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쓰여진 편지

by 하루

아주 가끔 일기를 쓸 때가 있다. 2022년 여름, 내 일기장에는 유독 편지 형식의 글이 많이 쓰여졌다. 최근에 그 일기장을 펴 보니 당시의 모든 것이 되살아났다. 환기되는 기억 속 당시의 온도와 습도, 그 안에 서 있던 나의 감정들이 떠오른다. 되돌아봄의 묘미란 이런 것이다.


2022년 8월, 학부 졸업 논문 디펜스를 마치고 졸업예정자 명단이 나왔다. 무사히 졸업하게 된 친구들 대부분은 해외 대학원 진학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9월 말에 있을 졸업식에 참석했지만 대부분의 동기들은 8-9월에 학기가 시작하는 영미권 대학원의 학사일정에 맞춰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8월 중 일본을 떠났다.


그래서 내 2022년 여름의 일기장에는 편지가 참 많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끝장나게 놀면서 아주 행복했고, 그들과 이별하면서 많이 울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의 일기는 다 영어로 쓰여 있다. 그 커다란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아 표현하기에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했다. 가끔 일기를 쓰다가 울기도 했다. 다들 너무 멋져 보였고, 그들이 벌써 그리웠고, 하루하루가 부서질 듯 소중해서 울었다.


미국 대학원으로 진학하게 된 많은 친구들 중 제일 먼저 떠나게 된 친구의 출국 날, 그를 공항에 데려다주었다. 다른 친구가 차를 빌려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출국장 앞에서 친구가 쌓여 있는 짐들 사이로 고개를 떨궜다. 4년간 단 한 번도 그 친구가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친구가 많이도 울었다. 몇 분을 그렇게 껴안고, 울고,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다음에 만날 기약이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친구가 하나 더 늘었다. See you in the distant future, Rue, (먼 미래에 보자, 루야)라고 인사한 친구가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나와 함께 친구를 배웅한 다른 친구와 나는 돌아오는 길 차창 너머로 도쿄의 야경을 한참 응시했다.


이제 아무 생각 없이 페이스타임을 걸 수가 없었다. 시차가 있을 테니까. 아무 생각 없이 캠퍼스에 가면 누군가가 있겠지, 하고 밥 먹을 친구를 찾아 캠퍼스에 갈 일도 없었다. 다들 졸업했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전화해서 나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같은 동네가 아닐 테니까. 같은 대륙조차 아닌데 무슨. 계획 없이 시모키타자와의 이자카야에서 술을 먹고 시부야의 노래방에서 밤을 새우던 일상이 끝났다. 그게 실감 난 순간 나는 한참을 울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가 생각났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유학생이 많은 국제학교였고, 로컬 학생들도 거의 해외대학 진학을 목표로 우리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졸업생들은 말 그대로 전 세계로 흩어진다. 졸업식 기념 디너에서 신나게 춤추고 놀아놓고 막상 헤어질 때가 되자 나와 친구들은 목을 놓아 울었다. 전 세계로 흩어질 친구들을 다시 만날 기약이 없었다. 진짜 이게 살면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는 순간일 수도 있는 거였다. 그게 사무치게 아쉽고 슬퍼 울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나는 내 모든 친구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다들 하고 싶은 공부가 있었고, 그걸 위해 캐리어 한두 개에 자신의 몇 년치 인생을 눌러 담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꼭 멋진 사람이 될게, 하고 다짐하는 말을 보내지 않을 편지의 말미에 작게 써 보았다.


8월이 지나고 9월. 나 혼자 도쿄에 남았다. 아니, 거짓말이다. 혼자 있는 걸 너무 싫어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여름 내내 새 친구들을 만들었다. 한국인 유학생회에서 친구들을 사귀었고 댄스 스튜디오와 동아리의 일본인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냈다. 그렇게 내 일상은 계속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바쁜 여름을 보냈다. 그래도 느낌이 달랐다. 4년 내내 가장 친했고 가장 오래 붙어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남은 자리에서 나는 여전히 즐거운 생활을 향유했으나 그들은 이미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 후였다.


과제를 하고 논문을 쓰는 동안 매일같이 도서관에 가곤 했다. 계획하지 않아도 도서관에 있으면 항상 동기들이 있었다. 자주 앉아 있던 도서관 앞 벤치 위로 비가 추적추적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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