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유래
아침에 잠을 깨기 위해
한 잔,
점심에 잠을 이기기 위해
한 잔,
오후에 회의를 하기 위해
한 잔,
저녁에 친구들과 예쁜 카페에서
한 잔.
그렇게 오늘도
한 잔의 커피를 손에 든다.
언제부터인지
커피는
우리의 삶 속의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 역시
회의와 미팅의 핑계로
하루에 두세 번은 카페로 향한다.
하루는
커피를 마시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제부터
그리고 어디서부터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든 것일까.
커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졌고
기왕 마실 거면
자세히 알고
그 자체를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커피에 대한
글을 쓰며
공부 해보리라 다짐한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1890년쯤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를 통해 들어왔으며
고종황제가 처음 마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부분 1902년
러시아 공사 웨베르 처남인 처형인 손탁을 통해
커피가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쨌든 당시에는
커피를 가비 차, 가비 차, 또는 양탕이라고 불렀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종황제는 지독한 커피 마니아였고,
그런 고종은 커피 덕분에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1898년 고종황제는 식사를 마친 후
황태자 (훗날 순종)와 커피를 마셨는데,
몇 모금 마시던 그는 평소와 향이 다르다며
곧바로 뱉어버렸다.
반면 아직 커피의 맛을 잘 알지 못했던
황태자는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조선 후기의 역관 었던 김홍륙이
(아관파천 당시 고종과 웨베르 사이의 통역사,
고종의 총애를 믿고 권세를 부리다
러시아와의 통상에서 거액을 착복하여 유배되었다.
떠나기 직전 고종을 독살하려는 사건을 일으켜
유배지에서 사형당했다.)
커피에 아편을 타 암살을 시도했었고,
커피 향을 제대로 구별할 정도로
커피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기에
고종은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만큼
커피사랑이 남달랐던 고종은
자신의 커피 시중을 들어준 손탁 여사에게
옛 이화여고 본관이던
서울 중구 정동 29번지 황실 소유의 땅
184평을 하사한다.
손탁은 1902년
이곳에 2층 양옥을 짓고 '손탁호텔'이라 하고
커피하우스를 만들어 판매한다.
이게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다방)의
시초라는 설이 있다.
커피가 보급된 시기는
1945년 6.25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면서
저렴한 인스턴트커피가 보급되는데
이때 일반인들도 커피에 접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
1970년대
동서식품이 미국과 손을 잡고
'맥스웰하우스'라는 상표를 만들어 생산하면서
1790년대 후반까지 한국 커피시장을 장악했다.
1976년
커피믹스와 자판기의 등장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중의 커피 취향이 고급화가 시작되기 시작했고
88 올림픽을 기점으로
원두커피 전문점이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이때 압구정동에
"자뎅"이 원두커피의 시초가 된다.
1999년 7월,
스타벅스가 서울 이대점에 본점을 내고,
커피빈, 시애틀 베스트 커피, 카페 네스카페, 자바
등의 커피 전문점이 한국시장에 들어와
커피 문화를 만들게 된다.
한국의 커피 문화는 조금 더 특별하다.
커피 그 자체가 좋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그 카페의 분위기가 좋아
커피를 찾는 사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를 또는 누군가를 만날 때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카페를 찾게 된다.
커피의 맛도 좋고,
카페의 분위기도 좋다면
그 날의 기분은 괜스레 좋아진다.
역설적이지만
오늘도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와있다...
악마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같이 순수하고
사탕처럼 달콤하다.
-탈레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