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가 사라진다는 건, 정확히 무슨 뜻일까

녹는 것과 사라지는 것의 간격

by 지온

멸종위기종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어떤 동물이 '멸종됐다'고 말하기까지 단계가 있다는 걸 안다. 야생에선 자취를 감췄지만 동물원에 몇 마리 남아 있는 상태가 있고, 개체 수가 너무 적어서 번식조차 어려운 상태가 있고, 마지막 한 마리가 확인된 뒤에야 공식 절멸 선언이 내려진다. 생물학자들은 이 단계마다 다른 이름을 붙였다. 그래야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빙하학자들이 지금 만들려고 애쓰는 게 바로 이런 언어다.


빙하가 줄어들고 있다는 건 이제 다들 안다. 예전 사진과 지금 사진을 나란히 놓은 기사, 흰 얼음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검은 바위. 우리는 이 장면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익숙하다는 게 곧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다. 빙하가 줄어드는 것과 빙하가 사라지는 것은 사실 다른 말이다. 줄어드는 빙하는 여전히 거기 있고, 측정할 수 있다. 사라지는 빙하는 다른 질문을 요구한다. 어느 시점부터 그걸 더 이상 빙하라고 부를 수 없는 걸까.


image.png 이탈리아 트로비오 빙하의 1935년과 2022년 (Valle et al., 2025, Annals of Glaciology)


없어지는 건 한순간이 아니다


국제빙하학회(IGS)가 발간하는 빙하학 연보(Annals of Glaciology)는 최근 "사라지는 빙하들(Vanishing Glaciers)"이라는 특집으로 24편의 논문을 묶었다. 이 특집이 씨름하는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정의다. 빙하가 없어졌다고 말하려면, 먼저 '없어졌다'는 게 뭔지 정해야 한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 스위스의 피졸 빙하는 2022년 공식적으로 '소멸' 판정을 받았지만, 낙석 잔해 아래에는 수천 제곱미터의 얼음이 지금도 남아 있다. 야생에선 사라졌지만 동물원에 몇 개체가 남은 종처럼, 있긴 있는데 그게 빙하인지는 애매한 상태다. 노르웨이의 노르드만쉐켈렌은 1900년 대비 면적이 92% 줄었고, 산산조각이 났으며, 빙하다운 흐름을 잃었다. 형태는 남았지만 기능은 잃은, 생물학에서 '기능적 절멸'이라고 부르는 상태와 닮았다. 그래도 빙하인가.


빙하가 없어지는 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조금씩 쪼개지고, 얇아지고, 기능을 잃어가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그렇게 부르기 어려워지는 과정이다.


이게 단순한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문제다.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소멸한 빙하의 숫자가 달라지고, 지역끼리 비교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기후 변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 해석하는 결과도 달라진다. 지도에는 아직 빙하로 표시돼 있지만 현장에 가면 없는 얼음들, 그걸 어떻게 셀 것인가. 이건 과학의 정확성이 걸린 문제다.


얼음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 특집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건 얼음 바깥의 이야기다. 이탈리아 베르가모 알프스에서는 빙하가 줄면서 차가운 환경에 맞춰 살아온 고유종 절지동물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고산 생태계는 빙하의 온도를 바탕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 바탕이 흔들리면 위에 얹혀 있던 것들도 함께 무너진다. 빙하 하나가 사라질 때 실제로 사라지는 건 한 종이 아니라 그 위에 얹혀 살던 작은 생태계 전체다.


더 뜻밖의 분야도 있다. 빙하 고고학은 지금 사실상 구조대 역할을 하고 있다. 수천 년, 어떤 건 만 년 넘게 얼음 속에 잠들어 있던 유물들이 빙하가 물러나면서 지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공기에 닿는 순간 훼손이 시작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말 그대로 시간과 싸운다. 이미 얼음이 빠져나간 자리를 '유령 패치(Ghost patch)'라고 부르며, 그 위에 남겨진 흔적을 기록하기 위해 달려가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 특집에는 빙하를 반복해서 찾던 등반가들, 그 곁에서 살아온 지역 주민들이 소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다룬 논문도 실려 있다. 그들에게 빙하는 지형이 아니었다. 계절마다 다시 찾던 곳, 몸으로 기억하는 풍경, 삶의 배경이었다. 그게 없어진다는 건 지형이 바뀌는 일이 아니라 익숙했던 세계의 일부가 조용히 지워지는 일이다.


이제 기록 자체가 보전이다


국제 사회는 2025년을 '세계 빙하 보전의 해'로 정했다. 그런데 이 선언이 지금 뜻하는 보전은, 단순히 지키자는 말과는 다른 무게를 갖는다. 피레네산맥의 빙하들, 앞으로 10년 안에 사라질 것으로 보이는 캐나다의 헬름 빙하.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길에 들어선 빙하들 앞에서 보전이라는 단어는 뜻을 바꾼다.


붙잡는 게 불가능할 때, 할 수 있는 건 기록이다. 멸종위기종을 지키지 못할 때 우리가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적어도 그 종의 모습과 서식지를 정확히 남겨두는 일이듯, 빙하학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걸 남기는 일. "사라지는 빙하들" 특집이 보여주는 건 빙하학이 지금 그 전환점에 서 있다는 거다. 얼음을 재고 설명하는 학문에서, 사라지는 것 자체를 연구하고 그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까지 따라가는 학문으로.


빙하가 소멸 자체로 연구 주제가 된 시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사는 지구는 이미 달라졌다.



*커버이미지: 빙하 묘지, 셀티아르드나르네스, 아이슬란드, 2024년 8월 17일 (Boyer & Howe,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