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질문이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단순한 질문이 아닌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질문이 중요해졌고 성찰이 이루어지는 질문이 중요해졌다.
무언가를 질문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질문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게다가 질문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무엇을 질문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답도 달라진다. 즉 올바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올바른 질문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질문은 특정인이나 특정한 조직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chatGPT와 같은 생성형AI의 등장과 확산은 질문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답도 다르고 답의 수준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질문의 수준만큼 답을 얻게 되는 것이고 질문의 수준을 넘어서는 답을 얻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사람마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삶과 일 그리고 관계에 있어 어떤 질문을 하느냐를 보면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는 어떤 사람의 수준은 그 사람이 하는 질문의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질문의 수준은 질문자가 현재 머물고 있거나 추구하는 욕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잣대로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과 상대방과 주고받은 질문을 들여다보면 현재 자신이 어떤 수준에 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등과 같은 질문은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대로 물어도 되는 낮은 수준에 속하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질문의 수준이 낮다고 해서 불필요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일상에서 오가는 질문이 낮은 수준에 국한되거나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또 다른 수준의 질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수준의 질문이란 성찰적 질문(reflective question)이다. 무엇(what)에 대한 질문이나 어떻게(how)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왜(why)에 대한 질문이다.
다시 말해 삶과 일 그리고 관계적인 측면에서 목적이나 의미 그리고 본질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을 의미한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는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과 같은 질문이다. 이와 같은 질문은 스스로 많은 고민과 생각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것이 성찰의 과정이고 성장의 발판이 된다.
이에 더해 스스로 혹은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이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나 상대방에게 던지는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물론 질문을 바꾸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학습이다. 경험에 의한 학습도 필요하고 사람에 의한 학습도 필요하다. 독서를 통한 학습도 빠질 수 없다.
학습을 통해 축적된 지식의 양에 따라 질문의 수준이 바뀌게 된다. 그러니 학습을 게을리하거나 간과한다면 좋은 질문과 올바른 질문 그리고 성찰적 질문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in garbage-out)’는 격언은 질문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답을 찾는 것에 많은 시간을 써왔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매사 주어진 질문이나 문제에 대해 최적화된 답이나 정답을 찾아야 했다.
여전히 풀어내고 찾아내야 할 답들이 많지만 이제는 질문을 찾는 것으로도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질문이 바뀌면 달라지는 것이 많아진다. 어쩌면 난제라고 여겼던 것들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답을 잘 찾아왔다면 이제는 질문을 찾을 때다. 개인과 조직의 수준은 스스로가 던지는 질문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질문의 수준에 맞는 결과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