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자 사회생활 바이블

민감함은 성격이 아니라 신경계다

by 온도담

민감한 사람은 흔히 이렇게 불린다.
예민하다, 까다롭다, 적응을 못 한다.
하지만 민감함은 성격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의 처리 방식에 가깝다.

민감한 사람은
자극을 적게 받는 대신 깊게 처리한다.
소음, 분위기, 말의 뉘앙스, 표정의 변화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입력된다.
그래서 민감한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더 빨리 피곤해진다.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라,
처리량이 많기 때문이다.

예민함과 민감함은 다르다
예민함은 반응의 문제지만,
민감함은 인식의 문제다.
예민한 사람은
작은 자극에도 바로 반응하고,
민감한 사람은
작은 자극을 먼저 알아차린다.
반응이 빠른 게 아니라,
감지가 빠른 것이다.
그래서 민감한 사람은
문제가 터지기 전에 이미 불편해지고,
분위기가 무너지기 전에 먼저 지친다.

사회는 왜 둔감함을 기준으로 굴러갈까
사회는 대부분
둔감한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 정도 소음은 괜찮다.
이 정도 농담은 다들 웃는다.
이 정도 불편함은 참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이 정도’가
모두에게 같지 않다는 점이다.
둔감한 사람에게는 일상인 환경이
민감한 사람에게는
이미 과부하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민감한 사람이
틀린 것도 아니고,
둔감한 사람이 문제인 것도 아니다.
다만 기준이 하나로 정해져 있을 뿐이다.

민감한 사람은 왜 쉽게 피곤해질까
민감한 사람은
사람을 싫어해서 피곤해지는 게 아니다.
대화를 싫어해서도 아니고,
사회성이 없어서도 아니다.
단지
입력되는 정보가 많고,
처리 깊이가 깊기 때문에
회복에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민감한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집에 돌아오면 지쳐 있다.
그 지침은
나약함이 아니라
사용한 에너지의 양에 가깝다.
민감함은 고쳐야 할 성격이 아니다
민감함은
사회에 맞추기 위해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민감함은
오류를 먼저 감지하는 기능이고,
균열을 먼저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문제는 민감함이 아니라,
민감함을 설명할 언어가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민감한 사람은
늘 자기 자신을 먼저 의심하게 된다.
‘내가 이상한가?’
‘내가 너무 예민한가?’
하지만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이 환경은 누구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는가.”

민감한 사람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둔감함을 기준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가장 먼저 피로해지는 사람일 뿐이다.
이 글은
민감함을 고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의 연재에서는
민감한 사람이
어디까지 섞이고,
어디서 물러나야 하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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