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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e a week Apr 07. 2020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윤성현 <파수꾼> & 김보라 <벌새>

최근 두 편의 영화를 봤다. 하나는 <파수꾼> 다른 하나는 <벌새> 였다. 4월 10일에 이제훈, 박정민, 안재홍, 최우식 주연의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고 감독 또한 그 유명한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런데 그 유명한 <파수꾼>을 여태 안봤어서 이번 기회에 넷플릭스에서 찾아봤다. <벌새>는 영화관에서 보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대다수 영화가 개봉을 미루고 있고, 그 덕에 요즘엔 과거에 개봉했던 영화나 독립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벌새>는 보고싶었던 영화 중 하나였는데 이번에 재개봉되어 극장에 가서 봤다. 




둘다 너무 좋았다. 영화 리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우연히 두 편의 영화를 연달아 보고 나서 든 생각들이 있어 적어 본다. (영화 리뷰가 아니라 자세한 내용은 적지 않지만, 영화에 대한 주요 정보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둘 다 성장 서사이다. <파수꾼>은 남자 고등학생 아이들의 권력관계와 진심어린 우정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무거우면서도 날카롭고, 진심이면서도 치사하다. 성장 서사이지만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성장이 아프다. 꼭 비극적 사건을 통해서만 성장하는 건 아니니까. 보는 내내 마음이 안타깝고 답답했다. 나 역시 고등학생 때 학교와 친구가 내 세계의 전부였기 때문에 저런 말들과 행동이 충분히 이해는 되었지만, 끝끝내 서로에게 진심을 터놓지 못한 인물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말하기 싫은 가정사, 진심을 다해 좋아하지만 서툰 첫사랑, 같은 무리 안에서의 권력관계. 세 친구만 있을 땐 더 없이 편하고 좋은 친구들이지만 저렇게 다른 요소들이 끼어들면 속절없이 흔들린다. 연약한 모습을 내보이고 싶지 않아서 날선 말들이 앞서 나가고, 오해를 하고, 다시 서로 상처를 주고, 풀 수 없이 꼬여버린다. 소중한 관계가 부서지고 나서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진심을 다해 말해보지만 상대는 그 진솔한 이야기를 기다려주지 않고 이미 마음의 문을 닫은 후다. 다 잃고 나서야 꺼내여 보이는 진심은 결국 상처뿐인 대답으로 돌아오고 그 결말은 생각보다 더 아프다. 


이제훈의 연기는 진짜.... 엄청나다


<벌새>는 <파수꾼> 의 인물들 보다는 조금 더 어린 나이인 여중생 은희의 이야기다. 90년대를 배경으로 자식 교육을 위해 은희네는 대치동에 무리해서 이사를 온다. 은희는 삼남매 중 막내딸이지만, 부모는 빠듯한 서울살이가 고된데다 전교회장을 하고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하는 오빠와 학교를 땡땡이치고 매일 놀러다니는 언니가  관심을 독차지해 주로 소외되어있다. 학교에서도 어울리는 무리가 없어 왕따는 아니지만 은따 정도로 조용히 지낸다. 그런 은희에게는 남자친구와 한문학원에서 만난 단짝친구가 유일한 숨통이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가족도 친구도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다 엉망진창이지만, 은희에게는 좋은 어른이 있다.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대학교를 휴학 중인 한문 선생님은 은희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친오빠에게 맞아 부모님에게 일렀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게 넘겼던 날에도, 단짝친구와 크게 다투었던 날에도, 은희가 큰 수술을 받게 되는 날에도, 힘든 날이면 선생님을 찾아간다. 선생님이 주는 가만한 위로 덕분일까 은희는 여러 일들 속에서도 잘 추스린다.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나이에 그래서 선생님의 존재는 은희에게 너무 다행이다. 그런 선생님과의 인연은 불과 몇개월로 너무 짧고 선생님은 사고로 죽지만 비극적으로 끝내지진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소풍을 가려고 운동장에 서있는 은희의 모습은 어느 한 시절을 통과해나가며 한뼘 성장한 모습이다. 


우롱우롱 우롱차




마음이 헛헛했다. <파수꾼>의 세 아이들에게도 <벌새>의 한문선생님 같은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파수꾼>의 세 아이들이 진심을 터놓았으면 어땠을까. 단순히 남자와 여자, 고등학생과 중학생으로 나누어서 볼 순 없겠지만 고등학생 남자애들에게 누군가에게 진심을 터놓고 의지하기란 쉽지는 않을거다. 그래도 왜 이렇게 속 마음을 꺼내지 못하고 날선 말들로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으로만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지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십대에는 모든 게 다 처음이라서 그 시기가 지나간다는 것 조차 모르니까, 더욱이 예민하고 연약하고 상처받을텐데. 


나의 학창시절에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었구나 한다. 아니 인생의 여러 시기를 통과하는 과정 중에 내 못난 마음도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삼십대가 된 지금도 <벌새>의 한문선생님 같이 좋은 어른이 되지 못한채 <파수꾼>의 세 아이들처럼 여전히 혼돈하고 있다. 알량한 자존심과 상처를 받고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마음에 대신 상대를 공격하고 날을 세워버린다. 그 시절 시절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만한 위로를 준 여러 사람들이 있었기에 다행히 아직까지 내 이야기도 (제자리를 반복하는) 성장 서사다. 그래서 두 영화는 십대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봐도 참 좋을 것 같다. 언젠가 한문 선생님 같이 나도 누군가의 성장 서사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더 없이 좋겠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 <벌새>에서 영지가 은희에게 준 편지 중





영화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벌새>가 참 좋았다. 인물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느껴져서 특히나 따뜻했다 : ) 좋은 인터뷰 기사가 있어서 발췌했다. 원문은 여기!


https://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9092709257244670


아빠와 오빠가 자기연민에 젖어 눈물을 터뜨릴 때, 카메라가 적정한 거리를 두는 이유와 같은 맥락인가.

김보라: ‘이런 나쁜 놈들’ 이런 게 아니라, 그들을 관찰하려는 마음이었다. 감정적으로 극대화할 필요 없이,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가장 연약한 사람이고, 그래서 아빠와 오빠가 권력자이고 가해자인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을 굉장히 억압하고 있는 사람이다. (중량) 내가 작가로서 그 두 캐릭터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려고 한 것도 있다.


직접적인 폭력 장면이 없었기에 더욱 아빠와 대훈이 단순한 가해자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김보라: 반복되는 폭력의 이미지를 이 영화에서조차 재생산하고 싶지 않았다. 폭력이란 건 보여주지 않고 상상하게 할 때 더 아플 때도 있다. 폭력이나 강간 장면이 많이 묘사되는 영화도 있긴 하지만, 그런 재생산되는 이미지는 굉장히 게으른, 성찰 없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많이 본 앵글과 방식으로 말을 하는 게 과연 옳은가. 적어도 내 영화에서만큼은 최대한 시각적으로 보여주지 않아서 더 아픈 감정들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함부로 동정하지 말자”라는 영지의 말과 같은 맥락에 놓인 것 같다. 은희를 피해자의 자리에 두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보였다.
김보라
내가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나자신을 바라보는 태도이기도 하다. 함부로 누군가를 동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누구도 동정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각각의 삶에 아름다움이 있고 그들만의 정원이 있다. 누군가 불쌍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어느 누구도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닌 그런 것들을 보여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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