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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e a week Nov 06. 2017

힙(hip)에 반대한다.

사쿠마 유미코 <힙한 생활 혁명>


세상의 움직임으로부터 독립한 존재가 되고 싶다.
주류 시스템 밖에서 자신의 장소를 만들고 싶어 돈 이외의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이 새로운 가치의 축이 되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 <힙한 생활 혁명>에서 말하는 '힙'에 대한 해석이다. 힙하다, 힙스터, 힙한 등 몇년 전부터 힙(HIP)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정확히 어떤 의미를 뜻하는 것인지는 애매하지만 어떤 느낌적인 느낌은 든다. 트렌디하면서도 핸드메이드 느낌이 나는 물건들을 구매하고, 프랜차이즈가 아닌 어디 골목에 숨겨진 음식점을 가고, 환경을 생각하면서도 구제느낌이 나는 빈티지한 소품을 좋아하는, 그런 느낌적 느낌. 그리고 그 느낌들은 모두 인스타그램에 적당히 뿌연 필터를 넣어 예쁘게 올라온다. 저런 힙한 느낌들의 저변에는 바로 주류 시스템이 아닌, 명품으로 가치가 평가되거나 효율성으로 가치가 따져지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 존재이자 자신만의 장소를 가지는 생활 태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힙한 생활 양식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힙한 브랜드를 소개한다. 특히 미국 포틀랜드 위주의 사례가 많은데, 미국에서 이러한 지역을 중심으로 직접 자신들이 물건을 가공하고 만들어파는 곳으로 포틀랜드가 유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성수동? 망원동? 뭐 이런 느낌인가) 


음식, 의류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를 소개하고, 인디 브랜드 간 콜라보레이션이나 유튜브에 제작자가 상품을 올리는 방식 등에 대한 마케팅 전략, 아예 어떠한 새로운 문화 생태계 (영상 플랫폼)를 바꾸어가는 모습까지 많은 사례들이 등장한다. 사례 하나하나가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나중에 신문이나 잡지 아티클로 다루어도 좋겠다 싶었다. 이런 사례들 읽는 재미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사례 하나, 음식 :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서 ‘셰 파니스(Chez Panisse)’를 경영하는 앨리스 워터스

“몸에 좋은 식재료를 만드는 것, 영양을 생각하는 것, 미래 세대를 위해 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계절에 맞는 것을 먹는 것. 이런 가치 기준은 나의 오리지널도 새로운 생각도 아닙니다. 패스트푸드 문화는 기껏 60~80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 문화에 익숙해지면 파머스 마켓에서 파는 식재료가 비싸다고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음식은 싸야만 한다는 생각이 퍼지고 말았습니다. 음식 가격을 내리려면 무리해야 합니다. 음식이 싸다면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례 둘, 의류: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는 2012년 1월에 전업 형태를 ‘B 코퍼레이션’으로 변경했다고 밝혔습니다.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에 더해 최근 새롭게 등장한 법인 형태입니다. ‘B 코퍼레이션’의 ‘B’는 베니피트, 즉 이익, 이득을 뜻하는 말의 앞글자로 공익을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중략) ‘B 코퍼레이션’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B 랩’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설립한 비영리 단체) 이 발행하는 ‘B 임팩트 리포트’를 통해 일반에 공개해야 합니다. 이 리포트에는 해당 기업이 ‘관리’, ‘노동자’, ‘공동체’, ‘환경’ 이라는 4가지 분야에서, 사회적 환경적 기준을 만족하는 운영 방법, 사원이 받는 복지 후생 내용, 사원 중의 소수자와 여성의 비율, 제품에 사용하고 있는 소재의 환경적 가치 등을 채점합니다.

사례 셋, 인디브랜드 간 콜라보레이션 : 모자 브랜드 ‘페어엔즈’ (천, 모자 생산 회사)

더블 네임, 콜라보레이션 같은 방법은 그다지 새로운 방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디 브랜드가 지금까지 그런 방법을 취할 때는 대부분 대기업 의류 브랜드와 협력하여 디자이너 비용을 받는 방법이 주류였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과 스타일을 공유하면서 색다른 고객 베이스(사업 수입 중심이 되는 재구매 고객층)를 가진 회사와 손을 잡는 ‘페어엔즈’의 스타일은 소규모 브랜드가 부담이 적은 방법으로 생산 루트를 확보할 수 있고, 자신이나 브랜드나 원래 갖고 있던 고객 베이스 외의 대상에게도 호소할 수 있어 이중으로 플러스가 된다고 벤은 말합니다.

사례 넷, 마케팅 및 기업 운영 전략 : 엣시 

엣시는 아티스트와 제작자가 손으로 만든 작품과 빈티지 상품을 부스에서 파는 ‘크래프트 페어’라고 불리는 미국의 전통적인 시장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엣시TV’라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제작자가 상품을 만드는 모습을 단편 다큐멘터리로 소개하며 그들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엣시’의 성공에서 흥미로운 것은 어떤 의미로는 협동조합처럼 참가자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운영하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큰 공장에서 만드는 상품을 취급하는 상점이 가튼 사이트에 생겼을 때 많은 판매자가 메일과 트위터, 혹은 사이트 내에 개설된 ‘엣시 포럼’을 통해서 항의의 뜻을 표시한 적이 있습니다. ‘엣시’ 쪽도 사용자들의 고충에 답해서 대책을 세우고 규칙 위반 출점아를 배제하는 자세를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물질적인 효용 이외에 가치를 둔다는 힙한 생활 양식들은 정작 마케팅의 가장 큰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처음의 시작은 어떠한 가치판단에서 이루어졌다가 나중에 마케팅으로 이용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마케팅적인 툴로 힙함을 이용했다가 나중에 그 가치를 표명한 것인지 선후관계는 모호하더라도. 과연 저 힙한 생활 양식이라는 것이 진정 이 세상으로부터 독립적이고, 나의 장소를 갖는 그러한 가치관이 있냐는 것이다. 그냥 쿨하고 멋있어보이고 적당히 생각있어보이니까 하는거 아닌가, 하는. 


책에서도 이에 대해 의식했기 때문에 책의 초반부에 이러한 비판을 이야기한다. 

비트, 히피, 펑크, 그런지 라는 전후의 운동을 ‘소비’하는 힙스터들은 ‘진짜를 숭배하고 순식간에 가짜를 토한다’라고 논했습니다. 힙이라는 말에 포함된 부정적인 뉘앙스는 현대에서는 패션과 스타일이라는 표층적인 측면만을 ‘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진보적’, ‘환경주의’라는 사상을 따라하는 순진한 이상주의자라는 편견을 ‘힙’이라는 발언 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원래 사상과 내면을 모두 포함했던 ‘힙’을 상품화하고, 패키지화해버린 주류, 결국 대기업 주도의 문화 욕구에 따라 ‘힙’의 내용이 변질하여 선망과 질투 때문에 싫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이 비판으로 서문을 열지만, 결말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시도들이 모두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한 과정들이라고 낙관하며 마무리 짓는다.

그러므로 적어도 그것이 어떤 문맥에서 등장한 것인지를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힌트로 삼아서 자신의 손에 닿는 범위에서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만 할 수 있는 창작을 하는 것이 하나의 올바른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하고 싶은 일을 못 찾겠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장소를 어떻게 발견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는 학생으로부터 상담을 받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로부터 제가 배운, 모든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주변의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장소와 동료를 발견하고 자신의 표현을 형태화하면서 독립된 존재가 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낙관에 동의하기만은 어렵다.
 힙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저 비판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소비 흐름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대량 생산 시스템의 주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현상인지를 구분짓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힙스터에 대해 미국에서는 이미 안좋은 시각이 지배적이다. 책에서도 소개한 한 힙스터 비판 칼럼에서는 "힙스터 좀비들은 패션잡지의 우상이며 바이럴 마케터가 제일 좋아하는 부류들, 부동상 중개업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호구들이다." 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실제로 힙스터가 왔다갔다는, 먹었다는, 샀다는 것들은 금새 또 메인스트림이 되고 힙스터들은 그럼 유유히 그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 좀 더 힙해보이고 멋있어보이는 곳으로. 이것은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한 '나만의 장소'가 아니라, 그저 '보이기에 좋아보이는' 장소에 불과하다. 


결국 진짜 어떠한 생태계를 바꾸어나가기 보단, 메인 스트림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또 다른 소비 트렌드로만 남게된단 것이다. <타임 아웃 뉴욕>지의 크리스찬 로렌첸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마케터들과 파티 프로모터들은 젊은이들의 문화를 선별해 돈을 투자한다. 그리고 그 문화에 이윤을 붙여 다시 그들에게 팔아먹는다. 결국에 힙스터는 그들이 발명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들 구매한 셈이며, 사전에 포장된 문화적 생활을 누군가에게 받아먹고 있는 것이다."(ㅍㅍㅅㅅ 영분 번역 글 재인용) 라고 말한바 있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며 일본의 시골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저자의 책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가 떠올랐다. 그는 정말 건강하고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해, 모든 빵의 원료를 해당 지역에서 기른 것들로 구매하고, 업무와 노동의 방식 역시 대량 시스템과 반대되는 방식을 고수하며, 대신 '제 값을 받고' 빵을 판다. 그만큼 비싸지만 그만큼 몸과 정신에 모두 건강한 빵을, 사람들은 그 시골마을까지 와서 찾는다. 그 빵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단순히 멋져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어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 생활 양식과 소비에 대한 고민을 사고, 파는 사람이 모두 하는 것. 힙스터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문득, 논란이 된 송민호의 "별걸 다 혐이라하는" 이란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그렇게 힙합을 외쳐대며, 마더퍼커라는 욕을 써가며 쎈척을 하면 뭐하나. 진짜 용기내서 욕해야 할 사람들과 그런 이슈에 대해선 입 꾹 다물고 있다가, 그저 내가 쿨해보이기 위해 '혐오 사회'에 대한 아무런 이해없이 쉽게 가사를 써대는 힙합퍼들. 그것조차 힙한(힙해보이는) 생활 방식 중 하나라면, 반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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