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별일 없는 하루의 맛

맹물 같아서 가장 귀한 날들

by Ondo fiftytwo

오늘 누군가 나에게 "오늘 어땠어?"라고 묻다면,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음, 그냥 그랬어. 별일 없었어."


특별히 기쁜 일도,

그렇다고 얼굴 붉힐 만큼 화나는 일도 없었다.

회사 일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굴러갔고,

아이들은 큰 투정 없이 밥을 먹었고,

퇴근길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말 그대로 '무탈(無韎)'한 하루.

'무난(無難)'한 하루.


어릴 적의 나는 이런 날을 '지루하다'라고 표현했다.

다이어리에 무언가 적을 거리가 없는 날은,

낭비된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언가 대단한 성취를 하거나,

가슴 뛰는 설렘이 있어야만

'잘 산 하루'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어른이 되고,

일과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몇 번의 포탄을 맞고 나니 알게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를.


뉴스를 틀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회사 메신저에는 툭하면 긴급 공지가 뜬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열이 펄펄 끓는 밤이나

친구와 다투고 온 날처럼

가슴 철렁한 순간들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런 예측 불가능한 세상 속에서


오늘 하루가 예고된 대로,

순조롭게,

심심하게 흘러갔다는 것.


그것은 지루함이 아니라,

신이 나에게 허락한 ‘고요한 기적'이다.


Nothing happened,

and that was everything.


커피를 내릴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원두지만,

그 원두를 품어주는 것은 결국 99%의 '물'이다.

향도 맛도 없는 맹물이지만,

그 깨끗한 배경이 있어야 커피 향이 비로소 피어난다.


나에게 오늘 같은 '무난한 하루'는

바로 그 물 같은 시간이다.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내일 또 무언가를 시도하고(팔랑귀처럼),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감사할 수 있는)

에너지를 채워주는 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이 심심한 저녁이 참 좋다.


아무런 이슈도 없이,

그저 씻고 나와

뽀송한 잠옷을 입을 수 있는 평범함이 감사하다.


나는 오늘 하루를 '별일 없음'이라고 쓰고,

'평화'라고 읽는다.

내일도 부디, 오늘만 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