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그까짓 게 뭐라고.

by 온다정 샤프펜

요즘은 명품이 많이 흔해졌다.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이태원의 사00한남이라는 곳에 갔었다. 내게는 생소한 이곳이 젊은사람들에게는 핫플레이스인 모양이었다. 전시장이 있는 트랜디한 서점, 깔끔해 보이는 식당과 카페, 작은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많은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나이가 들었는지, 요즘 젊은 처자들을 보면 다들 스타일도 세련되고 예쁘고 날씬해서,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또 하나, 그곳에 있던 젊은 20대, 30대 여성들이 대부분이 명품 가방을 메고 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한 후 카페에 잠시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20대 초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둘이 샤0가방과 디0가방을 메고 카페로 들어왔다. 우리 옆자리에 자리를 잡은 그녀들은 각자의 가방을 신줏단지 모시듯 살포시 내려놓고는 테이블에 앉았다.

'와, 저렇게 어린나이에 어떻게 저런 비싼 가방을 샀을까?'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명품은 잘 모르긴 하지만 요즘 하도 주변에서 명품에 관심들이 많아서 흘려듣기도 하고, 또 너튜브에 우연히 뜬 명품 가방 소개 영상을 호기심에 몇 개 보았더니, 명품 무식자인 나조차도 어떤 브랜드가 얼마인지, 어떤 브랜드의 어떤 가방이 유명한지 정도는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가방치고는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 같은 아줌마도 가끔 사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으니, 예쁘고 한창 꾸미고 싶은 젊은이들은 오죽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점심값을 아껴서라도 예쁜 명품 가방 하나 장만하는 것이 그들의 작은 플렉스이자 기쁨일지 모르겠다.


그녀들이 멘 각양각색의 명품 가방들을 보고 있자니, 브랜드에 관련된 나의 대학 시절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대학 시절 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보통 여대생들이 한창 외모에 관심을 두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미적감각이 뛰어난(?) 미대생들이 모여있는 이곳은 두말하면 입 아플 거다.

전에 말했듯이 경기도의 작은 도시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는 브랜드에 한참 무지했다.

그때까지 옷은 주로 메이커가 없는 일명 '보세'옷을 주로 사 입었고, 신발이나 가방도 마찬가지였다. 동네 시장이나 역 근처 지하상가가 나의 주 쇼핑 장소였다.

그러다 대학에 입학할 즈음, 명동과 이대 근처에 엄청나게 많은 옷 가게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틈만 나면 동네 친구들과 그곳에 가서 아침부터 밤까지 눈에 불을 켜고 예쁘고 싼 옷들을 찾아 헤맸다.

예쁜 옷을 좋아했던 나와 친구들에게 그곳은 보세 옷의 성지였다. 점심 먹는 것을 잊을 정도로 열심히였던 우리는 어둑어둑 해 질 무렵 겨우 쇼핑을 마치고 퉁퉁 부은 다리로 00리아에 들어가 햄버거로 늦은 한 끼를 때운다. 돌아가는 길, 그래봤자 3 천원, 5 천원짜리 옷 들이었지만 양손 가득 들린 커다란 비닐봉지가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나에겐 정말 행복했던 소중한 추억이다.

비싼 옷들은 아니었지만, 몇 시간씩 발품을 팔아 사온 옷들이 내 눈에는 너무나 예뻐 보였고, 옷을 좋아하고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나였기에 그 옷들로 나름 신경 써서 차려입고 학교에 다녔다. 때로는 과한 코디로 과 친구들의 시선과 질타가 담긴 질문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못 입을 것 같아서 그냥 내 멋대로 당당히 입고 다녔다. 그게 청춘의 특권이려니 하며.


당시에 난 내가 입은 치마의 모양이 A 라인인지 주름인지, 꽃무늬인지 체크무늬인지가 가장 중요했고 어느 메이커인지는 관심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초겨울의 학과 교실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그날도 난 너무나 앙증맞고 귀여운 체크 주름 미니스커트에 핑크 숏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한 학번 어린 동생이 나의 옷차림새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뭔가를 발견한 듯 말했다.

"어? 와, 진짜 신기하다!"

"왜? 뭐가?"

"언니 옷은 왜 지퍼에 있는 브랜드 로고랑 가슴에 있는 브랜드 로고가 달라?"

그때까지 옷 브랜드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입고 있는 옷에 어떤 로고가 붙어있는지도 몰랐다.

내 패딩 점퍼 가슴에는 o.z.e.c 지퍼 손잡이에는 moonk라고 적혀있었다. 다시 보니 둘 다 어디서 많이 본 상표 모양이었다. 다만 스펠링이 좀 다른, 일명 짝퉁 옷이었던 것이다.

다른 과 친구들 몇몇이 신기해하며 다가왔다.

1초 사이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러게 왜 상표가 다른 거지?''상표가 다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혹시 내가 창피한 상황인가?' '뭐하고 대답하지?' 등등

그때 나와 단짝인 한 친구가 큰 소리로 말했다.

"뭐 어때? 다를 수도 있지! 호호호호"

갑자기 일어난 사건에 살짝이 당황스러웠던 난 사실 어떻게 그 상황이 종료됐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친구 덕에 그 상황이 얼렁뚱땅 지나간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나도 그 일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금방 잊어버렸다.

오히려 대학을 졸업하고 시간이 흘러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모든 상품에는 브랜드라는 것이 존재하며, 이름있는 브랜드들은 주로 백화점에 팔고, 또 그 브랜드별로도 등급이 있어서 가격 또한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그런 것들에 많은 신경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그때 내가 예쁘다고 입고 다녔던 개성 넘치는 그 옷들이 그들에게는 어떻게 비쳤을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특히 과 안에는 강남 파라 불리는 무리가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사는 동네가 강남이라 강남파인가보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무리들은 내가 심지어 중저가 브랜드의 '브'자도 모르고 관심도 없을 때 이미 명품 옷과 명품 가방을 가지고 다녔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착용한 것들이 나같이 알아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겠지만, 그들 눈에는 내가 좀 외계인(?)처럼 보였을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브랜드에 대한 나의 무지 덕에 별 열등감 없이 4년을 잘 보냈다. 이제 명품도 알고 어떤 브랜드가 얼마짜리인지도 대강 알게 되었기 때문에 가끔 그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또 요상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지금은 나도 속세의 때가 묻은지라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걸친 브랜드에 먼저 눈이 갈 때가 있다. 그리고 길거리의 사람들이 메고 있는 비싼 가방이나 비싼 차를 보며 나도 모르게 나와 전혀 상관없는 그들을 평가하기도 하고 비교하기도 하는 것이다.

차라리 몰랐을 때가 행복하다고 요즘 나는 명품 백 한두개쯤은 갖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에 필리핀 생활을 보여주는 너튭을 즐겨보기 시작했다.

필리핀은 국민의 80~90%가 빈민층이라고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모두가 가난하기 때문에 서로 비교할 필요도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작은 것을 나눌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 필리핀의 여성들은 모두 명품 가방을 가지고 다닌다. 그 가방들은 시장에 가면 누구라도 저렴한 가격에 브랜드 별로 골라가며 구입할 수 있다.

모두가 가짜 명품 백을 들기 때문에 나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방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어차피 명품은 남이 알아봐야 의미가 있는 것일 테니까.



브랜드1.jpg
브랜드2.jpg
브랜드3.jpg
브랜드4.jpg
브랜드5.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스쳐간 변태들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