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을 꿈꾸게 하는 시대. 내 현실은 어디쯤일까?

아비투스

by 온도담

상류층을 꿈꾸게 하는 시대, 내 현실은 어디쯤일까?
요즘은 모두가 상류층의 언어를 배운다.
자기결정권, 자아실현, 취향, 라이프스타일.
유튜브와 SNS는 우리에게 ‘이렇게 살면 된다’는 장면들을 매일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하다. 기준은 점점 상류층이 되어가는데, 내 현실은 왜 아직도 제자리일까.
상류층을 꿈꾸게 하는 시대, 내 현실은 어디쯤일까?

1. 기준은 높아졌는데 삶은 따라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계급이 좀 더 노골적이었다.
말투, 옷차림, 사는 집, 배우는 것, 어울리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한 세계 안에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 세계를 멀리서 바라보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경계가 흐려졌다.
스타일은 쿠팡과 무신사로 복사할 수 있고,
문화는 넷플릭스로 흡수할 수 있고,
교양은 유튜브로 따라갈 수 있다.
상류층이 가진 ‘겉모습’은 빠르게 대중화됐다.
그래서 요즘은 가난해도 ‘가난한 티’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감각을 만든다.
겉은 비슷한데, 속은 다르다.
일상은 똑같아 보이는데, 마음은 자꾸 흔들린다.
나도 상류층의 언어를 알고, 상류층의 취향을 이해하고, 상류층의 삶을 상상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내 자리는 여전히 좁다.

2. 아비투스의 괴리: 내면은 이미 앞서가는데
『아비투스』를 읽으며 든 생각은 이것이다.
현대는 하류층 아비투스가 상류층과 비슷해져서 생기는 괴리를 겪는 시대가 아닐까.
여기서 말하는 아비투스는 단순히 “멋져 보이는 생활 방식”이 아니다.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돈을 대하는 태도, 선택의 감각이다.
상류층 아비투스의 핵심은 구매력이 아니라 결정권이다.
싫은 사람과 일하지 않을 권리
원하지 않는 환경에서 나올 권리
의미 없는 일을 거절할 권리
내 시간을 내가 선택할 권리
나는 사실 돈을 갖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 돈이 보장하는 ‘결정권’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지점이다.
내면은 이미 다음 단계로 향해 있는데,
현실은 아직 이전 단계에 나를 묶어둔다.
이 괴리는 꽤 고통스럽다.

3. 그래서 우리는 자꾸 이런 농담을 한다
“나는 사실 공주인데, 평민 세계를 체험하러 왔다.”
이 말이 유행한다는 건 사람들이 허영심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현실은 빡빡하고, 자존감은 계속 깎이고,
사회는 사람에게 너무 쉽게 등급을 매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가끔 농담처럼 말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삶을 살 사람이 아니야.”
그 농담은 자기를 지키는 마지막 품위다.

4. 그렇다고 아비투스를 퇴보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깨닫게 된다.
내가 상류층 아비투스를 가진다고 해서
내 삶이 자동으로 상류층 세계로 이동하진 않는다.
아비투스는 방향이지만, 현실은 과정이다.
그리고 과정은 통과해야 한다.
아비투스를 퇴보시킬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 번 알게 된 기준은 다시 낮아지지 않는다.
한 번 깨달아버린 사람은
의미 없는 곳에 시간을 쏟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남는 선택은 이것뿐이다.
아비투스는 유지하되, 현실의 과정을 통과하는 것.

5. 운이란 무엇인가: 내 삶과 세상의 타이밍이 맞는 순간
성공을 운이라고 한다.
나도 이제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운은 막연한 선물이 아니라 이런 것이다.
내 글의 모든 면과 세상의 모든 면이 타이밍 좋게 맞아떨어진 순간.
그게 운이다.
운을 높이려면 시대와 문화를 분석하고,
사람들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흐름에 맞는 언어를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내가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나는 글을 계속 쓰면서, 글을 계속 세상에 던질 것이다.
나만 간직하지 않고 공개할 것이다.
맞으면 큰돈이 따라올 것이고,
맞지 않아도 글을 쓴 자체로 내 인생은 즐거웠을 것이다.
가수 김태원이 만든 곡이 400곡이 넘는데
돈이 된 건 10곡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나를 위로한다.
400곡 중 10곡이면 충분하다.
그러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계속 쓰는 것. 계속 던지는 것.

6. 상류층을 꿈꾸는 시대,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나는 내 현실이 아직 부족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믿는다.
내 기준이 상류층의 언어를 향해 있다는 사실은
내가 다음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려 한다.
상류층을 꿈꾸게 하는 시대,
내 현실은 어디쯤일까?
아마 아직은 중간 어딘가일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나는 퇴보하지 않을 것이다.
내 아비투스를 지키고
현실을 통과하고
그리고 결국 나의 세계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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