잊었고 기억의 오류도 많았다. 순자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잘해준 것과 자신의 상처 위주로 기억을 했다.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은 은주의 장면들은 기억하지 못했고 공감하지도 못했다. 그저 자신을 원망하는 말들이 서운할 뿐이었다. 은주는 그래도 이제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은주는 어린 순자를 관찰하는 동안 또 그 앞에 마주 서야 했다. 네 살에 삼촌 등에 업혀 안면도로 들어가던 순자, 열세 살에 친구에게 맞아 코피가 터져 집으로 가던 순자, 운동회 때 병어찜을 맛있게 먹고 소풍 때 십리 사탕을 입에 물고 행복해하던 순자, 고이도에서 혼자 젓갈을 담으며 눈물을 훔치던 순자, 영안실에서 넋을 잃고 영식의 손을 잡고 앉아 있던 순자, 모든 순간의 순자와 마주하면서 그 마음을 들여다 보고 공감해 보려고 애를 썼다. 은주는 순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은주 자신의 상처들을 없앨 수도 없었다. 다만 이해의 자리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다. 힘들고 아팠을 어린 순자에게 다가가 안아주고 싶어 졌고, 사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위로해 주고 싶었다.


은주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순자에게 말을 했다.

"엄마... 엄마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제 잘 알겠어요. 엄마가 우리를 사랑하니까 아빠랑 이혼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을 테고,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려고 애쓴 거 이제 알겠어요. 나는 엄마 마음을 잘 몰랐네. 엄마가 나를 진짜 사랑하는지 의심할 때도 많았는데 엄마는 그런 방식으로 표현한 거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엄마... 엄마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자식 입장에서는 책임져준다고 사랑받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랑하는 마음은 사랑하고 귀하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민철이 한테도 너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느라 죽겠다고 말하지 말고... 너를 너무 사랑해서 엄마가 이렇게 힘든데도 견딘다고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너희들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하고 이 고생하면서 산다고 말하면 우리는 엄마한테 짐이고 왜 태어나서 엄마를 힘들게 하는지 살아 있는 것 자체로 미안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 같아서 힘들고 아파요."

"엄마... 사랑은 사랑이라고 표현해 줬으면 좋겠어요."

"엄마!! 사랑해요!"

"그려... 엄마두 사랑헌다."

"엄마... 내가 우리 아이들한테는 수없이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엄마한테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두 번째인 거 알아요?"

"언제 혔었니?"

"예전에 대학교 1학년 때 내가 술 마시고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했었는데!"

"그려? 니가 술 마시구 전화 혔었니?"

"어! 엄마도 사랑한다고 말하던데? 나 그때 엄마한테서 사랑한다는 말 처음 들어 봤네!"

"그렸니? 미안허다 엄마가 표현을 잘 뭇혀서 그려."

"어... 그래서 나도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되게 어색해."

"그려... 엄마가 그런 걸 잘 뭇 헌다."


은주의 삶과 순자의 삶은 다르다. 모든 사람은 다르고 세상에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순자가 겪은 아픔에 비해 은주가 겪은 아픔이 새발에 피라고 비교한다면... 그러니 그 정도는 아파하지 말라고 말한다면... 순자의 삶도 전쟁의 겪으며 생사를 걱정해야 했던 순자의 윗세대의 삶과 비교될 것이고, 순자의 삶도 참을 만한 삶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어도 순자가 따뜻했던 은경과 순자에게 상처받은 은주의 입장이 다른 것처럼 사람의 입장은 모두 다르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그 상처를 잊으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가 아프다면 그에게는 그것이 상처로 남은 것이다. 다만 화해와 이해를 할 수 있다면 적어도 앞으로는 지나간 상처로 힘들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은주는 미안하다고 말은 했지만 은주의 상처를 다 받아들이지 않는 순자가 야속했었다. 자신이 스스로를 안아 줄 수 있게 된 것 만으로 감사해야 했고 순자에게 말을 꺼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 순자와 마주하면서 은주는 이제 화해와 이해의 사이 그 어디쯤에 서있다.


밤바다의 푸른 별처럼

은주는 이제 남편과 거의 싸우는 일이 없다. 은주는 자신을 잘 알고 성민에 대해서도 잘 안다. 그리고 성민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끝없이 가르쳐 주고 포기보다는 이해를 하려고 노력한다. 성민도 이제 은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고 은주의 발걸음에 맞춰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화가 나면 대화를 하지 않는 정도로 끝이 났고 그 마저도 며칠 가지 못한다. 은주가 말을 하지 않으면 먼저 다가갈 자신이 없는 성민은 그저 은주의 눈치만 본다. 그래도 은주는 성민이 눈치라도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화가 나더라도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적당한 거리를 지키려고 애를 쓴다.


은주는 어른이 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 아름다움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행복하지 않았고, 의욕이 없었고, 알 수 없는 우울함에 사로잡혀 살았었다. 세상은 원래 처음부터 우울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우울함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었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흑백영화에서 벗어나려고 오랜 시간을 발버둥 쳤고, 갇힌 방 안에서 스스로 열고 나와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의 방에 불을 밝히기까지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마흔이 넘어서야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그제서 상처받은 자신을 안아주고 사랑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취형 인간인 은주는 지금도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면 위태롭거나 불안해 보일 때도 있다. 때때로 오랜 습관처럼 우울함도 밀려온다. 그래도 은주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에 행복감을 느끼는지 계속해서 자신을 관찰하고 들여다본다.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다고 말해 주고 안아 준다.


은주는 자신이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함에 울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면서 은주에게서도 조금씩 사랑이 넘쳐 밖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 사랑은 은주를 빛나게 할 것이고 빛은 멀리 퍼져 은주의 주변을 밝히고 따뜻하게 물들여 갈 것이다.


아침에 창문 가득 들어오는 아늑하고 포근한 햇살처럼...


따스하게 위로하던 봄날의 밝은 햇살처럼...


어두운 밤바다 위에서 반짝이던 푸른 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