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고 호주로 떠난 적이 있었다. 내 나이 서른한 살이었다. 거주할 집 마련, 아내의 대학 등록, 나의 일자리 구하기 등 모든 게 처음이어서 뭐부터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내 글을 읽다 보면 눈치 챘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필요 이상으로 비판적 사고 기능이 발달해서 남을 쉽게 믿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와 그녀를 연결해 준 내 친척과 그녀의 어머니가 막역한 사이였고, 호주 생활 초기 어려운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줬기에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한 번도 누군가에게 속아본 적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굳게 믿었던 나조차도 그땐 미처 몰랐다. 우리가 덫에 걸렸음을.
진정한 ‘사짜’들은 만나는 순간 걸려들지 않는 방법은 없어서 안 만나는 게 최고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것은 당해본 사람만 아는 진실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당하는 건 변함이 없을 것 같다. 그동안 본 적 없는 화려한 언변(난 지금껏 그렇게 말 잘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과 사람의 순수한 믿음을 이용한, 그것도 자신의 어머니를 담보로 한 가면술을 당해낼 재간은 나에게 없다. (확실히 사기꾼들은 두뇌 회로 자체가 다르다)
호주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 집 경제 대공황이 시작됐다. 하필 호주 환율이 가장 높은 시기였기 때문에 예상보다 지출이 커진 와중에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까지 맞았으니 보통 위기가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사이 제주도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었다. 초등학교 때 코 묻은 용돈을 모아 100만원 가까운 돈을 저금해낸 저력을 다시 발휘할 시간이 왔다. 자발적으로 우리 집 기획재정부 장관에 취임(사정이 사정인 만큼 취임식은 생략하였다)한 후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했다. 당장 대출 이자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라도 집 크기와 생활비를 줄여야 했다. (사실 원룸부터 시작했으니 집 크기를 줄인 것도 아니지만...)
다행히 세상에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어서 좋은 집 주인을 만나 저렴한 가격에 전세를 구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됨을 확인한 것이 큰 위안이었다. 집 주인은 아무 조건 없이 전세 기간을 1년 연장해주시기도 했다. 고마운 마음에 에어컨을 그대로 두고 나왔는데, 기어이 전화 주셔서 이런 거 공짜로 받으면 안 된다고 10만원을 계좌로 보내주셨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
이제 생활비를 줄일 차례다. 이때 내가 밀어붙인 경제 정책 중 하나가 ‘생활 물품의 최소화’였고,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쓸 때는 확실히 쓰자’를 캐치프레이즈로 정했다. 하나하나 삶의 부피를 줄여나갔다. 나중에야 이러한 생활양식이 유럽,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고 있고, 이를 지칭하는 용어도 있음을 알게 됐다.
∙미니멀 라이프 :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을 두고 살아가는 삶을 일컫는 말
배낭여행을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 필수품들은 배낭 안에 다 들어간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생활이 가능하다. 사실 나머지는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늘 비우며 살자고 다짐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다시 채우는 데 여념이 없었던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일단, 없으면 안 될 것만 사기로 했다. 이미 가진 것 중 필요하지도 않은데 가진 것들은 좁은 집 공간 때문에라도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줬다.
다음은 우리 집의 미니멀 라이프 정책에 따라 ‘비웠더니 좋았던 것들’의 목록이다.
․ TV
TV를 없앴다. 전기세는 만원 내외로 줄어들었고, KBS에 수신료를 낼 필요가 없어졌다. TV 받침대를 살 필요가 없어졌고, 그만큼 공간이 넓어졌으며, 매달 IPTV 서비스에 나가는 돈을 아낄 수 있었다. 홈쇼핑 충동구매가 사라졌고, 자연스럽게 가족 구성원 간에 대화가 늘어났다.
TV를 비우자 행복이 채워졌다.
․ 침대
단비가 갓난아기였을 때, 굴러떨어질까봐 침대에서 재우기가 불안했다. 임시방편으로 바닥에서 자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편했다. 바로 침대를 없앴다. 침대가 있던 공간은 바닥에 따로 잠자리를 만들었다.
이젠 오히려 바닥에서 자는 게 더 편하다. 침대가 있으면 그 위를 걸어 다니기 힘들지만, 바닥에 깐 잠자리는 자유롭게 그 위를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셈이다. 침대가 차지했던 공간만큼 집이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었고, 이사할 때 가장 큰 짐이 사라졌다.
이번에 이사할 때에도 침대가 없어서(그리고 짐이 많지 않아서) 업체를 부르지 않고 혼자 이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트럭만 한 번 빌려서 비교적 큰 짐을 나르고 나머지는 자가용으로 날랐다. 냉장고와 세탁기만 이전 설치함) 무엇보다도 침대 사는 데 들어갈 뻔 했던 큰돈이 우리에게 왔다.
그래도 침대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매트리스만 까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바닥에서 자는 것처럼 그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어서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 자동차
자가용은 한 대만 두기로 했다. 다행히 직장과 집이 가까워서 걸어 다닐 수 있었고, 먼 거리를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자전거나 모터바이크를 이용했다. 요즘처럼 차가 막히고 주차할 공간도 부족할 때, 자전거나 모터바이크는 최고의 이동수단이다.
차를 한 대 더 구매할 비용을 아꼈고, 차 보험료, 자동차세, 수리비 등 자동차를 한 대 더 샀다면 들어갔을 돈이 우리에게 여비로 주어졌다. 기름값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바이크의 연비는 대략 승용차의 3~4배쯤 된다)
․ 핸드폰
예전부터 핸드폰에는 욕심이 없었다. 전화 잘 터지고 인터넷만 잘 되면 그만이었다. 굳이 최신 핸드폰을 비싸게 살 필요를 못 느껴서 중고 핸드폰을 샀다. 최신 핸드폰은 1, 2년만 지나면 가격이 급격히 하락한다. 이런 핸드폰을 싸게 사서 선택약정할인제도에 가입하면 요금도 25% 할인받을 수 있다. (핸드폰 회사는 이런 좋은 제도를 왜 홍보하지 않을까? 2년이 지난 핸드폰은 자동으로 선택약정에 가입시키면 될 텐데 왜 하지 않을까? 제도가 알려질수록 통신회사의 수익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시민 단체에서 계속 압박을 넣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역시 우리나라는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한다. 아는 만큼 돈이 된다) 약정이라는 허울에 숨겨놓은 교묘한 함정을 알기에 앞으로도 약정의 노예가 될 생각은 없다. 다행히 내 핸드폰은 잘 돌아가고 있다.
․ 시계, 지갑, 가방
시계가 하나 있었는데, 차고 다니는 게 불편해서 아는 동생에게 줬다. 이젠 늘 핸드폰을 갖고 다니면서 시간을 확인하기 때문에 불편을 느껴보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지갑과 가방을 갖고 다니는 것도 귀찮아져서 핸드폰, 신용카드만 주머니에 넣고 다니게 됐다. 몇 번 쓰지 않고 놔뒀던 지갑과 가방은 후배에게 줬다. 물론 가방이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에 백팩 하나와 자전거용 메신저 백은 남겨뒀다.
․ 입지 않는 옷, 신지 않는 신발
지금 옷장에 가보시라. 옷장에 처박아둔 채 꺼내지 않는 옷들은 없는가? 옷장에 있는 옷 중 지난 1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은 앞으로도 입지 않을 확률이 높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평소 신지 않는 신발들은 앞으로도 신지 않게 된다.
입지 않는 옷과 신지 않는 신발을 집에 쌓아두면 공간만 차지하고 제 역할도 못 할 테니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 술
자동차, 카메라, 오디오 등 남자들의 돈을 순식간에 증발시키는 취미들이 많지만, 그 중 제일은 술일 것이다. 술을 좋아하다 보니 통풍 진단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술을 줄이게 됐다.
이젠 그다지 술이 땡기지 않는다. 술보다 훨씬 좋은 것들을 그사이 많이 만나서 그렇다.
․ 성장 앨범
내 아이한테 뭐든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은 똑같다. 나도 남들 하는 건 다해주고 싶었다.
요즘은 성장앨범을 해 주는 게 대세라고 하니 큰맘 먹고 성장앨범을 계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성장앨범이라는 게 꼭 필요할까, 나중에 짐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이야 집에 걸어두면 보기 좋지만 훗날 아이가 다 크면 집에 걸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때가 되면 버릴 수도 없고 걸어둘 수도 없는 계륵 같은 존재가 되지는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문적인 사진사보다 내가 사진을 더 잘 찍을 수는 없겠지만, ‘아빠가, 우리 집에서, 평소에’ 찍어준 사진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포토북을 제안했다. 집에 쓸 만한 사진기가 있으니 내가 평소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육아일기처럼 글을 써서 포토북을 만들겠다고 하자 아내도 반겼다. 결국, 계약금을 날리면서 성장앨범 계약을 해지했다. (아내가 포토북 작업을 주로 하게 됐음은 비밀이다)
지금은 그렇게 만들기 시작한 포토북이 스무 권이 넘어서 훗날 딸에게 선물로 줄 생각이다.
․ 돌잔치
돌잔치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예전 의료기술이 낙후됐던 시절에는 태어난 지 1년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는 아이들이 많았다. 돌잔치가 생긴 이유도 생의 결정적 위기를 잘 버텨낸 것을 축하하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술이 발전한 지금은 돌잔치의 의미가 빛이 바랜 게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아이가 생기면 돌잔치 없이 첫 번째 생일파티 정도로 축하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해왔다. 아이한테도 돌잔치 당일 하루는 그동안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하루가 될 거라는 사실(팩트 폭행?)은 나의 신념에 힘을 더했다. 다행히 아내도 같은 생각이어서 가족, 친지만 모여 조촐한 생일 파티를 열었다.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의 돌잔치에는 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의 돌잔치에 다녔었다면 부조한 돈이 아까워서라도 돌잔치를 할지 말지 고민했을 것이다.
․ 결혼식
미니멀 라이프라는 단어조차 몰랐을 때의 얘기지만, 결혼식은 주례 없는 결혼식을 했었다. 어느 결혼식을 가 봐도 주례사를 귀담아듣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결혼식 날 주례를 없애고 대신 결혼식 내내 하객을 마주 보는 것으로 아내와 의견을 맞췄다. 신랑, 신부가 바라보고 있어서 결혼식에서 떠드는 사람은 없었다. 1호차, 2호차 등 불과 몇 km를 가기 위해 빌리는 웨딩카가 굳이 필요할까 싶어서 렌터카는 빌리지 않았다. 예단, 예물 등은 최소화했고, 결혼식을 간소화해서 아낀 돈으로 신혼여행에 투자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신혼여행을 터키로 갔는데, 그 전까지 이불 밖을 나가는 것조차 싫어했던 내가 훗날 세계 일주의 꿈을 품게 된 데에는 신혼여행에서 탔던 카파도키아 열기구의 역할이 컸다.
여기까지 읽고 ‘미니멀 라이프 = 무조건 아끼는 것’ 이라고 넘겨짚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 미니멀 라이프가 일단 아끼고 보자는 거라면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루지 말자는 평소 신념과 충돌하게 된다. 때문에 미니멀 라이프의 사전적 정의에 의미를 하나 더 얹었다.
우리 집 미니멀 라이프 경제 정책의 캐치프레이즈를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자’에서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쓸 때는 확실히 쓰자’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자’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지금부터는 ‘쓸 때는 확실히 쓰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행자의 미니멀리즘
쓸데없는 데 새는 돈을 아껴서 쓸 때는 확실히 쓰자! 여기서 ‘쓸 때’란 돈을 바르게 써야 할 때를 말하는데, 베풀어야 할 때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를 의미한다. 베풀면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빚을 갚는 와중에도 기부는 줄이지 않았다. 하나 더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는 돈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지금 어렵다고 하고 싶은 것을 미루면 나중에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에는 돈을 아끼지 말자. 다른 불필요한 소비를 더 줄이면 된다’
여기에는 ‘여행자의 미니멀리즘’이라 이름 붙였다. 이 생활 철학은 훗날 위기 극복 후에도 미니멀 라이프가 우리 집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우리 집 미니멀 라이프의 중심 뼈대가 된 여행자의 미니멀리즘, 다들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내가 만든 말이어서 그렇다. 개념 설명을 위해 처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사연을 불러와야겠다.
2012년 호주에서 살 때, 잠시 짬을 내어 뉴질랜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신혼여행지로 점찍었던 곳이지만, 아내가 터키로 신혼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바람에 다음을 기약했던 그 곳.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인 것이, 터키에서의 신혼여행 마지막 밤 호텔 방에서 무심코 TV 뉴스를 틀었는데, 크라이스트처치(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주요 관광 도시) 대지진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때 뉴질랜드로 신혼여행 가자고 고집을 부렸다면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당시는 호주에서 지하철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던 때였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고된 일이었지만 이것만 끝나면 뉴질랜드에 갈 수 있다는 설렘에 힘든 줄도 몰랐다, 고 하면 거짓말이고 힘들어도 꾹 참았다. 힘들게 모은 돈이니만큼 뉴질랜드에서 최대한 아껴 쓰기로 하고 딱 쓸 만큼만 환전해서 여행을 떠났다. 뉴질랜드는 중간계(신계와 인간계 사이의 나라)라는 별칭에 걸맞게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고, 사람들도 좋아서 여행 내내 즐거움이 가득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후반부에 터졌다. 귀국을 며칠 앞두고 방문한 도시는 퀸스타운.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포츠의 천국이다. 스카이다이빙, 래프팅, 제트 보트, 번지점프... 길거리를 거닐 때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거 안 하고 갈 거냐며 여행업체들이 대놓고 펌프질 했다. 너무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사실 카드가 있어서 현금 인출기에 돈을 뽑으면 됐는데, 돈을 아껴야 한다며 애써 눈길을 돌렸다.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후 한참을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때 돈을 뽑아서라도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하고 왔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다짐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하고 싶은 일에는 돈을 아끼지 말자. 인생 한 번 사는 거다.’
여행자는 가진 게 배낭 하나밖에 없는 가난한 신분이다. 그럼에도 여행자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신분일 수 있는 이유는 ‘여행지에 다시 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데 있다. 다시 올 수 없으니 지금 여기서 하고 싶은 것,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것, 여기서 해야 하는 것은 일단 하고 보자! 대신 다른 것을 줄이면 된다!
이것이 바로 여행자의 미니멀리즘이다. 여행자의 미니멀리즘이야말로 미니멀 라이프를 움직이는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니멀 라이프가 가져올 수 있는 기분 좋은 변화에 대해 얘기해봤다. 이제 미니멀 라이프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