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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중국어

by 세상에 Feb 27. 2025

해외살이 국가 선택의 마지막 두 후보는 싱가포르와 홍콩이었다. 이 중 홍콩은 이제 너무 중국이라는 매우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 싱가포르가 나의 일년살이 국가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막상 싱가포르에 살다 보니 중국을 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웠다. 여기저기 보이는 중국어 간판과 중국어를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 있으면, 가끔 여기가 중국인지 싱가포르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싱가포르 인구의 75%가 중국계이다. 말레이계는 15%, 인도계는 7.6%이며, 한국 사람은 기타 1.7%에 속한다. 어디를 가나 한국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75%의 중국이 주는 압도적 분위기 속에 약간 위축이 되기도 한다. 


또한 싱가포르의 공용어는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총 4가지이다. 행정적인 업무는 모두 영어로 가능하지만, 지하철이나 공식 문서 등에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를 동시에 표기한다. 이중에 75%의 사람들이 중국어를 사용할 테니 중국어가 더 많이 보이고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싱가포르의 중국어에 대한 호기심은 싱가포르 독립의 역사로 이어진다.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1959년에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하여 정부를 구성했다. 그래서 영어를 쓰긴 했지만, 당시에는 상류층 엘리트들이 쓰던 일부의 언어였다고 한다. 이후 1963년에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했다. 당시 말레이시아가 매우 커서 싱가포르와 작은 섬나라들이 말레이시아 연방에 소속되었다. 하지만 정치적 문제와, 인종적 갈등이 폭동으로 이어지며(말레이계 vs 중국계) 1965년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서 축출되었다. 강제적 독립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의 말레이시아 경제 수준과 싱가포르 경제 수준을 고려하면, 싱가포르의 독립이 당연해 보이긴 하지만, 당시 총리는 비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자원이 없고 작은 섬나라였던 싱가포르는 말레이에서 독립해 살아남아야 했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자유무역항을 유지하고, 부패가 없는 깨끗한 정부를 만드는 등 국가 주도적인 정책을 이끌어, 글로벌 사회의 중심국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했다. 


언어에 대한 정책도 경제 발전 정책과 궤를 함께 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싱가포르의 국가언어는 말레이어로 지정되어 있지만, 공용어는 다민족 사회임을 고려하여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로 지정했다.


특히 87년부터는 모든 공립학교에서 영어를 교육의 기본 언어로 사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를 모국어 과목으로 함께 배우는 이중언어 정책을 유지했다. 공립학교에서 모든 수업을 영어로 이루어지지만, 초, 중과정에 모국어는 필수과목이며, 모국어를 졸업시험 필수 과목에 넣기도 했다. 영어로 국제 사회와 소통함과 동시에 모국어를 통해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싱가포르 정부의 입장이 매우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결국 싱가포르의 이중언어 정책은 글로벌 사회에 빠른 적응을 유도하면서도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용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내게 되었다. 


그래서 지하철만타도 젊은 친구들은 가족들과 있으면 중국어로 이야기하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는 영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중국 사람들이 많다. 아들의 반에도 60%는 중국아이들이며, 5세 반 전체를 놓고 봐도 70% 이상은 중국계 아이들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학부모도 중국사람들이며, 놀이터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아이들도 중국계 아이들이 많다. 이런 분위기 속에 아들이 중국어에 노출되는 확률은 영어로 노출되는 확률만큼 높다. 


그래서인지 하루에 한 시간 있는 중국어 수업의 효과는 확실하게 나온다. 

국제학교에 다닌 지 2주 만에 아들은 중국어 몇 단어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새해, 용, 사자, 금' 등 중국의 신년 행사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었다. 그러다 중국어로 새해 노래 하나를 배워와서 흥얼거렸다. 간단한 멜로디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반복적으로 들어가는 노래였다. 식당에서 '꽁시꽁시~'하는 노래가 나오자 수업시간에 배운 노래라며 따라 불렀다.

새해가 지나자 가족에 대해 배운 모양이었다. 엄마, 아빠 등을 중국 단어로 이야기하고, 그다음 주에는 기분에 대해 배웠는지 기쁨, 슬픔, 화남 등을 중국어로 표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기 전 학교에서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는데, 중국어 시간에 뭘 외워서 발표를 했다고 하며 중국어로 4~5 문장을 쭉 이야기했다. 하도 놀라 비디오로 찍어 다음날 중국 친구 엄마에게 보여주니, 자기가 알아들을 정도로 발음도 좋다며 놀라워했다. 

"오늘은 내 생일. 난 4살이다. 엄마는 큰 생일 케이크를 주었고, 아빠는 아이패드를 주었다. 작은 고양이와 강아지도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나는 기뻤고, 정말 좋았다"라는 내용의 중국 문장이었다. 


중국어 선생님이 단어를 가르치고 문장을 알려주고 외우게 했겠지만, 국제 학교에 다닌 지 한 달 만에 중국어로 저렇게 길게 외워서 이야기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현재 학교의 5세 반에서는 아직 영어 파닉스도 시작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아들에게 영어가 느는 속도보다 중국어를 배우는 속도가 더 빠를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슬쩍 들었다.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도 중국친구이고,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엄마도 그 중국 친구의 엄마이다. 그 엄마는 나보다 영어가 서투르기에 어쩌면 내가 중국어를 배워 그 엄마와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뭐라도 배워가는 길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취업이고 다양성이고, 그냥 중국어 하나만 1년 동안 잘 배워가도 나의 싱가포르 1년 살기가 성공한 게 아닌가...라는 오만한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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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기간에 학교는 온통 중국중국 했다>



<중국어를 매일 한 시간 배우는 아들. 중국어를 더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중국어를 매일 한 시간 배우는 아들. 중국어를 더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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