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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린이 엄마의 밥밥밥

by 세상에 Mar 04. 2025

입맛이 까다로운 다섯 살 아들에게 아침에 뭐가 먹고 싶냐 물었더니만, 샌드위치가 먹고 싶단다.

토마토, 치즈, 오이, 양상추, 허니머스터드 등 건강한 조합으로 샌드위치를 대령했더니만, 자기가 먹고 싶은 스타일이 아니라며 입도 안 댄다. 갑자기 배도 안 고프단다. 아들은 학교 갈 준비도 안 하고 침대에 다시 뒹굴 거리기 시작했다.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내 입에 부스터가 달리기 시작했다. 

네가 먹고 싶은 것을 해 달라고 해서 엄마가 만들었는데 왜 안 먹냐. 

배고프다면서 왜 갑자기 배가 안 고프냐. 

해달라고 한 음식을 해줬는데, 안 먹으면 엄마가 속이 상하다. 

빨리 안 챙기고 뭐 하냐.

엄마는 먼저 나갈 거다. 

오늘 하교 후에 놀이터 타임은 없다...


잔소리와 푸념, 그리고 협박으로 이어지는 랩을 속사포로 쏘아댔다. 


'양상추가 먹기 싫었어'

아들 손을 잡고 학교 가는 길에, 이성을 찾고 물어보니 양상추가 싫어서 샌드위치 먹기가 싫었단다. 

그래.. 이유 없는 행동은 없지. 


"아들아. 아까 엄마가 화를 내서 미안해. 그런데 엄마는 우리 아들이 골고루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는 마음이야. 아들이 건강해야 엄마랑 신나게 놀지."

"알아. 나도 노력하고 있어."


'나도 노력하고 있어' 한마디에 마음이 찡 한다. 

실은 아들이 나의 형편없는 요리 솜씨를 잘 견뎌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요리가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식재료를 사서, 다듬고, 요리를 하고, 먹고, 치우는데 걸리는 에너지와 시간을 생각하면, 외식을 하고 깔끔하게 먹고 들어와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일을 핑계로 요리를 안 한 지 오래였다. 평일은 친정엄마집에서 저녁을 먹고, 주말에는 바깥놀이를 핑계로 밖에서 사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물론 평일에 건강한 친정엄마의 저녁상이 외식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주기도 했다.


그런 내가 밖에서 뭘 좀 사 먹기 마뜩지 않은 싱가포르에 와 있으니,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올 리 만무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도 간단히 해 먹던, 카레, 육전, 미역국, 스파게티, 어묵탕 등등으로 연명했다. 화려한 친정엄마의 밥에 길들여진 아들은 나의 형편없는 음식솜씨에 깨작거리며 먹다 숟가락을 놓기 일쑤였다.


그러다 현지 재료를 가지고 현지 음식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현지식 샤부샤부, 현지식 양배추 볶음, 현지식 토르티야 쌈 등등

엄마의 요리를 카피해 보기도 했다. 호박죽, 오므라이스, 숙주볶음..

그러다 잘 안 보이던 식재료를 사용해 보기도 했다. 주키니, 중국식 시금치, 비트..

더불어 새로운 간식을 사 보기도 했다. 중국식 찐빵, 동남아식 젤리. 

새로운 과일도 도전해 보았다. 롱간, 파파야, 패션 프루트, 살락 등등

아들은 낯선 음식과 식재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고개를 저으며 그냥 스파게티나 끓여달라 재요청을 하기도 했다. 


흑백요리사 참가자도 아니고, 음식 제공과 동시에 아들에게 즉시 냉혹하게 평가받는 현실이 속 상할 때가 많다.


아들이 잘 먹으면, 그날은 행복하다. 

하지만 안 먹으려고 온갖 애를 쓰는 아들을 보면, 화가 난다. 

처음에 그 화의 근원은 밥을 안 먹는 아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또 생각해 보면 맛과 영양을 생각해 재료를 선정하고, 다듬고 요리를 하는 나의 정성과 에너지가 한꺼번에 부정당하는 느낌이어서가 가장 큰 요인인 것 같기도 하다. 


친정 엄마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요리는 싫어하지만 자식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엄마의 도리이자 큰 역할이라 나의 잠재의식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아들이 밥을 잘 먹지 않으면, 내가 도리와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느낌이 들어 화가 나고 속상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화는 아들에게 내지만, 실은 나 자신에 대한 속상함이나 화이다. 


오늘도 또 정체불명의 요리를 하며 아들에게 이야기한다. 


엄마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려고 계속 노력할 테니, 아들도 조금만 더 지켜봐 줄래?


<양상추 가득한 햄버거와 집에서 튀긴 고구마. 그나마 성공적이었다><양상추 가득한 햄버거와 집에서 튀긴 고구마. 그나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맥도널드에서 먹은 햄버거가 더 재미있고 맛났나 보다><하지만 맥도널드에서 먹은 햄버거가 더 재미있고 맛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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