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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린뒤맑음 Jan 06. 2021

2020년 연말정산

올해도 잘 살았다

2019년 연말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아 알게 된 데이오프 연말정산. 다가올 한 해를 계획하는 데에만 익숙했지 지나간 한 해를 정리하는 것은 해본 적 없었던 나에게 데이오프의 연말정산은 한 해의 트렌드를 녹여낸 빈칸 채우기 형식의 문항으로 간편하고도 재미있게 일년을 정리할 수 있는 신문물이었다. 


혼자만 하기엔 너무 아까웠던 연말정산을 뜻맞는 소중한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도 전파하여 연말 의식처럼 작년부터 해오고 있다. 사실 연말정산은 혼자서 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하면 그 사람의 1년이 어땠는지 알 수 있고 이를 이야깃거리삼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방금 줌에서 친구들을 만나 우리만의 2020년 연말정산을 끝냈다. 문항이 무려 100개나 되기 때문에 브런치에는 그 중 일부를 담아보며 2020년 한 해를 돌아보고자 한다.


일년이라는 시간은 이렇게 열두 달을 한 화면에 모아보면 짧은 기간처럼 느껴진다. 올해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7. 내 몸을 위해 시작한 (채식)

인스턴트 음식과 패스트푸드로 주로 채워졌던 식생활 때문인지 올 초 공부하면서 이유없는 두통과 복통이 나타나곤 했다. 때마침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급작스런 도서관 폐관으로 집공하게 된 김에 집밥먹기와 더불어 신선한 야채 먹기를 시작했다. 목적은 건강해지기와 살 안찌기. 

올해 내내 토마토, 파프리카, 이마트 샐러드 지인짜 많이 먹었다. 계속 먹으려니 너무 지겨워서 다양한 샐러드 드레싱과 조리법으로 돌려가며 먹었는데 확실히 소화도 잘되고 이유 모를 복통과 두통도 사라졌고 체중도 약간 줄었다. 채식 만세!

올해 냉장고 야채칸에 언제나 자리했던 토마토. 토달볶, 카프레제샐러드, 방토 등 다양한 버전으로 많이도 먹었다. Image by congerdesign from Pixabay 


12. 예전엔 (남이 원하는 것)을 더 원했지만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원한다

부모님이 원하는 좋은 학교, 친구들이 원하는 좋은 회사, 좋은 직업. 그런 것에 나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지금도 사실 원한다. 남들이 무언가를 원하는 데에는 너무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실제로 갖게 되면 한동안은 행복하기 때문이다. 

근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같다. 내가 그걸 가질 수 있는 사람인지, 그게 날 정말 행복하게 하는지. 언제 어떻게 끝날 지 모를, 단 한 번 뿐인 인생. 나는 나를 예뻐하며 살고 싶다. 내 능력 밖의 것을 갖기 위해, 남들 눈에 좋아보이는 것을 갖기 위해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미워하며 살고 싶진 않다.


22. (목표했던 회사를 또 준비할지)와 (그만할지) 사이에서 갈등했다. 결국 내 선택은 (그만한다)이다.

그 회사 입사를 위해 전 회사 퇴사까지 감행하며 쏟아부었던 나의 2년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어떻게 하지? 2년이나 쏟아붓고도 실패하는 건 내 계획엔 없었는데. 여기서 멈춰야 하나? 근데 이거 안하면 이제 어쩔건데? 벌써 공백이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고민 끝 내 선택은 이제 그 회사를 놓아주는 것이다. 올해 난 더 쏟아부을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매달리고 싶지 않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잔인한 희망 주는 말 되게 별로다. 현실은 안 되는 사람이 훨씬 더 많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작년 그 회사 임원면접비 봉투에 있던 말이 작년보다 올해 더 크게 와닿았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만 끝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내 한계를 인정하고 이제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 고생했다 나 자신아.

이제 나를 덜 괴롭히는 길로 가겠다. 나 자신 소중해. Image by PixxlTeufel from Pixabay


26.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스터디카페 등록)했다

올해 전염병 때문에 나라에서 돈도 줬다. 덕분에 집앞 스터디카페 정기권을 구입해서 시원한 에어컨바람 쐬며 1일 1아메리카노 마시며 쾌적하게 공부했다. 개꿀! 물론 시험은 망했다.


27. (퇴사)한 지 벌써 (2년)이나 되었다

회사를 박차고 나온지 벌써 만으로 2년을 거의 다 채워간다. 퇴사했을 때 목표로 했던 것처럼 정말 회사 다닐 때와는 다르게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에 집중한 2년이었다. 개꿀! 물론 시험은 망했다.


31. 자랑하고 싶은 내돈내산 (베드테이블)

이건 진짜 팬데믹 전부터도 집순/집돌이의 꿀템이었던 건데 올해 코로나 터지면서 일주일 정도 고민한 끝에 샀다. 결과는 대성공. 올해 내 소비중에 가장 가성비 킹이라고 자부한다. 베드테이블 덕분에 화장실 갈 때 말고는 거의 침대를 벗어날 일이 없다.

대략 이런 모양새. 이제 베드테이블 없는 내 방을 상상할 수 없다. Image by chiaraparisi830 from Pixabay


35. (여름)의 (긴 장마)가 가장 좋았다

올해 유난히 길었던 장마로 수재민도 많았고 흉작으로 농산물 가격도 훌쩍 뛰었다. 하지만 하나 좋았던 건 긴 장마 덕분에 모기 수가 평년 대비 현저히 적었다는 것. 장마가 길어지면 모기 개체 수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을 올해 배웠다.

비야 내년에도 제발 모기를 다 쓸어가주렴. Image by Roman Grac from Pixabay


64. (내 탄생)부터 (내 죽음)까지는 내 영역이다

내가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타인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태어난 건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일단 세상에 나와버린 이상, 내가 죽는 날까지 나는 내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72. 올해 다시 보게 된 사람은 (대학 친구들)이다

올해 재평가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말 그대로 오랜만에 다시 만난 사람. 올해 친했던 대학 동기들이 제법 결혼을 했고 그 결혼식들을 계기로 몇년 만에 만났는데 오랜만에 만나도 참 반갑고 편안하고 즐거웠다. 

대학 새내기 시절 함께 울고 웃었던 소중한 사람들. 인생의 빛나는 순간을 함께 했던 빛나는 사람들. 공부한다고 2년간 휴학하고 폰번호까지 바꾸면서 잠수탔던 나였는데도 엄마 장례식에 한걸음에 달려와준 고마운 사람들. 동기라는 말보다 친구라는 말을 더 쓰고 싶은 사람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더 대화 많이 나누고 따로 잡은 약속도 취소하지 않았을텐데. 


73. (슈돌 애기들)은 정말 귀여워!

애기는 귀엽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생긴 것도 귀여운데 하는 짓까지 귀여운 애기들은 더 이뻐 죽겠다. 윌리엄, 벤틀리, 연우, 하영이 나오는 슈돌 유투브 보는게 진짜 올해 내 인생의 낙이었다. 천천히 커주렴 아가들.


74. (코로나를 좀 더 공부)했어야 했는데...

올해의 키워드는 단연 코로나19였다. 코로나19라는 정식 명칭조차 있기 전인 연초부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두자며 스터디에서 발표했던 나였는데, 7~8월에 예상문제 만들 때도 스터디원 모두가 예상했던 코로나였는데 올해 시험문제를 전 영역에 걸쳐 이렇게까지나 올 코로나로 도배할 줄은 몰랐다. 이것도 내 능력부족이지 뭐.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인생의 중요한 시험 중 하나를 코로나로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꺼억. Image by Hank Williams from Pixabay


86. (회사 볼 때 이것 저것 따지는 것)은 사치일까?

한 번 퇴사한 경험이 있어서일까 이제 어떠한 조직에 소속된다는 것에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된다. 아무리 취업난이어도 눈 낮춰서 들어갔다가 고통받으면서 다니거나 짧게 다니다 나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산업이 사양산업이라서 안되고, 저 회사는 연봉이 너무 낮아서 안되고,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근데 내가 이렇게 재고 따져서 과연 취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


91. (가족과 대화하는 순간)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다

올해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어주었던 사랑하는 우리 가족. 내가 공부할 때도 불안할 때도 포기할 때도 내 인생을 지지해주고 기다려주고 돈까지 준다. 이 집에서 나가기가 점점 싫어지고 있다.


93. 어쩌면 (한국이 최고라는 말)이 맞을지도 몰라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한국을 떠나려고 발버둥쳐왔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인생 뭐 있나. 맛있는 거 먹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꽁냥거리는 게 최고다. 또 팬데믹 상황을 좀 보라고. K-방역(정확하게는 한국의 의료체계)은 달달하다. 그래도 더 나이들기 전에 한 번 더 나가고는 싶은데. 아 진짜 가족들이랑 친구들 다 모아서 한국 음식 잔뜩 싸가지고 외국 가고 싶은데! 라는 말도 안되는 헛꿈을 또 꿔본다.

이런 한국식 곱창 파는 나라가 혹시 어디 있을까? 먹는 건 정말 중요하다. 한국 음식 못 잃어. Image by hyun chun kim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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