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몰랐던 '중산층'의 의미.

by 온다정 샤프펜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중산층'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

하지만 정확한 '중산층'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꽤 후의 일이었다.

어릴 땐 막연하게 중간 정도 사는 사람들을 중산층이라고 부르는구나 생각했다.

이제껏 살면서 우리 집과 친구 집을 비교해 보아도 큰 차이를 못 느꼈고, 비싼 물건은 못 사더라도 뭔가 타당성이 있는 사고싶은 것이 생겼을때 엄마에게 부탁하면 살 수 있을 정도의 평범한 가정이었기 때문에 우리 집은 당연히 '중산층'이겠거니 생각하며 살았다.

게다가 성격상 나와 다른 환경이나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비교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차이가 난다고 해도 '왜'라는 의문보다는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여하튼 난 대학생이 되고 한참 후에야 내가 이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에 별 취미가 없었지만 다행히 그림을 좋아해서 경기도 소재의 한 미술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학교가 서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과에는 집이 서울인 친구들이 꽤 많았다.

난 경기도 부천의 작은 동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한 동네에서 자라고 공부한 중, 고등학교 친구들의 비슷 비슷한 느낌과는 다르게 여러 지역에서 모인 대학 친구들은 확실히 각각의 개성이 느껴졌다.

자라온 환경과 지역이 달라서 그런지 나와는 다른 성격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고 느꼈고 대학생활을 하면서 그 다름은 성격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처음 친해진 3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넷은 이제껏 내가 사귀어왔던 학창 시절의 친구들처럼 밥도 함께 먹고, 과제도 함께하고 미팅도 함께, 술도 함께 먹었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우정을 쌓아나갔고, 친구라면 으레 서로의 집을 오가며 친분을 쌓는 과정도 당연히 있었다.

처음으로 간 친구의 집은 5호선 화곡역 근처였다. 예고를 졸업한 그 친구는 흰 피부에 까맣고 긴 머리카락을 가진 뭔가 귀티가 흐르는 미인형 얼굴을 가진 친구였다. 처음 가는 대학 친구의 집이라 조금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의 집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5층짜리 평범한 아파트였다. 그 친구는 미모의 언니도 있었는데, 딸 둘을 키우신 그 친구의 어머니는 여성스러운 성격으로 집을 센스 있게 잘 꾸미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난 외모와 다르게 소탈한 성격을 가진 그 친구가 좋게 느껴졌고, 그 친구의 외모에 어울리는 그런 집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몇 차례 그 친구의 집에서 모였었는데, 다른 친구가 이번엔 자기 집에 가자며 우리를 초대했다.

그 친구는 나처럼 아담한 키를 가진 다소 어려 보이는 평범한 외모의 친구였다.

그 친구의 집은 일산에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 일산까지 꽤 긴 거리를 가야 했지만 우리는 친구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그 친구는 일산의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그 친구의 집은 나에게 꽤 큰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큰 집을 본 적이 없었다. 집에 초대하기 전 그 친구는 자기 집이 69평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친구의 집이 몇 평인지, 우리집이 몇 평인지, 관심을 가져본 적도, 친구에게 집 평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69평의 집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집이 어찌나 큰지 거실이 우리집 모두를 합친 것보다도 커보였다. 부엌도 따로 있었고 방도 많았다. 이사 온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집 크기에 비해 가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크게 느껴졌을까.

조그만 동네에서만 살던 나는 그렇게 큰 아파트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던거 같다. 난 많이 놀랐지만 막 티를 내지는 않았다.

다른 두 친구는 그때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다른 한 친구는 그 친구의 집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크기만 하고 살림도 없이 텅텅 빈 집이 뭐가 좋아보이냐고.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않지만, 아마도 내가 그 집이 엄청 좋다고 이야기 했었을 때인 것 같다.

그 좋은 집을 별로라고 이야기한 이 친구의 집은 강남에 있었다. 그 친구는 40평 후반의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왜 그 친구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은 집이었다. 크기는 일산 친구 집보다 크지 않았지만 고급스러운 살림살이에 인테리어가 잘 된, 딱 텔레비전에 나올 것 같은 부잣집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집이었다.

그때 어머니도 뵈었는데, 엄청 세련되시고 잘 꾸미고 계셨다. 그때 친구도 자기 주관이 뚜렷한 성격이었는데 어머니도 역시 센사모님의 느낌이셨다.

그리하여 모든 친구들의 집을 다 돌았다. 우리 집만 빼고...

누구도 우리집에 가보자! 하고 말하지 않아서 나도 딱히 초대하지 않았다. 초대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그때 우리 집도 아파트였다. 부천의 변두리 동네에 동이 하나밖에 없는 20평대의 복도식 아파트. 그때까지 난 그 집이 작다거나 부끄럽다거나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나와 비슷한 집에 살거나 더 낡고 더 작은 집에 사는 친구도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쯤 그 아파트로 이사 왔는데, 그전에는 더 작고 낡은 연립주택에서 살았기 때문에 신축으로 지어진 그 아파트가 꽤 맘에 들었다. 침대와 책상 하나가 겨우 들어가서 앉을 공간도 없는 내 방이었지만 처음으로 침대를 갖게 되어서 마냥 좋기만 했던 기억이다. 거실에 꽉 찬 3인용 소파가 폭신하고 좋았다. 정말 부자가 된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중산층이 아닐 거라는 의심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 친구들의 집을 순회한 후 우리 집이 친구들의 집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남과 다른 것이 그렇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좋은 집에 사는 것이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던가 또는 내 존재가 초라하게 느껴져서 우울하다던가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우리집은 중산층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후 '아닐 수도 있겠다'에서 '확실히 아니구나'라고 확정 짓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난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같은 과의 한 친구도 휴학을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경기도 안산에 사는 친구였는데, 뱅글뱅글 안경에 외모도 수수하고 나의 동네 친구들과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그런 친구였다.

전부터 알고 있던 친구였지만 같이 복학한 후에 우리는 더욱 친해졌다. 사실 전에 만나던 친구들은 성격이 센 부분이 있어서 좀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이 친구는 사는 지역도 그렇고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것 같아서 나와 잘 맞을 것 같았다. 우리는 조별 과제도 늘 함께하였는데, 한 날은 밤새 작업할 일이 있어서 그 친구 집에 가게 되었다. 나와 비슷할 것만 같았던 그 친구는 거실이 두개로 나눠지고, 키친과 다이닝이 나눠져있는 그런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때 확실히 알았다. 내가 중산층의 기준을 잘 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나와 내 어린 시절 친구들은 중산층이 아니라 서민에 가까웠다.

그 후 엄마에게 이 일화에 대해 몇 차례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전까지는 별 반응 없으셨던 엄마가 나와 휴학도 같이 하고 각별히 친하게 지내는 안산 친구 집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나의 모든 대학 친구들이 누구 하나 빠짐없이 넓고 깨끗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 같아, 엄마 마음에는 꽤나 신경이 쓰이셨나 보다.

결국 우리는 엄마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대학 4학년 때였던가, 없는 돈에 엄청난 대출을 끼고 동이 세 개나 있는, 무려 30평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신축도 아니었고 새로 도배, 장판도 못했지만 이사 전 날 가족 모두가 나서서 새 집처럼 쓸고 닦았다. 심지어 벽지까지 걸레로 닦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다른 친구들의 집에 비하면 평범한 집이었겠지만, 난생처음 살아보는 30평 아파트는 나에겐 신세계였다.

화장실도 두 개고 현관문(?)도 두 개였다(중문 포함) 난 너무너무 좋아서 자다가 깨어 새벽에 물 마시러 부엌에 갈 때마다 어렴풋이 보이는 집안의 고급스러운 실루엣에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매일 밤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가족이 죽을때까지 여기서 살게 해주세요'(교회는 안 다녔다)라고 그리고 항상 불안했다. 뭔가 잘 못돼서 이 집에서 오래 못 살고 곧 이사 가게 될까 봐.

물론 그 집으로 이사 갔다고 해서 우리 집이 중산층으로 상승하진 않았지만, 마음만은 중산층 이상이었다.

그 후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 4년 만에 그 집을 팔고 오래된 단독주택의 전세로 이사 가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결말이었지만, 엄마가 집을 팔기 전에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봤을 때 난 쿨하게 '상관없어'라고 말했다. 많이 아쉽긴 했지만... 이 집을 파는 데는 엄마에게 당연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다른 친구들처럼 잠시라도 좋은 집에 살아볼 수 있어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후일담이지만, 복학 후에 화곡에 아담한 5층 아파트에 살았다는 그 친구와 우연히 같은 전철을 타서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경찰이셨는데, 얼마 전 높은 자리로 승진하게 되시면서 한강이 보이는 신축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일하신 아빠한테 정말 감사하다고, 아빠 덕분에 좋은 집에서 살게 돼서 너무 행복하다고. 나보다 1년 먼저 졸업 한 그 친구는 바로 홍대로 편입하여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후문이다.

잘난 누구와 비교하거나 누군가의 행복이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나눈 잠깐의 대화로 그 친구가 얼마나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는지 얼마나 기쁜 마음인지 느껴져서 그 친구의 한강 보이는 집보다도 이 친구가 느끼는 행복감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원래도 하얗고 예쁜 얼굴이 더욱 반짝반짝 빛이나 보여서 더 그랬다.

그 친구가 먼저 내리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날따라 유쾌하지 않았다. 걸어가는 내내 왠지 맥이 빠지는 요상한 기분이드는 건 아무리 나라도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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