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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E열 Jun 21. 2020

관객의 멱살을 잡고, 끝까지 갔다

영화 <끝까지 간다>

관객의 멱살을 잡고, 끝까지 갔다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 2014.





당신은 방금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쳤다. 그리고 어머니의 관에 다른 시체를 몰래 집어넣어야 한다. 단 1분의 여유도 없다. 밖에선 간호사와 경비원이 다가온다. 당신은 가까스로 시체를 넣는 데에 성공했으나 다시 못질하는 일이 남았다. 떨리는 손, 망치는 손가락을 찍고 나무 못은 부러진다. 모든 상황이 당신의 목을 조여온다. 뺑소니 시체를 어머니의 관에 은닉하려는 부패경찰. 당신이 겨우 일을 마치고 장의사가 돌아오기 직전, 못까지 다 박은 관 속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스펜스이다. 감독은 서스펜스, 긴박감이라는 밧줄로 관객의 목을 죈다. 숨이 막혀 기절하기 직전에야 밧줄이 풀어지지만 어느새 밧줄은 목 근처로 또 다시 다가온다.


여름만 되면 블록버스터, 스릴러 장르의 영화들이 우후죽순 쏟아진다. 그럼에도 <끝까지 간다>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스릴러 영화의 탑을 달리고 있다. 영화는 두 주인공의 싸움을 다룬다. 초반에는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선악이 희미하다. 천만 단위의 비리에 뺑소니, 시체유기까지 저지른 경찰을 보면 어떻게 빠져나올지 궁금할 뿐 응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당하는 사건을 보고 있자니 같이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쫄깃하다. 감독은 이런 주인공으로 우리를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가 시작한 지 단 10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주인공 이선균은 점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의 소시민으로 돌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법한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관객은 이선균에 완벽히 몰입한다. 이어서 주인공의 적, 조진웅은 베일에 싸인 정의의 사도 느낌으로 시작해 악의 결정체를 향한다.


보통 다른 영화에서 이런 요소는 줄거리 내내 펼쳐져 주제가 된다. 하지만 <끝까지 간다>에선 30분이 채 지나기 전 인물의 이미지가 정리된다. 이미지의 반전은 관객을 끌어들어야 하는 도입부에서 여분의 흥미요소로 작용할 뿐, 선과 악의 경계라는 무거운 주제를 말하지는 않는다. 관객이 원하는 것은 심오한 철학이 아니라 단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간다>의 러닝타임, 111분이면 그리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지만 결말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이처럼 서스펜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활용한 스토리와 연출은 관객을 지치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있는 코미디 요소가 잠시 쉬어가면서도 인물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드디어 다 끝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들이닥치는 전개도 아주 잠깐 쉴 틈을 줌과 동시에 엄청난 몰입을 하게 해준다. 어떻게 흘러갈지 정도만 예상할 뿐 다음 장면을 생각할 겨를은 절대 주지 않는다. 이 점이 <끝까지 간다>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두 주연의 열연도 큰 역할을 해줬다. 그렇게 정신없이 영화가 끝난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 무언가 남지는 않는다. 재미라는 요소에 열중한 모습이 역력하다. 오락영화의 시선으로 본다면 분명 만점에 가깝지만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한 영화라고 평할 수는 없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사회의 더러운 점을 캐치했다는 것이다. 장점일 수도 있었지만, 캐치에서 그쳤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모두 쳐내고 전력질주를 한 영화이니 깊은 내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도 하다. 그 덕에, 오락영화로서 이보다 더 빠르게 달리기는 힘들 것이다.


감독은 영화의 주제로 권선징악이라는 테마를 잡지 않았다. 선악의 모호함이라는 테마는 주제라고 할 만큼 조명받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 일상과 가까우면서도 부패한 경찰의 모습을 조금 더 부각시켰더라면 블랙코미디의 영역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심오하거나 철학적인 주제를 다뤘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주인공을 괴롭힐수록 재미있어진다는 간단한 공식을 잘 이용한 킬링타임 영화라 보면 되겠다. 이보다 더 쫄깃쫄깃한 한국 영화가 곧 나올지는 모르겠다. 2020년 지금까지 맥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 스릴러 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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