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죽음을 맞으려면

by 교한동
출처: 예스24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저자 케이틀린 도티는 죽음이 다가올 때 힘들게 맞서지 않고, 죽음을 좋은 삶의 보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좋은 죽음이라고 했다. 하지만 저자가 바로 다음에 적었듯 칼 융은 죽음의 의미를 자신에게 물어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죽음과 인간의 관계는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죽음과 맺은 나만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성인이 된 후 두 번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됐다. 내 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였다. 두 분은 병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돌아가셨다. 가족들이 차라리 이제 편안해지셨을 거라 말할 정도였다. 친할머니의 병세가 많이 나빠졌을 때 부모님은 나를 앉혀두고 엄마 아빠는 몸이 아파지면 아무 치료도 받지 않고 원래 수명까지만 살겠다고 했다. 서로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을 가장 가까이서 간병하면서 돌보는 사람도 힘들지만 겪는 장본인이 가장 괴롭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나도 그게 엄마 아빠의 행복을 위해 낫다고 생각했다.



내 조부모님들처럼, 얼마나 직업적으로 성공했고 밝고 활기찬 삶을 살았든 죽음은 상상도 못 한 형태로 다가온다. 나에게 죽음보다 존재감이 큰 건 내 몸과 정신의 통제력을 잃는 것, 그리고 그 상태로 너무 오래 있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오히려 죽음은 그나마 나을 수 있는 선택지고 탈출구였다. 생명 연장에 집착해 기술 발전에 거금을 쏟는 재벌보다는 낫지만 그렇게 건강하지는 않은 “죽음관”이었다.



케이틀린은 어릴 때 비극적 사고사를 목격하고 대학에서 죽음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며 죽음과의 관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장의사로 일하며 그 관계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그가 실제로 마주한 수많은 죽음들은 저마다의 이유와 사정, 가끔은 케이틀린이 사랑한 사람의 얼굴까지 갖고 있었던 탓이다. 그 외에도 거부하고 싶은 장례업계의 관행, 돈이 되는 절차들, 유가족들을 만나며 사람들이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한 케이틀린의 생각은 확고해진다.



그 생각은 우리가 죽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은 늘 우리 주변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사회가 어린이들을, 업계가 유가족과 소비자의 눈을 가린다. 디즈니 영화가 해피엔딩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죽음에서 눈을 돌린다. 죽음은 너무나 먼, 혹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죽음이 곧 의학과 기술의 실패이기 때문에 병원이 이를 숨기고 장례 절차는 시신을 “자연스러워”보이게 만들며 시신을 유가족에게서 떼어 놓는다. 점점 숫자가 늘어나는 노인들에게 죽음을 알맞게 마주할 방법보다 여전히 젊게 살 수 있는 방법만 내밀며 소비를 촉구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누구에게든 어쩔 수 없이 죽음은 찾아온다. 아무도 그 방식과 시기를 좌지우지할 순 없다.



정말이지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케이틀린이 마주친 첫 죽음은 실수로 높은 곳에서 떨어진 어린아이를 데려갔다. 과장 좀 보태서 내가 이 글을 무사히 완성할 수 있을지 누구도 확언할 수 없는 것이다(과연 과장일까?). 나는 죽음보다 거기까지 가는 길이 두려웠다.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미 늙고 병마에 정신까지 맑지 않게 된 내 요구를 주변 사람들이 진지하게 들어줄까? 케이틀린의 충고는 이런 걱정에도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죽음을 맞고 싶다면 언젠가 올 죽음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그에 대해 이야기 나누자. 내 부모님처럼 물꼬를 트는 것도 나쁘지 않다. 왜 그 방식을 원하는지 털어놓다 보면 우리와, 그리고 죽음과의 관계는 더 친밀해질 것이다.



죽음이 도처에 있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진 대도 죽음만은 그 자리에 있다면 뭘 두려워하겠는가? 삶이 언젠가 끝날 것을 알기에 사람은 무언가 이루려 하고 다른 이들과 만나 관계를 쌓는다. 죽음을 삶의 일부, 그 마지막 장으로 받아들여라. 어디서 어떻게 화장되고 싶은지, 뿌려지고 싶은지, 내가 떠나도 남은 것들을 어떻게 해 주기 바라는지 이야기하며 삶을 돌아보라. 이 과정이 우리를 해피엔딩 그 이후를 내다보는 어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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