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계 위에서 웃을 수 없는 이유
체중계에 올라간 적이 있다면 안다. 숫자가 줄었다고 해서 반드시 건강해진 건 아니라는 사실을. 어쩌면 근육이 빠졌을 수도 있고, 수분이 부족할 수도 있고, 며칠 굶었을 수도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숫자가 늘었다고 해서 반드시 살이 찐 건 아니다. 운동을 시작해 근육이 붙었을 수도, 부종이 왔을 수도, 잠시 물을 많이 마셨을 수도 있다.
남극이 지금 그런 상태다.
지난 2026년 2월, 학술지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실렸다. 덴마크 기상연구소를 비롯한 국제 연구팀이 GRACE 위성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0년부터 남극 빙상의 질량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 평범한 말로는 남극 얼음이 늘어나고 있다. 연간 약 67기가톤(Gt)씩. 그 직전까지 매년 100기가톤 넘게 빠지던 흐름이 갑자기 뒤집힌 것이다.
기후위기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는 솔깃한 뉴스일 수 있다. "거봐, 남극은 멀쩡하잖아." 하지만 같은 논문을 끝까지 읽고 나면 정반대의 인상을 받게 된다. 논문 저자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주목할 점은 빙상이 얼음을 덜 잃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더 많이 잃고 있어요. 단지 폭설이 그것을 잠시 가리고 있을 뿐이죠."
체중계의 숫자는 늘었지만, 사실은 살이 찐 게 아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질량’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과정의 합이다.
남극의 살을 찌우고 있는 정체는 '대기천(atmospheric river)'이라는 기상 현상이다. 이름 그대로다. 하늘에 흐르는 강. 수증기를 머금은 좁고 긴 공기 띠가 수백 킬로미터를 가로질러 대륙으로 들이닥친다. 이건 눈구름이 몰려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강 하나가 통째로 공기 속에 실려 오는 것에 가깝다. 폭은 좁지만, 그 안에 담긴 물의 양은 상상을 넘는다. 단 며칠 사이에 한 지역의 연 강수량 절반이 쏟아지기도 한다.
이 ‘하늘의 강’이 2020년 이후 더 자주, 더 거세게 남극을 덮쳤다. 특히 동남극의 윌크스랜드, 퀸모드랜드, 그리고 남극반도. 위성에서 보면 강설량이 가장 크게 늘어난 곳들이다.
여기서 한 번 멈춰볼 필요가 있다. 왜 갑자기 대기 중에 더 많은 수증기가 흐르게 됐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공기가 따뜻해지면 수증기를 더 많이 품을 수 있다. 클라우지우스-클라페롱 관계라는 물리 법칙에 따라,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대기 중 수분 함량은 약 7%씩 늘어난다. 따뜻한 공기는 더 많은 물을 실어 나른다. 그리고 그 물은 더 멀리 이동한다. 그러니까 남극에 폭설이 늘어난 근본적인 이유는, 지구가 따뜻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묘한 장면이다. 온난화 때문에 남극이 잠시 살이 찌고 있다.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부어오른 사람을 보고 “건강해졌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착시다.
살은 찌는데, 출혈은 더 빨라지는 몸
여기서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남극은 지금 살만 찌고 있는 게 아니다. 동시에 피도 더 많이 흘리고 있다. 빙하가 바다로 흘러나가는 속도, 즉 '동역학적 배출(dynamical discharge)'은 2020년 이후 오히려 빨라졌다. 특히 서남극 일부 지역에서는 이전 20년 평균보다 연간 약 100기가톤이 더 빠져나간다
100기가톤이라는 숫자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한강이 약 4년 동안 흘려보내는 물의 총량 정도다. 이만큼이 매년 추가로, 그러니까 이전에 빠지던 양에 더해서 남극에서 바다로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빙산이 떨어져나가고, 빙붕이 부서지고, 내륙의 얼음이 더 빠르게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체중계가 +67이라는 숫자를 보여주는 이유는 단순하다. 들어오는 양이 나가는 양보다 잠시 더 많기 때문이다.
2020년 이후 폭설은 예년보다 연간 약 220기가톤 더 쌓이고 있고, 빙하 배출은 예년보다 약 100기가톤 더 빠져나가고 있다.
남극은 멈춘 것이 아니다. 더 세게 들어오고, 더 세게 빠져나가고 있다. 숫자만 잠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이 균형이 불안한 이유는, 두 흐름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폭설은 사건이다. 대기천 몇 개가 덜 와도, 편서풍 패턴이 조금만 바뀌어도, 한두 해 만에 쉽게 줄어든다.
반면 빙하의 해양 유출은 상태에 가깝다. 한 번 가속이 붙으면 쉽게 멈추지 않는다. 빙붕이 무너지면, 그것이 막아주던 내륙 빙하는 강처럼 바다로 쏟아진다. 둑이 터지는 것과 같다. 둑은 며칠 사이에 무너지지만, 다시 쌓는 데는 수백 년이 걸린다.
대기천은 사건이고, 빙하 유출은 상태다. 그래서 이 둘은 같은 시간 척도로 경쟁하지 않는다.
남극은 지구상 담수의 가장 큰 저장고다. 만약 전부 녹는다면 해수면을 약 58미터 끌어올릴 수 있을 만큼의 물이 그 안에 얼어 있다. 그래서 ‘균형’이라는 단어는 묘하게 사람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자연의 균형은 정적인 것이 아니다. 외줄 위에 선 곡예사에 가깝다. 멀리서 보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속 흔들리며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남극이 지금 그 위에 서 있다.
한쪽에서는 따뜻해진 대기가 수증기를 실어 나르며 눈을 쌓아 올리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따뜻해진 바다가 빙붕을 아래에서 깎아내리며 얼음을 빼앗고 있다. 두 흐름이 동시에 강해진 상태에서, 우연히 들어오는 쪽이 잠시 더 강할 뿐이다. 균형처럼 보이는 이유는, 두 변화가 동시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회복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흐름이 잠시 맞물려 만들어낸 한 장면이다.
언론 헤드라인은 종종 결론만 가져간다. “남극 빙상 다시 늘어나.” 그 한 줄. 그 한 줄은 안도감을 줄 수도 있고, 회의론의 근거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연구가 보여주는 건 정반대다. 대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운반하고, 해빙은 줄어들고, 편서풍은 강해지고, 빙붕은 얇아지고, 빙하는 더 빠르게 바다로 흘러간다.
이 모든 변화는 서로 따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그중 일부는 얼음을 늘리고, 일부는 줄인다. 우연히 늘리는 쪽이 잠시 이기고 있을 뿐이다.
이 상태가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5년일 수도, 10년일 수도 있다. 연구진도 그 이상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균형을 만들어낸 조건들, 더 따뜻한 대기, 줄어드는 해빙, 강해지는 편서풍 모두 온난화의 결과라는 것. 그리고 그 조건들이 계속 강화된다면, 어느 순간 폭설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빙하 손실이 시작될 것이라는 점이다.
체중계 위에 잠시 서 있는 남극을 보면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만든 과정은 무엇인가.
참고: Kolbe et al. (2026), "Atmospheric rivers and winter sea ice drive recent reversal in Antarctic ice mass loss,"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 7: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