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농업혁명

농경 사회와 상상의 질서

by 비니하나

농업혁명 파트 (132 ~ 189 pg) 요약 발췌 및 감상평까지


약 1만 년 전,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몇몇 동물과 식물 종의 삶을 조작하는 데 바치기 시작했다. 인류가 농업으로 이행한 것은 기원전 9500~8500년경 터키 남동부, 서부 이란, 에게 해 동부 지방에서였다. 이들은 말과 염소, 낙타 등을 가축화하고 밀, 완두콩, 올리브나무, 포도, 캐슈넛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가축화와 재배작물화는 기원전 3500년즘에 마무리되어, 온갖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인류를 먹여 살리는 칼로리의 90 퍼센트 이상이 밀, 쌀, 옥수수, 감자, 수수, 보리처럼 우리 선조들이 9500년에서 3500년 사이에 작물화했던 한 줌의 식물들에서 나온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수렵채집인 시대의 것이라면, 우리의 부엌은 고대 농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농업은 세계 여러 지역의 작물화와 가축화가 가능한 기후의 지역에서 완전히 독자적으로 생겨났고, 기원후 1세기쯤이 되자 세계 대부분의 지역 사람들 대다수가 농민이 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잡거나 채취했던 수천 종의 동물과 식물 중에 농업과 목축업에 맞는 후보는 몇 되지 않았다. 이들 종은 특정 장소에 살았고, 그 장소들이 바로 농업혁명이 일어난 지역이다.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수렵채집인들은 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이 사태의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밀의 관점에서 농업혁명을 잠시 생각해 보면, 1만 년 전 밀은 수많은 잡초 중 하나일 뿐으로서 중동의 일부 지역에만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과 몇천 년 지나지 않아 세계 모든 곳에서 자라게 되었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기본적 기준에 따르면 밀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식물이 되었다.


약 1만 년 전까지 유인원은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상당히 편안하게 살고 있었으나, 이후 밀을 재배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2천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많은 지역의 인간은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밀을 돌보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었다. 밀을 키우는 일은 단연코 쉽지 않았다.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밀은 바위와 자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밭을 고르느라 등골이 휘었다. 밀은 다른 식물과 공간, 물, 영양분을 나누는 곳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온종일 잡초를 뽑았다. 밀은 병이 들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해충과 마름병을 조심하고, 밀은 자신을 즐겨 먹는 토끼와 메뚜기 떼에 대한 방어책이 없었기 때문에, 농부들이 이를 막아야 했다. 밀은 목이 마르고 배고팠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샘과 개울에서 물을 끌어다 대고 동물의 변을 모아야 했다.


사피엔스의 신체는 이런 과업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사과나무에 기어오르고 가젤을 뛰어서 뒤쫓는 데 적응했기 때문에,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


밀은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로 하여금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삶을 더 비참한 생활과 교환하도록 설득했을까? 어떤 보상이 있었을까? 더 나은 식사를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인류는 아주 다양한 음식을 먹고사는 잡식성 유인원이다. 농업혁명 이전 식사에서 곡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적었다. 곡류를 중심으로 하는 식단은 오히려 미네랄과 비타민이 부족하고 소화시키기 어려우며 치주조직에 해롭다. 밀은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수렵채집인은 수십 종의 먹을거리에 의지해 생존했기 때문에 설령 저장해 둔 식량이 없더라도 어려운 시절을 몇 해라도 견뎌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농경사회는 극히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칼로리를 극소수의 작물을 통해 섭취했다. 오랜 세월 이들 사회는 밀이나 감자, 쌀 등 단 하나의 주식에 의존했다. 비가 내리지 않거나, 메뚜기 떼가 덮치거나 작물이 감연되면, 농부들은 수천 수백만 명씩 죽어나갔다.


무리적 측면에서도 수렵채집인 무리는 강력한 라이벌에게 몰리면 보통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었지만, 농부들은 그 자리에서 버티면서 최후까지 싸우는 경향이 있었다. 다만, 인간의 폭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 왕국, 국가 등 보다 큰 사회적 틀이 발전하면서 통제받기 시작했다. 요즘 우리는 풍요와 안전을 누리고 있고 그 풍요와 안전은 농업혁명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농업혁명이 놀라운 개선이라고 가정한다.


농경사회의 시작이 어떤 이유에서였건 밀은 사람들 개개인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는 무언가를 주었다. 밀 경작은 단위 토지당 식량생산을 크게 늘렸고, 그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어느 종이 성공적으로 진화했느냐의 여부는 굶주림이나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DNA 이중나선 복사본의 개수로 결정된다. 한 회사의 경제적 성공은 직원들의 행복이 아니라 오직 은행잔고의 액수로만 측정된다.


농업의 시작은 두 가지 이유로 크게 다뤄지는데, 첫째는 바로 계산 오류로 인해 발생한 인간 삶의 방식의 자연선택설이다. 농업의 시작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농업이라는 힘든 노동을 시도했던 이들은 '이러면 일을 더 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수확량이 많이 늘어날 거야. 흉년 걱정을 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거야. 아이들이 배가 고픈 채로 잠자리에 드는 일도 없을 거야. 일을 더 열심히 하면 삶이 더 나아지겠지.'라는 계획에서 시작되었다.


계획의 첫 단계는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추가로 생산된 밀은 숫자가 늘어난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또한, 단일 식량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가뭄에 더욱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풍년에 넘쳐나는 창고는 도둑과 적을 유혹할 것이며 이를 방비하려면 성벽을 쌓고 보초를 서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예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빗나갔을 때 농경을 포기하지 못했다.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 때문에 돌아갈 다리가 불타버렸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좀 더 쉬운 삶을 추구한 결과 더 어렵게 되어버린 셈이었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일어난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중 상당수는 돈을 많이 벌어 35세에 은퇴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유수 회사들에 들어가 힘들게 일한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거액의 주택 융자, 학교에 다니는 자녀, 적어도 두 대의 차가 있어야 하는 교외의 집, 멋진 해외휴가가 없다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들은 노력을 배가해서 노예 같은 노동을 계속한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시간을 절약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인생이 돌아가는 속도를 과거보다 열 배 빠르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는 불안과 걱정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농업혁명이 성공해 현재의 인류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던 이유는, 농업혁명이 해당 지역의 모든 무리의 동참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한 무리만이라도 정착해서 경작을 시작하면 농업은 저항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농경이 급속한 인구성장의 조건을 만들어준 덕분에, 농부들은 순수한 머릿수의 힘만으로 언제나 수렵채집인들을 압도할 수가 있었다. 인류가 좀 더 편한 생활을 추구한 결과 막강한 변화의 힘이 생겼고 이것이 아무도 예상하거나 희망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농업혁명이 완전한 오산의 결과지만 저항할 수 없는 변화였다는 이론은 매우 흥미롭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흥미로운 가능성은, 어쩌면 편안한 삶을 추구하다 보니 전환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사피엔스에게 다른 열망이 있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삶을 힘들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바로, 이데올로기나 문화 같은 비물질적 요인이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기원전 95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터키 남동부의 괴베클리 테페 유적지다. 유적지의 개별 돌기둥의 무게는 최대 7톤이고 높이는 5미터에 달한다. 무게 50톤의 기둥도 발견되었는데, 가장 큰 기념비 구조물은 폭이 30 미터에 육박한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것은 영국의 스톤헨지다. 스톤헨지는 기원전 2500년의 발달된 농경사회 사람들이 건설한 것이다. 수렵채집 사회 시기의 이 유적지들은 모두 실용성이 없어 보인다. 매머드 도살장도 아니고 사자를 피해서 숨는 장소도 아니었다. 미스터리한 문화적 이유에서 세워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수렵채집인들이 거기에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결과로, 여러 무리와 부족에 속한 수천 명의 수렵채집인을 오랫동안 협력하게 만든 것이 분명하다. 그런 노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세련된 종교나 이데올로기 시스템밖에 없다.


정말 흥미로운 점은, 유전학자들의 연구 결과, 작물화된 밀의 변종 중 하나가 괴베클리 테페 인근을 발상지로 갖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해당 기념물을 건설하고 이용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어쩌면 수렵채집인들이 야생 밀 채취에서 집약적인 밀 경작으로 전환한 목적은 정상적인 식량공급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원의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사원이 먼저 세워지고 나중에 그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수도 있다.


농업혁명이 자연스럽게 발견된 인간 삶의 방식 중 자연선택된 방식일 수도, 인간의 조직화 및 문명화를 위해 선택된 방식일 수도 있다는 관점들이 갖는 공통점은 결국 인간이 모여 집단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해 인류가 번영과 진보의 길에 들어섰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사피엔스가 자연과의 긴밀한 공생을 내던지고 탐욕과 소외를 향해 달려간 일대 전환점이었다고도 주장한다. (작가는 낙농업에 의해 희생되는 동물 사진을 제시하며 후자에 조금 더 힘을 싣는 것 같다)


어떤 이유로 농업이 이루어졌던, 농경 덕분에 인구가 너무나 급격하고 빠르게 늘었기 때문에, 돌아갈 길은 없었다. 기원전 1만 년경 최대 8백만 명의 방랑하던 수렵채집인은 기원후 1세기가 되자 2백만 명 밖에 남지 않았으나, 같은 시기 농부들의 숫자는 2억 5천만 명으로 수렵채집인을 훨씬 압도한다.


농부들은 영구 정착지에 살며, 집을 짓게 되면서 건축학이 발달하고, 심리적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내 집'에 대한 집착과 과이웃으로부터의 분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자기중심적이 된 존재의 심리적 특징이 되었다. 농경시대에는 공간이 축소되는 동안 시간은 확장되었다. 수렵채집인은 다음 주나 다음 달에 대해 생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농업혁명 덕에 미래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농부들은 언제나 미래를 의식하고 그에 맞춰서 일해야 했다. 그 결과 농업의 도래와 함께 비로소 인간의 마음속 극장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주연배우가 되었다. 계절과 기후의 변화에 따라 수확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변동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계측과 대비를 언제나 생각해야 했다. 농부들이 미래를 걱정한 것은 단순히 걱정할 이유가 더 많았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농사 스트레스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대규모 정치사회 체제의 토대였다. 농부들이 힘든 노동력의 대가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얻기를 바라는 와중에,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상한 잉여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 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고 역사책 속의 기록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농업혁명이 이루어진 이후 대두되는 문제는 인간 사회의 정치적 사건들이다. 역사상의 전쟁과 혁명 대부분은 식량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혁명의 선봉에 선 것은 굶주린 농부가 아니라 부유한 법률가들이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는 국민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을 만한 능력이 있었지만 국가는 해체되고 끔찍한 유혈극이 벌어졌다. 이런 재난들의 근원에 깔린 문제점은 인류가 지난 수백만 년 동안 불과 수십 명으로 구성된 작은 무리에서 진화해 왔다는 사실이다. 농업혁명 이후 도시와 왕국과 제국이 출현하는 데는 불과 몇천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규모로 협력하는 본능이 진화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리자, 사람들은 위대한 신들, 조상의 땅, 주식회사 등등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꼭 필요한 사회적 결속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상상력은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갔다. '협력'이란 말은 매우 이타적으로 들리지만 항상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평등주의적인 경우는 드물었다. 인간의 협력망은 대부분 압제와 착취에 적합하도록 맞춰진 채 출발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진 제국과 로마 제국에 이르는 모든 협력망은 '상상 속의 질서'였다. 이들을 지탱해 주는 사회적 규범은 타고난 본능이나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공통의 신화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 예시 중 유명한 것이 기원전 1776년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과 미국의 독립선언문이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이 선언에 대해 작가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딜레마를 제기한다. 둘 다 스스로 보편적이고 영원한 정의의 원리를 약속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인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평등한 반면 바빌론인들에 따르면 사람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물론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옳고 바빌론 사람들이 틀렸다고 말하고, 함무라비는 당연히 자신이 옳다고 반박할 것이다. 사실은 모두가 틀렸다. 모두가 평등이나 위계질서 같은 보편적이고 변치 않는 정의의 원리가 지배하는 현실을 상상했지만, 그런 보편적 원리가 존재하는 장소는 오직 한 곳, 사피엔스의 풍부한 상항력과 그들이 지어내어 서로 들려주는 신화 속뿐이다. 이런 원리들에 객관적 타당성은 없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을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이 또한 사상이자 신화이다.


생물학적으로 진화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에 기반을 두며, 창조보다는 태어나는 것이다. 또한, 생물학에 권리나 자유 같은 것은 없다. 오로지 기관과 능력과 특질이 존재할 뿐이고, 생물학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이상이다. 마지막으로, 행복은 아직까지 생물학적으로 명확히 정의하거나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 대부분의 생물학 연구는 쾌락이 존재한다는 것만을 인정한다. (독립선언문을 작가의 표현으로 바꾸면 아래와 같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가 자명하다고 본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르게 진화했으며, 이들은 변이가 가능한 모종의 특질을 지니고 태어났고 여기에는 생명과 쾌락의 추구가 포함된다."


(매우 흥미로운 변역이다.)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란 사악한 음모도 무의미한 환상도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중력과 같이 자연의 질서는 반박될 수 없는 안정된 질서다. 이와 반대로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 중 일부는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다. 군대, 경찰, 법원, 감옥 등은 사람들이 상상의 질서에 맞춰 행동하도록 강제하면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일부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사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 있는 자들에 관한 문제이다. 그들 스스로가 질서를 신봉하지 않는다면 남에게 그걸 강요하고 싶어 할 이유가 없다. 또한, 질서를 신봉하는 사람이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결국 상상의 질서는 시스템적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나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상상의 질서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그 질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는 위대한 신이나 자연법에 의해 창조된 객관적 실재라고 주장해야 한다. 또한, 사람들을 철저히 교육시켜야 한다. 그들이 태어나자마자 세상 만물에 스며들어 있는 상상의 질서 원리들을 끊임없이 주지 시켜야 한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조직화하는 질서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은 세 가지이다.


1.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ex) 현대 서구사회의 개인주의는 현대 건축에서 돌과 회반죽으로 구현된다. 여러 개의 작은 방들로 나뉜 집에서 어린아이들도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사적인 공간을 가져 최대한의 자율권을 지니도록 한다. 이런 공간에서 자라는 사람은 스스로를 '하나의 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반대로 중세 귀족은 개인주의를 믿지 않았다. 사람의 가치는 사회적 위계질서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뭐라고 말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아이들은 큰 홀에서 다른 많은 젊은이들과 나란히 잤고,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평할지를 항상 염두에 둬야 했다.


2.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ex)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낭만주의적 소비지사아주의를 진정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속삭이며 소비지상주의는 우리에게 행복해지려면 가능한 한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3.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상호 주관이란 많은 개인의 주관적 의식을 연결하는 의사소통망 내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단 한 명의 개인이 신념을 바꾸거나 죽는다 해도 그에 따른 영향은 없지만, 그물망 속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거나 신념을 바꾼다면 상호 주관적 현상은 변형되거나 사라진다. 그 예시가 법, 돈, 신, 국가이다. 만일 나 혼자 달러나 인권, 미국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해도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현존하는 가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그 대안이 되는 가상의 질서를 먼저 믿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마저 해체하려 한다면, 그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를 상상해야 하고, 그것을 사람들로 하여금 믿도록 해야 한다.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일 뿐이다.




농업혁명의 발단을 인류의 계산 오류에 의해 돌이킬 수 없게 발전해 버린 삶의 방식으로 다루는 것과 인간 문명의 집단적 발달을 위해 채택된 방식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결국 인지혁명의 연장선에서 사피엔스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꾸미고 그 이야기를 존속해 가기 위해 무리 지어 농업혁명 또한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 혹은 농업혁명으로 인해 무리가 커지고 그 무리를 유지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역사적으로 되짚어 보았을 때 우리는 이야기 때문에 그리고 이야기 덕분에 번식하고 있는 종이라는 것.


사회가 많이 개인화되었다고 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끼기 위해 친구를 만들고 조직에 참여하려는 것은, 나와 같은 이야기를 믿고 상호 주관적인 상상의 질서를 함께 유지하기 위해 한 사피엔스로서의 당연한 본능이 아닐까.


이와 반대로 나와 다른 믿음을 갖고 충돌하는 상상의 질서를 믿는 이들은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내가 혹은 그들이 각자의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더 강력한 무언가를 상상하여 포섭해야 할까? 존중을 위한 적절한 무시와 거리가 최선일까?


적어도 서로 다른 이야기에 의한 갈등인 만큼 그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는 최소한 필수적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대화란 일방적이지 않은 소통이라는 것. 결국 소통이란 한 사피엔스로서 살아가기 위해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이자 미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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