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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Jul 16. 2018

분리된 나 사이에서 균형 잡기

엄마인 '나'와 개인으로서의 '나'

가끔 시계를 보고 아차 싶을 때가 있다.

몰두해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시간인데 저녁 준비를 전혀 못했을 때다.


가끔 슬퍼질 때가 있다.

아이를 재우다가 그냥 같이 자버려서 그날 밤에 나의 자유 시간이 날아가 있고 눈을 떠보니 다음날 아침이 되어 있을 때다.


그렇게 나는 엄마인 나와 개인의 나 사이에서 항상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고 있다.


아이가 아주 어렸던 만 1살까지는 아이만을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개인의 나는 가끔은 숨통 트이고 싶어 했고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데 내가 아이를 위한답시고 내 기분을 억압하고 있다면 아이에게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틈틈이 나에게 휴식을 주기도 했었다.


문제는 휴식만을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 내가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것들이 자꾸 나를 자극했다. 온전히 내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아이 때문에 나 개인이 희생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어찌 보면 개인의 일이 잘 안 풀릴 때 잠시 아이를 바라보며 쉴 수 있는 특권이 엄마라는 사람에게는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독신으로 살면서 모든 시간이 나한테만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걸 내가 원하는 만큼 이룰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00% 내 시간이어도 슬럼프가 찾아와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고, 놀고 싶을 때도 있을 테니 내가 하려던 일이 '아이 때문에' 못하고 있다고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나름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엄마인 나와 개인의 나 사이에서 스위치를 바꾸는 건 참 쉽지 않다는 걸 요즘 들어 새삼 느낀다.


분명히 엄마인 내가 하고 있는 일도 개인으로 이루고 싶은 일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위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는 외부에서의 인정을 바라기 어렵고 나 스스로 다독이고 단단하게 만들어한다는 걸 알아서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엄마인 내가 하는 일들이 고액 연봉자와 맞먹는 고된 일임에도 그걸 외부에서도 잘 인정해주지도 않고 심지어 나 스스로도 그걸 의심할 때가 있다는 게 슬프다.


엄마인 나는 가정의 재무상태를 책임지는 은행장(가로 저축, 적은 돈으로도 행복하게 살기, 풍차 적금,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는 노력을 항상 하기, 재무관리에 대한 공부 등등)이자 보험회사(아이의 교육비와 건강을 생각해서 자체적으로 교육보험이나 건강보험을 대신한 적금을 따로 만들고 있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쓸데없는 사교육비로 인해 노후자금이 위협받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 교육에 대한 공부와 스스로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 학원 원장이자 가족의 건강과 영양을 책임지는 영양관리사와 개인 건강 상담사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제든지 가정의 경제활동에 추가적인 서포트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공부하는 고급인력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둘째나 셋째를 임신 중이라면 자신의 건강과 뱃속 아이의 건강 역시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사실 자기 몸만 돌보는 것만 해도 힘든 경우가 많다.


여기서 가사에 대한 것은 빼고 말하고 싶다. 가사가 엄마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다 큰 성인 둘이 합의하에 가정을 이루었다면 누군가가 상대방의 음식을 챙겨줘야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머문 공간을 정리한다는 건 다 큰 성인이라면 해내야 할 일인데 일을 한다는 이유로(수능 공부하는 고3에게 설거지도 안 시키는 이상한 상황처럼) 상대방에게 그 일을 미루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님을 우린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걸 해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도와준 게' 아니라 그저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머문다면 당연히 분담해서 해야 할 일인 것을 우리는 왜 그토록 성이 다른 이들끼리 편을 갈라 싸우는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걸 해내야지 이런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게 될까. 아무리 외부에서 뭐라고 하고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런 그들이 이상한 거라며 코웃음 치며 튕겨낼 수 있을까.



어린아이를 키우며 그 수많은 일들을 하지만 그것들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인정이 없는 한 나는 개인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더욱더 커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인다. 엄마인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정을 잘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서 하고 있는 일들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은 것만큼 개인의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다.


오늘도 나는 참 어려운 균형 잡기를 하고 있다. 어느 쪽에 치우쳐도 죄책감이 들겠지만 이 균형을 잘 잡는 게 내가 행복해지는 길일 테니 말이다. 좀 더 아이가 크면 이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을까. 아직 두 돌인 첫째와 뱃속의 둘째와 함께 개인의 나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건 나만의 욕심인 걸까.


그래도 내가 성장하고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이 간다고 믿는 나는 오늘도 참 어려운 균형 잡기를 잘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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