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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WJ Jan 26. 2016

90년생의 TRIBUTE  TO  SAAB

사고뭉치들이었던 옛 SAAB 엔지니어들의 실험 정신과 장인 정신이 그립다

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 우리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 부는 가져갈 수 없지만 기억은 가져갈 수 있으니 그 기억들이야 말로 
너를 따라다니고, 너와 함께하고 지속할 힘과 빛을 주는 진정한 부이다.

- 스티브 잡스 -


첫 차는 사브여야만 했다.

그것은 내가 재작년에 포기하려 했었던,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쭉 갖고 있었던, 내 오랜 바람이었다.


꼬꼬마 때 처음 탔던 할아버지의 자두색 SAAB 9000 CSE는 티코, 크레도스와 프라이드만 타봤던 나에게 신세계 그 자체였다. 마치 애버랜드만 가봤다가 처음으로 미국에서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가본 느낌 같은, 아마 디자인이란 단어도 없었을 내 머리통 속에 스칸디나비아의 멋과 맵시를 똑똑히 새겨 넣어줬을 거다. 멋들어지게 나이 드시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같이 말이다.


사브의 세련되고 단조로운 자태와 날카로운 감각.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깜깜함에 혼자 소리치던 나이트 패널, 그냥.. 뭐 완벽했던 깜빡이 소리. 자동으로 움직이는 전동식 시트까지. 그 당시에, 90년대 중후반에 전동식 시트라니! 그것은 내게 아톰과 같은 최첨단 로봇이었다. 사브의 파란색과 빨간색의 그리핀 앰블럼과 그것이 붙어있던 자두색 색상의 전면부 디자인, 각진 후면부 디자인도 정말 너무 너무나도 예뻤다. 저 밑의 바퀴 디자인은 지금 봐도 참 쌈박하다.  

사브 9000. 뒷모습은 마치 부딪쳐 볼 테면 부딪쳐 봐라 하는 모습이다. 사브는 충돌 테스트에 그 어떤 회사보다 많은 연구비용과 테스트 비용을 쏟아부었다. 심지어 손해가 나며 팔면서까지도..

그 이후로도 초록색 SAAB 900S, 청색 900S Turbo 들을 타봤다. 이 둘도 너무나도 좋았다. 너무나도..  영화나 드라마에도 나왔던 차지만 정말 올드카의 진수를 보여주는 특별한 차들이었다. 그렇지만 뭐니 해도 9000 CSE의 그 강렬했던 인상은 지금까지 내게 가장 많이 남아있다.


SAAB 900 Series


아직 차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자라 오면서 차를 좋아하는 친척들 덕분에 정말 많은 차들을 타봤다. 차를 정말 좋아하고 경험이 많아 잘 아는 사람들은  새 차 사는 것보다 당연히 중고차 매매를 하려 한다. 무엇보다도  새 차를 사면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차들을 타볼 수는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다른 이유들은


-  새 차를 구입하기에는 오버프라이스된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는 점.

- 중고차 상태도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바가지 당할 일이 없다는 점.

- 수리센터 인맥이 넓어 혹시 문제가 있다면 부품을 싸게 구할 수 있다는 점.

- 어느 정도는 손수 부품을 구해(오 아마존이여!)  직접 수리까지 할 수 있다는 점.(후방카메라, 네비, 사운드시스템 정도는 뭐) 등등이다.


그래서 나도 전기차, 무인차가 상용화되기 전까진 중고차들을 타며 살 생각이다. 많은 다양한 종류의 차들을 타본다는 것은 누구보다 차를 잘 알 수 있도록 하는 경험이 될 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어갈수록 큰 자산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이가 있어 차를 많이 다뤄본 분들과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이들.

서로 다른 이 두 세대가 교감하는 데 차 얘기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깊이와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러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들만이 갖고 있는 강점이자 젊은이들을 홀릴 수 있는 매력이며 젊은이들은 바로 이런 것들을 그들에게 바라기 때문이다. 마치 앤 헤서웨이가 로버트 드니로를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영화 인턴의 그 한 장면처럼.


누구나 어렸을 때 한두개의 로망을 갖고 산다. 그것이 결혼식이든, 배우자든, 직업관이든.  

여튼 도요타부터 시작해서 렉서스, 푸조, 혼다, 폭스바겐, 벤츠, 포르쉐, 아우디, BMW, 재규어, 랜드로버, 포드.. 브랜드 내에서 타본 차종까지 합치면 이보다 더 많을 거다. 여러 차들을 타보며 비교해보면 비교해볼수록 아 내 첫차로는 SAAB였으면 하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SAAB는 내 올타임 넘버원이었다.


일단 대중적인 거라면 비토부터 외치는 내 꼬인 성향과,

나 이거 비싼 명품이야를 외치는 누구나 아는 럭셔리 굳들을 싫어하는 내 꼬인 성향과,

나열하면 끝이 없는 여튼 이런 내 아주 꼬인 성향들을 거의 유일하게 만족시킬 수 있었던 것이 SAAB였기 때문이다. 나도 참 대중적인 취향에 주류에 몸을 맡겨 편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까다롭고 예민한 성질은 장점도 있지만 가끔 스스로가 싫어질 만큼 피곤할 때도 있다. 물론 사브는 피곤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선택할만한 가치가 있었지만.


사브는 유니크했다. 첫차가 사브가 아니라면 차를 구매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같이 다닌 친구도 그랬고 대학 때부터 돈을 모은다면 당연히 졸업하고 나서 탈 차를 위해 모아야지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턴을 하면서 사브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재작년에 인턴을 하면서 한 번 사브 93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차 상태가 안 좋아서 접어야 했다. 좋은 관리 상태의 사브는 구하기 어렵다. 왜냐면 마니아들이 보통 소유하고 있고 웬만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잘 팔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그때 깨달았지.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제대로 잘 관리된, 옛 멋을 잃어버리기 전의 사브는 사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차였다. 그렇게 포기했었는데  운이 좋게 다시 한 번 내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SAAB 9-3 Aero 시승기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100km 이상 고속 주행에서 제대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차인 것 같다. 일단 고압 터보 엔진이니까..  100km를 달리나 190km를 달리나 소리와 흔들림 등의 승차감에서 전혀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튜닝이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리고 핸들링, 코너링도 잘 잡혀있었다. 190에서도 정말 조용하더라. 경험자에게 트랙 이용비가 비싸지 않다고 들었는데 나도 나중에 꼭 한 번 트랙에 데려가 보고 싶다.

중저속에서는 엑셀 반응이 뛰어나서 가속감을 잘 느낄 수 있었다. 210마력에 최대 토크는 30.6 kgm/2500 rpm 다. 브레이크도 정말 안정적이었는데 프런트 디스크가 312mm, 리어가 290mm로 대형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다.

단점은 서스펜션이 꽤 별로다. 저속으로 시내에서 탈 때 특히 도로가 울퉁불퉁한 곳에서는 흔들림이 시트로  하드하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침마다 수영을 하러 차를 끌고 나가는데 왜 우리나라 도로는 항상 덕지덕지 만드는지 모르겠다. 도로라도 선진국처럼 깔끔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 취미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살다 보면 힘든 순간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게 해주니까요. "

- 김택성 레이서 -


여튼 올해 내로 나도 트랙에 꼭 한번 가져가 보는 것으로..



제정신이 아닌 광고와..


전성기의 사브는 이랬더랬다.  

1. 그 어떤 차 브랜드보다 브랜드 충성도가 가장 높았다. 그만큼 마니아층이 있었다. 국내에도 사브 마니아들이..

2. 한 때 우리나라 수입차 순위 1위 할 만큼 인기 있었다.

3. 내구성, 안전성에 있어서 사브를 따라갈 수 있었던 차가 없었다. BMW보다 더. (SAAB Tribute 참고)

4.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들을 많이 했고 그만큼 실패도 많았지만 업계 최초인 성공들도 많았다.

5.  그중에 하나로 터보 엔진을 최초로 유행시킨 장본인이었다. 터보란 단어 자체도!

6. 사브의 운전자는 길 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7. 사브의 엔지니어들은 사고뭉치들이었지만 사브에 대해 사명감을 갖고 퀄리티에 대해서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차라리 손해를 보고 팔았으면 팔았지... 그래서 적자가 났었고 GM이 매수했었고...  또다시 GM은 골치 아픈 사브를 팔고 말았지...


But, for every idea they've had it didn't work, they've had another, which did.  Often.. Brilliantly

이런 정보들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에도 사브는 나에게도 강력한 임팩트를 주었고 무의식 중에 Brand Loyalty를 심어주었다.


알 사람들을 잘 알겠지만 SAAB는 실험 정신으로 똘똘 뭉쳐진 진정한 엔지니어들의 차였다. 내가 얼마나 장인 정신의 엔지니어들을 동경하는지, 잘 알 거다. 왜 SAAB가 엔지니어들의 차였는지 여기서 SAAB의 에피소드들을 다 소개하긴 어렵고 궁금한 사람들은 TopGear의 SAAB Tribute을 보면 될 듯하다. 개인적인 생각은 사브가 망한 이유로 고집 센 엔지니어들을 탓하지만 그들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포지셔닝을 잘못한, 그들의 기술력과 장인정신을 잘 살려내지 못한 멍청한 비즈니스맨들 탓이었겠지. 훌륭한 비즈니스 맨들이 있었더라면... 아님 사브 엔지니어 출신의 비즈니스 맨들이 있었더라면 사브를 그렇게 내버려두었을까 한다.


똑똑한 엔지니어들은 항상 마켓과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술 리딩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해 재수가 없다면, 어쩌면 멍청한 비즈니스 맨들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을 테니까.


나도 나름 경영학과니까 수업에서 배웠던 자동차 업계의 3가지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차 산업만의 산업이 아닌 부품 산업의 산업(Industry of Industry)

2.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하는 산업(need Economies of Scale to maintain competitiveness)

3. Highly Globalized된 산업.


즉, 요약해보면 높은 고정 비용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하는 산업이 자동차 산업이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세계 여러 곳에서 쉽게 부품을 조달해 차를 만들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좋아할 수 있도록 완만하게 만들어진 차. 밖으로는 혁신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혁신보다 원가절감만을 외치는 몇몇 자동차 회사들을 바라보면서 규모의 경제 개나 줘버려 했던, 품질 좋은 차만을 생각해 만들었던, 그래서 파산하고 망할 수밖에 없었던, 사브의 아이덴디티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 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예로, SAAB Tribute에 나온 여러 스토리 중에서 GM과의 트러블 부분만 캡쳐본으로 한번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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