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초 Dec 26. 2022

크레파스 실험 : 주어진 환경 너머를 보고 싶다

누구보다 알고 있지만 아직 방법을 모릅니다. #취준생고민

 마시멜로우 실험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어린이들에게 마시멜로우를 보여주고 먹지 않고 기다리면 나중에는 2개를 주겠다고 했을 때 참은 쪽의 어린이들이 15년 후 훨씬 성공했다는 실험입니다. 물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지만요. 

 저는 그 실험보다 좀 더 확실한 이론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크레파스 실험"정도가 되겠죠. 학교에서 공작 시간에 좀 더 적은 재료를 갖고 있는 아이가 있다고 해봅시다. 예를 들면 사람을 그리는 데 살구색이 없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때 남에게 빌리면 당연히 훨씬 쉽고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겠지만 빌려달라고 할 것인가 하지 않고 갖고 있는 재료를 최선으로 활용해볼 것인가로 사람이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Mahesh Patel님의 이미지입니다.

이때 갖고 있는 재료만 갖고 활용할 방안을 찾는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사람이고, 빌려달라고 하는 아이는 주어진 환경 너머를 볼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색연필 하나 빌리는 것처럼 작은 도움을 구하여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음에도 소극적인 사람이 더 많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욕망을 키우고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산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갖고 있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고 있는 사람은 비슷한 환경에서도 더 좋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저를 대부분 주어진 환경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언제나 "주어진 재료만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도 아닌데 단지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으로 도움을 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살구색 크레파스가 없으면 주황색 크레파스를 최대한 얇게 펼치듯 칠하고, 물감이 없으면 사인펜에 물을 덧칠하고, 가위가 없으면 쓸데없이 모양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찢거나 접었습니다. 별로 돈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손 벌리기 싫다는 감각이 언제나 있었습니다. 언제나 돈, 돈, 돈 하던 부모님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집안이 가난한 것도 아니지만, 자식한테 돈을 쓰는 걸 엄청 싫어하고 그걸 드러내는 부모가 종종 있습니다. 자식은 자연스럽게 아, 의지하기 싫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저것 하는 걸 극단적으로 억제하게 됩니다. 욕심이고 욕망이고 자연스럽게 덮어버리는 겁니다. 

 

 그래도 저는 주어진 환경 내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해 대학을 가고 꿈을 키웠습니다. 저는 작가가 되고자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유일하게 욕망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근처의 도서관에서 몇 권이고 빌려 계속 읽고, 따라 했습니다. 활자공간은 꿈과 동경을 털어놓기에 완벽한 곳이었습니다. 듣는 사람 없어 쌓인 이야기를 몇 번이고 써서, 사람들과 공유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꿈을 이루기에도 제 "노력"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몇 번의 정체기를 겪고 나서 저는 자연스럽게 취업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뒤늦게 다른 꿈을 찾고자 해도 갈피를 잡기 힘들었습니다. 한 번 "현실"아래 포기하니,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욕망이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습니다. 뭔가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기를 계속 보내게 되었습니다. 막상 어떤 꿈을 찾더라도 아 이건 새로운 교육이 필요한데, 교육시설도 없고 돈도 없다고 타이르며 "될 수 있는 것"만 찾다 보니 어느새 아무것도 없이 1년이 지났습니다.


 종종 국비교육기관에서 교육기간 동안 생활비대부에 대한 문자가 날아옵니다. 빚이 생기는 건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만 정말 하고 싶은 한 길이 있다면 스스로 투자하는 건 이제 당연한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모든 것을 겁내며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처럼 했던 일만 똑같이 반복하면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가진 것 안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옛날 공작시간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자연스럽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 때로는 빚을 내서라도 좋은 기회를 붙잡는 사람. 주저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항상 부러웠습니다. 지금의 저는 꿈도, 야망도, 의지도 없이 주저앉아 있기에 더더욱 그런 사람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동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죠. 어차피 벽을 넘어야 하는 지금 저는 주저 없이 타인의 도움을 구하고 기회를 붙잡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물론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지 방법은 모릅니다. 그저 일단 한 발 걸어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절연한 부모에게 돌아가는 심정은 뭘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