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소수자와 입양을 대하는 자세
아들은 매주 수요일에 있는 체육 수업을 정말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체육수업을 좋아했는데, 새로운 학교에서도 체육은 여전히 즐거운가 보다.
"엄마, 오늘 Ms.Hohey (미스 호헤이) 랑 수영을 했어. 내가 다이빙할 때 잡아 줬다니까"
"Ms.Hohey라고? 수영 선생님 남자라고 했지? 그럼 Mr.Honey(미스터 호헤이)라고 해야지"
"아니야 그냥 Ms.Hohey(미스 호헤이) 야.."
분명히 체육 선생님이 남자라고 했는데, 자꾸 Ms.(미스)라고 부르는 아들이다.
내가 아들의 정보를 잘 못 이해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들이 미스와 미스터의 차이를 모를 수도 있고 해서, 나는 아들에게 남자는 '미스터'라고 부름을 상기시켰다.
그런데 며칠 전 하굣길에 아들이 웬 남자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아들이 나를 쿡쿡 치며, "엄마, 봐봐 저 선생님이 바로 미스 호헤이야!" 했다.
아... 그 순간 나는 왜 체육 선생님이 미스 호헤이 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외국인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성소수자 특유의 밝음과 몸짓으로 왜 그가, 아니 그녀가 미스 호헤이인지 알 수 있었다.
순간 아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망설였다.
일단은 내가 그동안 아들을 정정하려고 했음이 잘 못 되었음을 인정했다.
"Ms.Hohey 맞네 아들아. 엄마가 잘 모르고 계속 미스터라고 부르라고 했어."
'내 말이 맞지? 엄마는 왜 내가 틀렸다고 했어?'라는 질문에 뭐라고 이야기 하나 고민했다.
"어떤 사람은 남자이지만 Miss로 불려지길 바라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Mister로 불리길 바라는 사람이 있어. Hohey는 자기가 Miss로 불려지길 원하나 봐. 그런데 엄마가 그 사실을 몰랐었네"
Diversity(다양성)을 매우 중시했던 예전 회사에서는 자신을 부르는 대명사를 지정하라는 캠페인을 늘 벌렸다. 내가 She/Her/Her로 불리는 것이 좋은지, He/his/him으로 불리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They/their/them으로 불려도 괜찮은지 지정하라는 것이었다. 온라인 미팅을 시작하고 자기소개를 할 때는 이름과 소속, 그리고 본인의 대명사를 함께 넣어야 했다. 처음에는 그 캠페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알고 보니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이 밝히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명사를 본인의 대명서로 지정했다. 하지만 몇몇 소수의 직원은 본인의 대명사를 거리낌 없이 표현하기도 했다.
한 번은 미국에 있는 남자 담당자와 회의를 할 일이 있었다. 휴가는 어떻게 보냈니, 뭐 했니 물어보는데, 그가 "나는 내 husband(남편)과 서핑을 다녀왔어" 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Husband라는 단어에 흠칫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갔던 내가 생각났다.
여자는 미스(Miss), 남자는 미스터(Mister), 여자의 배우자는 남편(Husband), 남자의 배우자는 부인(Wife). 당연하다고 배워왔던 단어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알았을 때, 당황하지 않으려 해도 나도 모르게 당황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다.
나는 20여 년을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의 학교에서는 내가 배워왔던 것과 많이 달랐다.
미스 호헤이는 본인이 Miss로 불리도록 학교에 알리고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던 모양이다. 담임선생님도 체육선생님을 그냥 Miss라고 부르라고 했단다. 담임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편견 없이 체육선생님의 호칭을 공유했던 것 같다.
한 달 전 싱가포르에 10년째 살고 있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또 한 번 편견의 벽을 느낀 적이 있다. 중학생인 친구의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싱가포르에 와서 살고 있기에, 말만 한국말을 하고 있을 뿐이지 손짓이나 어투는 외국인 같기도 했다.
"제일 친한 친구는 영국 부모에게 입양된 한국계 친구예요."
한국에서 태어난 친구는 아주 어렸을 때 영국 부모에게 입양되었다가, 그들이 싱가포르에 일을 하게 되면서 그도 함께 싱가포르에 왔고, 그 이후 내 친구의 아들과 싱가포르에서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입양된 사실을 친구들도 알아?"
나는 너무 촌스러운 질문을 했다. 친구 아들은 아무렇지 않게, 부모와 피부색이 달라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입양도 가정의 한 형태이며 그냥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친구일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피부색이 다른 입양 가정이 주변에 아주 많이 있으며, 학교 친구들은 이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아는 가장 오픈된 입양가정은 TV에 나오는 배우 신애라 씨/차인표 씨의 가정일 뿐이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별생각 없이' 이렇게 가까이 마주하는 것은 막상 낯설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다양성이 보장되고 있는 나라이다.
내가 다녔던 엔지니어링 회사의 여성 직원 비율만 살펴보아도 한국, 일본은 13-14%이 여성 직원인 반면, 싱가포르는 35% 이상이 여성 직원이었으며, 여성 임원의 비율도 아시아 국가 중 최고였다.
직원 국적 비율을 비교해 보아도, 한국 직원의 국적은 거의 대부분 대한민국임에 반면, 싱가포르직원의 국적은 10개국이 넘었다.
이런 문화적인 차이를 고려해 보았을 때, 한국에서의 제한된 다양성과 싱가포르에서의 열린 다양성은 차이가 크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어린 아들이 다양성이 열려있는 곳에서 교육받는 것에 매우 긍정적이다. 그리고 그런 다양성은 어렸을 때 많이 접하고 익숙해져서, 편견 없이 다양성을 바라볼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앞으로 그 어떤 다양성을 마주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잘 이해하고 있다)
적어도 싱가포르에서의 한 달 동안, 아들은 다양성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놀이터에서 중국아이들이나 인도 아이들을 보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봤던 초반과 달리, 지금은 누가 되었건 "let's play together"를 외치는 아들이 되었다.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자폐나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봐도 이제는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는다. 그들이 눈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싱가포르에는 소위말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그에 대해 폐쇄적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앞으로도 쭉~~ 다양성에 열린 아이로 자라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