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의 끝에서 나를 이해하다.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나에게

by 루아

사람들의 뿌리엔 저마다의 트라우마와 열등감이 자리한다. 나에게도 그런 것들을 만들어 낸 불행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불행을 억울함으로 바꿔, 주변 사람들에게 늘 억울하다 호소하며 살았다.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살아있다 느끼는 사람이 있고, 무엇인가 성취해야 비로소 살아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였다. 늘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듯 살아왔다. 그 뿌리는 성적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나는 부모님이 만족할만한 성적표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공부법 자체를 알지 못했고 흥미도 없었다. 한 번 훑어본 것으로 공부를 했다고 착각했고, 맞벌이 부모 밑에서 딱히 지도받을 시간도 없었다.


그땐 오빠도 나와 비슷했다. 그래서 성적표 나오는 날은 우리 남매 모두에게 세상이 무너지는 날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오빠의 성적은 전교권에 오르기 시작했다. 어떤 과목은 심지어 전교 한자리 수였다. 반면 나는 여전히 중간이었다.


같은 날 성적표를 받아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오빠는 당당했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엄마 앞에 고개 숙인 나와 '너는 들어가 있어'라는 말로 배웅받던 오빠의 뒷모습. 그 장면은 아직도 내 안에서 억울함을 뿜어내는 유전 같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하지 않으면 그때의 무력한 나로 돌아갈 것만 같다.


그리고 끝내 사건이 터졌다. 오빠의 수능 성적이 발표된 날이었다. 가채점은 상위권도 노려볼 만큼 좋았다. 그런데 성적표에는 최하 등급이 줄지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묻자, 오빠는 '밀려 쓴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뒤 부모님이 학교에 상담을 다녀온 날, 모든 것이 드러났다. 오빠가 2년 넘게 성적표를 위조해 왔던 사실이.


그제야 나는 억울했다. 그동안 비교당하고 혼나며 쌓인 상처들이 한꺼번에 터졌다. 부모님이 나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부모님은 오빠의 일로 무너져 있었다. 엄마는 두려워했고 아빠는 분노했다. 집안은 냉전이었고, 오빠는 친구를 따라 아무 대학이나 들어간 뒤 군대로 도망쳤다.


남은 건 나였다. 사과받지 못한 억울함이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무리 말해도 내 감정은 공감받지 못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감정은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외로움이 시작된 것은.


그래서 그 불행을 억울함으로 치환해 살아왔다. 아빠와는 3년간 말도 하지 않고 오빠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엄마와는 잘 지내다가도 울컥 억울이 치밀 때면 말했다. 그때의 아픔을. 몇 년이 지나도 그 일을 입에 담으면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다 아이러니하게도, 억울과 학벌 콤플렉스가 만든 나의 열등감을 내려놓게 된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인서울 대학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그 학벌이 그의 인생을 버티게 하는 자부심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 남매를 성적표 하나로 마음껏 혼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는 주 3일만 일하는 프리랜서이다. 남은 시간엔 농사를 짓고, 몸이 다쳐 걷는 일이 버거울 때도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학벌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인서울을 자랑하던 아버지보다 지금의 내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행복하다는 사실이 나를 억울에서 벗어나게 했다. 남의 몰락으로 내 콤플렉스가 사라진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다들 그렇게 자신을 지탱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던 삶은 허상이었다. 이젠 남이 만든 상처에 나를 가두지 말고,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걸어갈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