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5억 원의 아파트 매매 계약을 했다. 인생 첫 계약이었다.
그 집을 본 날, 매도자는 계약금과 중도금을 빨리 처리해주면 매매가의 천만 원을 깎아주겠노라- 했고, 부동산 중개업자는 우리 말고도 이 집에 눈독 들이는 신혼부부가 또 있으니 매수를 할 거면 “빨리 계약하라”고 압박했다. 실제로 집을 보고 나가는 길에 다음 사람이 연달아 보러 오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으니, 계약을 유도하기 위한 거짓말 같진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상황이 ‘당장 집을 사라’는 신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그 날 우리는 덜컥 매매 계약을 했다.
쫓기듯 한 계약이었지만 그 전에 수많은 아파트의 가격을 비교해보고 여러 차례 임장까지 한 후 내린 결정이기에, 당시엔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매도자 우위인 시장 분위기에 무려 천만 원을 깎았으니 훌륭한 네고를 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 멍청한 생각이었다.
우리의 선택엔 큰 구멍이 있었다. 바로 등기부등본을 살펴보지 않은 것(다시 생각해도 너무 말도 안 돼서 소름 끼침.) 아파트 계약 전 등기부 체크는 필수인데 우린 이 중요한 확인 작업을 스킵한 채 아파트 매매 계약을 한 거였다. 뒤늦게 등기부를 열람하며 우리는 뜨악할 수 밖에 없었으니. 그 집은 근저당이 70% 잡혀있었으며 무려 5천만 원의 가압류까지 들어와 있었다.
정리하자면,
- 아파트 매매가는 5억 원인데
- 근저당이 70% (=3억 5천만 원)
- 가압류는 약 5천 3백만 원
대충 심플하게 설명하면 5억짜리 집에 빚만 약 4억이라는 이야기.
이런 경우, 매도자는 매수자에게 계약금+중도금만 받은 채 근저당을 풀지 않고 잠적해버릴 수도 있으며, 추가 가압류가 들어오면 집이 경매에 넘어갈 가능성까지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위험한 계약을 하는 것도 모르고 ‘천만 원이나 깎았다니 대박이다’ 생각하며 바보같이 웃는 낯짝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갈긴 것이다.
중개업자를 통해 매도자에게 우리의 우려를 전달했더니 그들은 아주 불쾌해 했다고 했다. 근저당이 많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사기꾼으로 보냐며, 젊은 신혼부부에게 돈 천만 원을 깎아주며 좋은 마음으로 매도하려 했는데 어처구니가 없다는 식이었단다.
난 화도 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매도자가 한 그 말이 모두 진심이기를, 그들이 우리에게 나쁜 짓 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뿐이었다.
등기부 열람 후, 잔금을 치르기 전날까지 악몽에 시달렸다. 매수하려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 버리고, 우리는 전 재산을 날린 채 결혼에 실패하고 서울 거지가 되는 꿈.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잔금을 치르는 그 날까지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집의 주인은 우리가 되었으며, 덕분에 나는 그 날의 기록을 이렇게 여유 있게 남기고 있지만.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나 자신이 너무 멍청해서 헛웃음이 나온다.
여튼, 그 경험으로 얻은 결론은
1. 집 계약은 마음이 급하다고 섣불리 해서는 안 된다
2. 선 등기부 열람, 후 매매 계약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3. 부동산 중개업자가 모든 걸 챙겨줄 것이라 생각하면 아니 된다 (일반적으로 중개업자가 등기부 열람을 먼저 확인해주지만, 내 경우처럼 놓치는 사람도 있다. 그럼 그 피해는? 오롯이 매수자의 몫이다)
4. 결론 : 부동산 계약에 필요한 건 신의 가호가 아니라 신중하고, 꼼꼼하고, 똑똑한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