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여행 제주도 편 1

제주 서쪽에 가다

by 교한동




어느 순간 제주도에 가야겠다고 생각하자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이미 올 초 세 번의 여행을 다녀온 나는(나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1월에 함께 부산에 다녀왔던 친구들을 열심히 꼬시며 몇 달을 보냈다. 친구들은 각자의 이유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럴수록 나는 제주도에 가야만 한다는 오기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그 달 중순이 되어 집 근처의 치킨집에서 그중 한 명을 꼬여내는 데 성공해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친구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나는 열한 살 때 가족들과 한 번 제주도에 가봤지만 제주도에 대해 아는 건 없다시피 했다. 별 이유는 없었지만 우리는 애월과 한림 지역에서 2박 3일을 보내기로 했다. 협재 해변과 그 주변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항공권이 저렴한 월화수로 일정을 정했고 나는 카페 사장님에게 부탁해 수요일 근무를 뺐다.




내가 여행 계획을 짤 때 중시하는 건 어디에서 무엇을 먹느냐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우리는 갈치조림과 고등어회를 먹고 싶었고 흑돼지는 먹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었다. 평소에도 같이 시간이 비면 동네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던 터라 인스타그램에서 입맛 당기는 디저트를 팔거나 바다가 보이고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 수십 곳을 찾아 저장했다. 인스타며 유튜브며 온갖 알고리즘이 제주도로 가득 찼다. 가고 싶은 식당과 카페 몇 곳을 점찍은 후 갈 만한 곳을 열심히 물색했다. 나는 주로 경치 좋은 곳에서 느긋하게 걷기를 좋아하고 바다나 호수 같은 물가라면 더 좋다. 건축물 구경도 좋아하는 편이다. 친구는 일행의 계획에 잘 맞춰 주는 편인 데다 자연이 멋진 곳을 좋아한다는 점도 비슷했다. 그날 우리는 아이패드를 들고 카페에서 만나 계획을 짰지만 낙서 같은 메모 몇 장만 남기고 헤어졌다. 미리 계획해 둔 건 둘째 날 점심 장소까지였다.




제주도로 떠나기 몇 주 전부터 우리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각자 알바를 하는 날마다 서로 카톡을 보내 곧 제주도 가는 날이라면서 북돋웠다. 그즈음 나는 거의 제주도가 아니라 환상세계로 떠나는 티켓을 쥐고 있는 것 같았다. 알바 외에 딱히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 않는 중이던 나에게서 모든 불안과 무료함을 없애주고 에너지를 쥐여줄 것처럼. 오래 알았던 친구와 처음으로 둘이 떠나는 여행이기도 했다.



그날이 되어 제주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택시를 타고 고기국수를 먹으러 갔다. 그리 특별한 음식도 아니라던 고기국수는 우리를 사흘 내내 극찬하게 만든 맛이었다. 이게 수요일 급식이라니! 내가 수요일에 행복해하며 먹었던 스파게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절제된 몇 가지 재료에서 우러난 것 같은 단순하고 깊은 맛. 걸쭉하게 느껴질 만큼 진한 고깃국물에 노란색 부드러운 고소한 면발. 넉넉하게 들어 있는 수육은 혀 위에서 녹았고 김치를 잘 먹지 않는 나도 저절로 김치그릇으로 젓가락이 갔다. 제주에서의 이 첫 끼는 우리가 앞으로 만날 음식들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높여줬다.



국수를 깨끗하게 비운 후엔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다른 어느 곳보다 커다란 비행기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 식당이 공항 근처라서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우리는 캐리어와 다리 두 쌍을 좌석과 좌석 사이에 끼운 채 한 시간을 달려 협재 해변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해변으로 가니 이미 해가 질 시간이라 한산했다. 하얀 모래사장 위로 검고 울퉁불퉁한 돌바닥이 층을 이뤄 육지에서 가봤던 다른 해변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앞서 간 사람들이 빼곡히 쌓아 놓은 돌탑들을 조심히 피해 물가로 다가가 투명한 수면을 보자 이제야 제주도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바다는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서울 아래 붙은 내륙 도시에 살지만 틈이 나면 짐을 싸 바다로 간다. 수면이 너울대고 끊임없이 땅에 부딪치는 모습은 언제 얼마나 보든 정신을 빼놓는 광경이다. 친구와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다른 조건이나 상황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여기 살고 싶다는 말만 계속했다. 당연히 여기도 마냥 천국일리는 없지 하지만! 여행이 좋은 이유는 잠시 삶을 잊을 수 있어서 아닌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딱 그거였다.




해가 진 다음에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고등어, 딱새우와 광어회가 나오는 모둠회와 한라산 한 병을 시켰다. 양이 제법 푸짐했고 고등어회 먹는 법이 적힌 종이를 볼 때부터 마음이 설렜다. 함께 나온 김에 회와 알밥과 양파를 싸서 입에 넣자 벌써 눈이 커지고 미간은 찌푸려져서 친구와 마주 본다. 평소에는 회는 회 맛으로 먹는 거라며 와사비에 간장만 조금 찍어 먹는 편이었지만 짭짤한 김과 아삭하게 씹히는 양파의 맛을 한 번 보니 계속 새로운 조합이 궁금해졌다. 김 위에 반찬을 뺐다가 추가했다가 쌈장도 넣어 보고… 역시 도전은 할수록 좋다. 특히 모르는 음식을 먹을 때는.




딱새우를 먹은 것도 이 날이 처음이었다. 이름만 듣고서는 살이 단단한 새우를 기대했는데 생긴 것도 식감도 평소 먹던 새우와는 다르다. 살짝만 잡아당겨도 꼬리 부분이 쏙 빠진다. 남은 살은 달달하고 쫄깃해서 약간 당황스러운 맛이었다. 맛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게 새우인가 싶은 느낌? 그렇게 알쏭달쏭한 상태로 딱새우를 보내주고 이틀 뒤 공항으로 가기 전 길에서 딱새우 우동집을 마주쳤다. 정말 궁금했지만 그때는 식사를 할 상태가 아니었다. 한번 더, 게다가 뜨거운 국물 속에서 먹어봤다면 딱새우란 무엇인지 좀 더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있었을 텐데… 아직도 아쉬워하고 있다. 딱새우… 궁금하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야식으로 물회를 먹을 생각으로 편의점에 들러 포스틱과 크림빵과 청하 두 병을 사 왔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에 차 배달 앱을 열어봤을 때 이미 열 시가 넘어 근처에는 대부분 횟집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숙소 바로 아래 횟집도 문을 닫았고 방금 저녁을 먹고 온 식당도 라스트오더가 끝났을 시간이었다. 맥주를 사고 내일 소주를 살걸, 계산하는 김에 물회도 포장해 올걸, 등등 잠시간 수많은 후회에 시달렸지만 다 끝난 일이었다. 내가 여행에서 싫어하는 게 있다면 기분 상한 채로 오 분 이상 있는 것이다. 여행에서는 빨리빨리 잊고 내일을 생각해야 한다. 다음날 계획을 짜며 침대에서 먹는 편의점 과자는 취향에 맞고 맛있었다. 우리는 숙소 TV로 지구오락실을 틀어놓고 고기국수와 고등어회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이야기했다. 그렇게 다음날을 기대하다 제주도 여행의 첫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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