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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Aug 11. 2018

남편이 달라졌어요

나를 희생하지 않고 상대를 변화시킨다는 게 가능하다니!

사람이 변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믿기 싫지만)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변할 수 있는 여지는 있을 거라 작은 희망은 버리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변하겠지'라는 기대가 오히려 관계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경우도 많다는 걸 경험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다. 차라리 포기하는 경우(포기라는 말을 너무나도 싫어하지만) 오히려 관계가 이전보다는 덜 피곤해질 때도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포기해서 편해졌다라든가 기대치를 낮추니 그나마 살만해졌다는 얘기는 뭔가 듣기 싫지 않나. 나는 그런 말들이 싫었다. 작은 기대나 가능성마저도 쓸모없는 거라며 좌절시키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남들의 '어쩔 수 없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해'같은 말을 오기로라도 믿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나에게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까라는 고민은 인생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숙제였다. 일에 지쳐 표정이 어두운 남편이 안쓰럽지만 그렇다고 나 역시 그 기분을 풀어주려 웃는 낯으로 이것저것 해보아도 별 효과가 없을 때 상대가 안쓰럽기보다 어느 지점에선 화가 나기도 하니까.


'왜 밖에서는 타인의 기분을 신경 쓰면서 제일 소중한 가족에게는 짜증을 그대로 내게 되는 걸까' 남편의 경우뿐만이 아니라 나 역시도 청소년기와 대학생 시절 가족에게 내가 했던 행동들을 반성하게 되면서 고민이 깊어갔다. 남편의 경우만 생각했을 때는 괜히 억울하고 남편은 왜 내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걸까 서운했는데 내 경우를 돌아보니 그럴 여유가 없을 만큼 힘들어서일거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래, 머리로는 알지만 자신이 너무 지쳐 상대도 마음이 상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할 수도 있어.'


그렇게 나를 이해시키려고 했지만 나 역시 머리로는 알지만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서운해하고 그래도 좀 이해하려고 참다가 가끔씩 서러움에 남편에게 하소연 겸 화내는 일을 반복하는 일상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런 날들이 올 때마다 남편은 더욱 힘들어했고 나 또한 나도 힘들어 그러는 건데 그런 나를 달래주지 못하는 남편이 야속했다.


우리의 이런 패턴(내가 주기적으로 서러움을 폭발하고 또 잠잠해지는 게 반복되는)에 변화가 온 것은 그리 특별하지 않은 사건들 덕분이었다.


나는 어느 날 문득 내가 주기적으로 폭발하는 일이 근 두 달간은 없다는 데에 놀라웠고 남편의 표정도 한결 편안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때문이었는지 거꾸로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몇 가지 일들덕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육아, 퇴근 후 루틴, 호칭, 내 마음

육아

내가 남편과 함께 육아하면서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내가 쉬는 동안에도 나는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남편이 자발적으로 나를 쉬게 해주고 싶어서 '넌 좀 누워서 쉬고 있어, 아이는 내가 볼게'라며 너무나도 고마운 상황에서도 나는 신경이 온통 실시간 육아 동참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피로를 느꼈었다. 그 이유는 남편이 아이를 보면서 아이가 칭얼대거나 남편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남편은 크게 한숨을 쉰다든지 아이를 큰 소리로 다그쳤는데 그 소리가 은근히 사람을 신경 쓰이고 피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니 남편은 남편대로 육아 때문에 지치는데 나는 쉬지도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그 사실을 말하는 대신('이렇게 해줘'라고 말하면 남편한테는 그게 잘 안되는데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상황이 되어 그의 육아에 대한 의욕을 꺾을까 봐) 내가 남편이 했으면 하는 스타일대로 아이를 대하는 걸 남편 앞에서 꾸준히 했다. 아이가 칭얼대도 어른은 침착하게 되려 더욱 낮은 목소리로 대하려고 했고 내가 힘들어지면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를 달래며 내가 더 즐거우려고 했다. 사실 내가 별 대단한 육아 스킬을 아는 건 아니었지만 윽박지르고 부모가 스트레스받은 상태에서 아이에게 대한다고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그럴 바에는 최대한 내가 편하고 힘들지 않은 방법을 택한 거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날은 내가 쉬는데 전혀 남편의 소리며 아이 칭얼대는 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해서 집중해서 들어보니 남편이 아이가 칭얼대도 웃으면서 침착하게 아이를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내가 하는 대로 따라준 게 너무 고마웠고 신기했다.


나는 이 날이후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상대방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직접 부탁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보여주는 게 어떤 경우에는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걸 몸소 알게 되었다.


퇴근 후 루틴

예전에는 나는 남편이 퇴근하기 2시간

전부터 긴장하곤 했다. 남편이 일찍 오는 게 싫다는 게 아니라 이제 슬슬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 나의 자유시간은 얼마 남았구나와 같은 아쉬움과 조바심에 기인한 긴장이었다. 그게 나를 더욱 피곤하게 했고 저녁 준비를 하기도 전에 어떤 날에는 피곤이 극에 달해 남편에 대한 서운한 감정들과 섞이며 짜증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나는 그걸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그냥 남편이 올 때까지 온전히 나의 자유시간이라고 생각하며 그 시간에 집중했다. 그 시간에는 저녁 메뉴도 미리 걱정하며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남편이 문 열고 온 다음에 그때부터 부지런히 그리고 빠르게 메뉴 생각과 저녁 준비, 그리고 밀린 설거지, 청소들을 동시에 했다.


그랬더니 생각지도 못하게 나는 그 많은 일을 더욱 빠르게 하기 위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고 그래서 남편이 지쳐서 나에게 신경을 못써주는걸 그다지 예전만큼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아니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호칭

재미 삼아하게 된 남편과 나의 MBTI 검사 결과로 남편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는데 그걸 계기로 장난반 진심반으로 새로운 호칭을 남편에게 붙여주었다.(참고: 100일 전과 달라진 나) 뭔가 여기에다가 밝히기도 민망할 정도로 별거 아니고 오글거릴 수 있는데 '세젤예(세상에서 제일 예쁜)'처럼 '세젤따(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사람)'라고 장난 삼아 불렀다. 세젤따가 뭔가 입에 착 붙지 않아서 그냥 '세따따'라고 하다가 괜히 민망하니까 더 장난식으로 '쉐따따'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르다 보니 남편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나에게 각인(?!)시키는 계기도 되고 남편도 그렇게 불릴 때마다 쑥스러운 듯 민망한 듯 웃어 보이는데 그때마다 우리 집안 온기가 따뜻해져 가는 게 느껴져서 참 좋았다. 심지어 내가 그렇게 가끔 부르니까 두 돌 된 우리 딸도 아빠를 '셰따따~~'라고 가끔 부르는데 그럴 때마다 집안에 웃음이 넘쳐나는 건 의도치 않은 보너스 같은 행복이라 할 수 있다.


내 마음

내가 변해야지라고 굳이 크게 마음먹은 건 아니고 내가 좀 편안한 마음 상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내가 주기적으로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도 피곤했고 그걸로 다툼이 일어 어색한 시간이 흐르는 것도 이제는 지긋지긋했다. '항상 웃음이 넘치는 가정은 불가능에 가까운 걸까? 아니 그렇지 않을 거야, 나는 그런 곳이 집이었으면 좋겠어!'라는 오기와 같은 바람을 품고 있었다. 그게 나에게 '가정은 완벽해야 해!'라는 스트레스를 준 것은 아니고 그냥 소소하게라도 항상 시답지 않은 일에 웃고 고마워하는 그런 재미난 가정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었다.


그걸 이루기 위해 내가 어때야 할까를 고민하다 보니 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내가 노력해서 뭔가를 바꾸는 게 아니라 내 마음 상태가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나름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뭘 할 때 즐거운지 무엇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되는지 등등 나에 대한 연구를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꾸준히 내 관심분야의 책을 찾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소소한 팁이나 깨달음들을 얻게 되었고 나의 하루하루는 점점 더 편안하게 변해갔다.


내가 마음이 편안하니 남편의 기분에 내가 좌지우지되는 일이 줄어들었고 남편의 말에 쉽게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 그걸 남편도 느꼈는지 남편의 표정도 한결 편해졌고 어떤 날에는 내가 약간 예민해져 있는데 오히려 남편이 여유 있게 내 마음을 풀어주려고 장난을 쳐주었다. 나는 이때 너무나도 놀랬는데 사실 남편은 나를 달래주는걸 정말 잘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내 마음을 상하게 하면 미안해서 표정이 계속 주눅 들어 있다든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풀이 죽어있는 상태가 계속되어 내 기분까지도 계속 풀리지 않는 상태가 자주 있었다. 나는 차라리 미안하다는 사과는 한 번으로 족하고 차라리 분위기 전환을 위해 남편이 밝게 다른 화제로 돌려주길 원했고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도 했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남편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는 걸 느끼고 너무 놀라웠던 것이다.



나는 이전까지 부부간의 변화는 누구 하나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노력'할수록 지쳐갔고 더욱 불만은 쌓여갔다.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데...'라며 서러운 마음도 생겼고 상대가 노력하는 것도 분명히 있을 텐데도 '나만' 노력하고 희생하고 있다고 나의 상황만 점점 확대하고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노력'을 그만두고 나니 훨씬 수월하게 내가 원하던 게 눈앞에 다가왔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참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걸 계기로 내가 지금까지 해오던 '노력'을 모두 그만두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문득 해본다. 그러다 보면 내가 생각지 못한 새로운 길도 열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분좋은 기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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