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기대도 아닌, 내 속도로 사는 법
나의 침전은 할 수 없는 것을 해냈을 때 시작됐을까, 아니면 해냈다고 보여주기 위한 인정욕구가 인생의 목표가 되었을 때부터 시작됐을까.
나는 지금도, 나로 인해 타인들이 최상이었으면 한다. 나와 있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으면, 나에게 털어놓는 고민이 지금 당장 모두 해결되었으면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희망은 어느새 변질되어 나와 함께 간 식당이 맛이 없어도, 나와 함께 본 영화가 재미없어도, 나와 함께 한 날의 날씨가 좋지 않아도 나는 억지로 좋은 점을 찾아내 '그래도 괜찮았어.' 라며 우기곤 했다.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이 그 사람에게 실패로 남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가 부담으로 다가와 남의 고민을 듣는 일이 점점 힘들어졌다. 해결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과,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자괴감이 괴로웠다.
이런 성향이 굳어진 건 아무래도 사회 초년기를 방송국에서 보낸 영향이 컸다. 위에서 시키는 건 무엇이든지 해야 하는 곳, 말하지 않아도 미리 해놔야 하는 곳, 부당하게 혼나도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곳.
그 시절의 나는 혼나지 않으려,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으려, 모르는 것을 오직 노력으로만 메웠다. 그리고 그 고됨을 난 '열정'이라 착각했다.
터무니없는 지시도 많았다. 다섯 대의 차량이 동시에 달릴 수 있는 5차선 도로를, 하지만 촬영을 해야 하니 차량이 다니지 않는 도로를 섭외하라거나, 연예인들이 적어둔 위시리스트를 보고 협찬을 받아오라는 요구 등 내용은 무궁무진했다.
특히 협찬일이 괴로웠던 것은 홍보를 가장한 갑질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프로 나오지도 않는 시청률을 가지고 TV에 나온다는 이유로 작은 소품가게나 음식점 사장님들에게 제품 무상제공이나 장소 대여를 부탁해야 할 때면 입 안이 바짝 말랐다.
그럼에도 해냈을 땐, 해냈다는 그 사실 하나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해내지 못하면 혼이 났고, '일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 테니까.
그렇게 시작된 사회생활의 논리는 개인적인 인간관계까지 번졌다. 상대를 위해 뭐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불특정 다수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언젠가부터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남의 제안에 거절하지 못했고, 누군가의 표정이 어두우면 '내 탓일까?' 불안해했다. 상대방이 지루해 보이면 억지로 재밌을 이야기들을 떠올렸고, 어색함이 느껴질 때면 불필요한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비밀이나 말실수를 내뱉고, 집에선 이불속에서 후회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넌 세상의 중심이 아니야.'라는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다들 각자의 우주를 꾸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억지로라도 인지시키고 있다. 남의 기분이 나빠 보여도 그건 그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걸. 남의 고민도 그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고 내 할 일은 그저 '들어주기'뿐이라는 걸.
그렇게 지내보니 내가 남의 고민으로 나의 시간을 얼마나 낭비했는지 알게 되었다. 때문에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노력의 방향을 이제는 나에게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랬더니 인생은 단순해지고, 가벼워졌다.
모두 각자의 우주를 꾸미고 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고, 침범해서도 안된다. 그저 그 우주에 몇 번 놀러 가고, 그 우주의 고민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충분하고.
그리고 남은 힘을 나의 우주를 꾸미는 데에 써보자. 소행성이 스쳐가도 상처받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평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