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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movieaday May 12. 2023

<오프닝 나이트, 1977>

존 카사베츠 감독


영화는 무대 뒤에서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는 주인공 '머틀 고든'의 모습을 조명하며 시작된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의 머틀은 문을 열고 무대 위에서 자신만의 연극을 펼친다. 관중들의 환호와 함께 연극을 잘 마무리한 머틀은 집으로 이동 중에 많은 팬들로부터 사인 요청을 받는다. 그중 낸시라는 17세의 한 소녀가 머틀이 탑승한 차를 따라오다 차에 치여 숨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머틀은 충격에 빠지지만 나머지 단원들은 오로지 저녁 먹을 궁리만 한다. '제2의 여인'이라는 연극 속 나이 든 여자를 연기하게 된 머틀은 연극 리허설을 하면서 시나리오에 대해 불만을 가진다. 시나리오를 집필한 60대 사라가 그런 머틀에게 시나리오에 부족한 것이 뭔지 말해보라고 하자 머틀은 "희망"이라고 답한다. 그녀는 자신이 이 연극에서 '제2의 여인'을 완벽하게 연기를 하게 된다면 자신의 커리어는 여기서 끝나게 될 거라며 고통스러워한다. 주변 사람들은 머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머틀은 계속해서 방황한다. 그녀는 낸시의 집, 모리스의 집, 호텔 등등 여기저기를 전전한다. 머틀은 낸시가 죽고 낸시의 환영을 보게 되고 심지어는 자학까지 하게 된다. 사라는 심령술사에게 그녀를 데려가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머틀은 뉴욕 공연을 앞두고 제시간에 오겠다는 말을 지키지 않고 결국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로 극장에 나타난다. 극단 단원들의 도움으로 그녀는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그렇게 영화는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마무리된다.


영화는 주인공 '머틀 고든'의 무대 위, 무대 밖 동선을 따라다니며 보여 준다.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연극도 같이 시작된다. 무대 안과 밖을 수시로 보여줌으로써 영화와 연극, 스크린 안과 밖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관객은 영화를 봄과 동시에 연극도 보고 있는 셈이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틀이 계속 낸시의 환영을 보는 이유도 '제2의 여인'이라는 연극을 연기하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녀 스스로 자신의 늙음 즉, 제2의 여인이 되는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초반부터 머틀은 17살 때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내레이션으로 이야기하면서 젊었던 시절에 대해 회상한다. 자신의 사인을 받으러 온 낸시에게 나이를 물어봤을 때 그녀가 17살이라고 대답하자 머틀은 낸시를 오랫동안 쳐다본다. 자신에게도 존재했던 17살의 모습을 이제는 떠나보내줘야 할 때, 이제 더 이상 본인은 제1의 여인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란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지만 특히 여배우인 머틀 고든에겐 더 힘든 일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진행되는 공연이 사라가 집필한 대본대로 진행되지 않고 머틀의 해석대로 조금씩 변주되어 공연이 진행되는 것은 어쩌면 수동적이었던 머틀이 지나가버린 제1의 여인을 떨쳐버리고 제2의 여인을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음을,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준비가 되었음을 관객에게 자신의 연기로 당당하게 선포하는 것일 것이다.  


'(...)낸시는 머틀에게는 갱년기 이전, 그녀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대표하던 그녀의 내적 자아이자 그녀가 은밀히 품고 있는 자아 이상이다. 교통사고에 의한 낸시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녀의 자아 이상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사고는 머틀 자신이 그녀 자신의 제 1의 자아와의 결별 속에 어떻게 새로운 제 2의 여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자신의 자아가 분열되고 있다는 머틀의 점진적인 인식에 수반되는 모호하지만 강렬하고 광범위한 불안의 표현은 영화의 전체 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전시된다. 카메라의 갑작스런 움직임을 통해 드러나는 머틀의 내적 혼란과 공허한 상황, 낸시의 환영이 갑작스레 출몰하고, 머틀은 자아의 심한 파편화 현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더 이상 그녀 자신이 연극의 주도적 인물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실감과 자존감의 추락, 그리고 전적으로 무의미하다는 느낌 속에 그녀는 끊임없이 방황한다. 어떤 의미에서 불안은 자신과 혹은 타자와의 교류 속에서 조용히 안정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던 존재감 을 한 순간 혼란케 하는 소음과 같은 것이다. 그녀의 첫 장면의 공연이 드러내는 사실은 약간의 불안의 심리 상태 속에 그녀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녀는 그래도 비교적 안정된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의 보여주기에 있다. 그런데 낸시의 사고이후 그녀는 심리적 고통에 힘들어 하고 있다. 그래서 머틀은 지속적으로 움직인다. 죽은 낸시의 집으로, 술집으로, 그리고 모리스의 방으로 그리고 거리를 헤매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적 이동의 과정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그녀의 내적 공간은 낸시로부터 비롯된 어떤 대상의 상실로부터 지독한 공허함 속에 빠져 있다. 더 이상 그녀의 애착의 대상은 존재하지 않은 채로 영화가 보여주듯이 낸시의 유령 속에 그녀는 흔들리고 있다.  머틀은 그러한 자기의 해체에 의해 야기된 공포들을 언어화함으로써 자신의 자기 상태의 변화에 대한 인식을 표현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인사불성으로 취해 공연의 현장에 도착해 ‘제2의 여인’ 공연에 참가하면서 점차적으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저항들을 극복해내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서서히 자기의 회복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은 명확한 자기의 드러냄의 과정이라기보다는 자기의 유한성을 서서히 자신에게 설득하는 과정이자 자신의 변화자체를 인내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동료들과의 집단적 작업과 지지 속에서 그리고 연극의 버지니아처럼 새로운 제 2의 자아를 다시 찾아내고 그 속에서 다시 그 자아와 소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오프닝 나이트 Opening Night>를 통해 본 자기애, 윤학로 · 정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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