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일상이 된 시대에 나를 돌보는 방법
어느 순간부터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일상에 스며들었다. '웰빙'처럼 한순간 떠오르다 사라지는 유행어가 될까 싶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한 번쯤은 내뱉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아마 모두가 조금씩 타들어가는 것이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 역시 그랬다. 너무 타버려 다시 되돌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들기도 했다.
나는 방송작가 중에서도 교양 프로그램의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시사나 경제 프로그램을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작가의 소개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당연히 교양 프로그램으로 전달받았기에, 면접을 보는 작가가 '그럼 교양 작가가 되고 싶은 거예요?'라고 묻자 주저 없이 '네.'라고 답했다. 모든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알고 보니 면접을 본 프로그램은 새 시즌을 맞아 프로그램의 주제만 유지한 채 포맷이 예능으로 바뀌었고 제작진도 모두 예능 쪽으로 교체됐다.
하지만 급하게 인력이 필요했던 그들은 저 답변을 들었음에도 나를 고용했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첫 출근날이었다.
나는 전 교양 프로그램에서 서브 작가로 일했지만 이 프로그램에선 다시 막내작가가 되었다. 팀은 두 개였고 아래 막내작가가 더 있었지만 그는 원래 이 작가진과 일해왔던 막내작가였다.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의 방식도 팀의 분위기도 모두 달랐다. 사람들도 낯설었고 당연히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예능판에서 교양을 하겠다고 나대는 돌이 어떻게 예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믿었다. 노력하면 언젠간 인정받을 거라고. 실제로도 내레이션을 잘 썼다는 칭찬을 받을 때면 그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일까 하는 착각도 들었다. 때문에 2박 3일 밤을 새워도 버텼고 눈앞에서 성매매 이야기를 늘어놓는 PD앞에서도 웃으며 못 들은 척을 하며 지냈다. 그럼에도 같이 일하던 막내와 비교되는 차별은 참 비참했다.
일상이 된 차별과 과한 업무는 당연히 날 지치게 했지만 난 인정하지 않았다. '노력하면 언젠가 인정받겠지.'라는 무모한 신념으로 날 갈아 넣었지만 결국 프로그램은 끝났고, 내 안엔 건강도, 일상도, 인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무서웠던 건 다시 일할 용기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회피했다. 법적으로 근무 시간이 정해진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렇게 들어간 곳이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하지만 인정욕구에 절여진 나는 그곳에서도 방송작가처럼 일했다. 상사의 기분을 살피며 나를 갈아 넣고, 아무리 먼 매장에 발령이 나도 그저 수용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왕복 세 시간 거리의 매장에서 나는 두 번째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모든 것이 엉켜버렸다는 것을.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은 여전했지만 눈앞에 진급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진급을 한다고 해서 행복해질 것 같지도 않았고, 과한 업무가 기다릴 게 분명했는데도 난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무엇을 위해서 준비하는지도 모른 채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떨어지면 오히려 안도했다.
그리고 세 번째 진급 도전을 앞뒀을 때 눈물이 났다. 시도 때도 없이. 그제야 정신과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나 자신의 인정이었단 것을.
진급을 미뤄도 괜찮았다. 멀다면 가까운 매장으로 옮기면 됐다. 나약해도 되고 이기적이어도 된다. 쉬어도 된다.
하지만 나는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내 욕구를 미뤄두고 오로지 노력으로 버텨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갔다. 그리고 결국 완전히 타버렸다.
번아웃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이다.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인정 위에 나를 돌보는 노력을 쌓는 것이다.
그러니 출근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며 '저 수많은 차 중 한 대만 나를 치어주지'라고 생각하는 당신, 갑자기 사고가 터져 회사가 있는 지역의 출입이 봉쇄됐으면 싶은 당신, 번아웃이다.
당신의 번아웃은 지금 그곳에서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성취감은 상사나 동료가 모두 삼켜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선 당신의 소중한 노력의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그러니 도망쳐라.
당신은 나약하다. 그래서 쉬어야 한다.
우선 먹고 싶은 걸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줘라. 나와 내 사이가 나빠지면 그만큼 답 없는 일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