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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WJ Aug 11. 2016

묘사#1

2013년 8월 14일 6시, 한남대교를 지나는 407번 버스 안에서

예전에 작성했던 관찰 글들이 있는데 다시 한번 읽어보니 글에 대한 열정이 생기는 것 같다. 또 다시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브런치에 올려놓고 보존시키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매거진을 만들어보았다. 수정없이 날 것 그대로.. 풋풋하게 쓴 글은 또 그대로 순수한 맛이 있는 거 같다. 




맨 앞자리에서 내가 볼 수 있는 사람은 버스 기사 아저씨 뿐이다. 이제 한 50대에 접어들었을 것 같은 아저씨를 힐끗 쳐다본다. 머리카락은 까만 곱슬머린데 아직 탈모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한 뭉태기의 미역들을 반으로 접어 머리위에 올려놓은 것 같다. 딱 중간 길이 정도 되어 더워보이지도 않는다. 머리 스타일도 그렇고 단정하고 정감있게 생긴 외모는 꼭 마치 내 중학교 때의 도덕 선생님을 닮으신 거 같다. 뒤쪽에서 보이는 옆모습은 계속 무표정이다. 감정의 변화가 없다. 이 지긋지긋한 차로를 몇번이나 반복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셀 수도 없이 많이 하셨기 때문이니라. 나는 군대에서만 볼 수 있었던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을 아저씨는 수십년간 버스 손님으로 태우며 이제는 그 어떤 당황스런 손님이 들어와도 무감각해질 수 있는 저 관조적인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저씨의 뺨을 보듬는 정말 따스한 주홍색의 햇빛을 발견한다. 한 남성의 조근거리는 투박한 목소리와 쿵짝의 단순하지만 울리는 비트, 그리고 간단한 화음의 피아노 멜로디가 들린다. 나는 지금 407번 버스에서 맨 오른쪽 맨 앞자리에서 인이어 이어폰으로 Claptone의 ‘No Eyes’ 란 곡을 듣고 있다. 인이어 이어폰의 실리콘 플러그가 귀에 완전히 밀착되어 외부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오직 피아노와 비트의 울림소리들 뿐이다. 



그리곤 그 햇빛을 따라가 창문 밖을 본다. 그 높디 높던 건물들을 헤집고 꽉 막혀있었던 기어다니는 차들을 비집고 빠져나와 버스는 이제 막 한남대교에 들어선다. 길이 확 트였다. 이렇게 한남대교를 지나 강남대로를 통과해 양재역까지 단숨에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제서야 저 햇빛도 버스처럼 해방되었음을 알아차린다. 창문 밖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의 표면서부터 검정 아스파트 도로 위, 흑먹색 다리 건너 출렁거리는 한강 물까지 저녁 6시의 햇빛은 예외없이 모든 것들에 자신의 색을 덧칠하고 있다. 햇빛은 오렌지 색보다 더 벌건 주홍색을 띄고 있어 내 어린날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90년대 중반 바둑학원 같은 것이 끝나고 정말 허름한 봉고차에 타 아저씨가 틀어주는 이상한 뽕짝과 함께 이런 다리 밑을 건널 때 창문을 열어 바라보았던 그 햇빛이 다시금 생각이 난다. 강물이 벌겋게 반짝이고 강물에 반사된 햇빛의 색은 내 추억과 함께 더 바래지고 짠해지고 있다. 난롯불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난롯불 햇빛이다. 짠하고 찡하고 그 울먹거리는 열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다시 도로를 보니 이제 3분의 2 지점 쯤에 서 있다. 모든 차들이 서 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으니 우리들은 가만히 있는데 저 앞의, 오른쪽의, 왼쪽의 모든 풍경들이 우리들을 향해 달려오는 것 같다. 강물들이 우릴 지나친다. 다리의 높이 솟은 기둥들과 철선들, 가로등들도 우릴 지나친다. 그리고 앞의 저 멀리 보이는 잿빛 건물들은 우릴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창문 밖의 트럭도, 소나타도, 현대 자동차 로고가 박혀있는 이름 모를 지프 같은 차도 모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리 위에서의 세상은 시간이 멈춘 듯 정지해 있다. 고요하다. 누군가 먼저 말을 하면 안될 거 같은 분위기다. 시간이 정지하고 우리들만 모든 것이 움직이지 않는 진공관의 세계에 진입한 것 같다. 다리 위의 모든 것들은 진공관 안에 있고 진공관 밖의 모습이 공기가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이듯이 다리 밖의 우릴 향해 다가오는 풍경들이 사실 시간은 멈추지 않았단 걸 증명하는 유일한 실체다. 


그리고 다리의 마지막 부분을 지나며 진공관의 유리는 우지끈 깨지고 만다. 차들은 백라이트를 껌뻑이며 점점 속도를 줄이고 일정했던 모든 균형들은 깨지고 만다. 다시 현실이다. 어디서 갑자기 차들이 생겼는지 다시 모두들 기어가기 시작한다. 시간은 우리들이 마주치고 싶지 않아 하던 현실로 우리들을 다시 밀어놓고 우리들은 다시 꾸역꾸역 움직이고 있다. 퇴근길의 강남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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