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고양이는 왜 화장실을 잘 가릴까?
감자는 씨알이 굵은 걸로 두어 개, 맛동산은 토막 난 것까지 포함해 서너 개 정도를 캘 수 있다. 이렇게 캐낸 오늘의 수확물로 남이의 건강 상태가 큰 문제 없는지를 확인한다. 그렇다, 매일마다 캐야 하는 감자와 맛동산은 남이가 마실 물을 가는 것과 함께 꼭 해야하는 남이의 화장실 청소를 의미한다.
화장실에 깔린 모래가 소변을 만나 덩어리가 된 모양새가 감자를, 과자 맛동산과 혼동할 정도(일리가 없지만)의 크기와 모양을 가져 맛동산이라 부른다는 사실은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당연히 알지 못했을 거다.
고양이의 소변과 대변에 감자와 맛동산이라는 표현을 붙인 이는 도대체 누구일까. 옛날 임금님의 대변에 ‘매화' 소변에 ‘우(雨)’라고 불렀던 것처럼 고귀하신 고양이님 또한 같은 표현이라도 귀엽지 않으면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불문율이 있을지도.
배변 훈련이 필요한 개와 달리 대부분의 고양이는 화장실을 기똥차게(오늘의 글에 참 잘 어울린다.) 잘 가린다. 산책을 하며 마킹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지나온 길이나 영역을 구분하는 개와 달리, 고양이는 철저하게 배설물을 숨긴다. 이는 자신의 흔적을 숨겨야 적으로부터 공격을 피하고, 사냥할 때 유리한 타고난 본능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고양이는 볼일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모래를 파서 배설물을 묻는다. 이 논리대로라면 남이도 화장실을 처음부터 잘 가려야 했다. 하지만 남이는 집에 오고 며칠이 걸렸다. 남이가 아닌 나 때문이었다.
고양이를 키우기 위한 몇 가지 준비물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모래(고양이 화장실)다. 길에 있는 남이를 데리고 와 키울 것이라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나는 미처 모래를 준비하지 못했다. 어찌저찌 어설픈 확신으로 남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그 날, 개천절을 낀 연휴로 근처 동물병원은 모두 문을 닫았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모래는 적어도 2~3일 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 사이에 별일 있겠느냐는 대책 없는 생각은 남이에게 화장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게했다.
병원에서 데려온 새끼고양이는 케이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단 그사이에 임시화장실을 만들었다. 모래 대신 집 주변의 무가지 신문을 모아 죽죽 찢어서 박스에 깔아서. 지금은 그때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때의 나에게 뛰어가 멱살을 잡고 정신 차리라고 흔들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때는 정말 그걸로 될 줄 알았다. 토끼를 키울 때, 개를 키울 때 그랬으니까. 하지만 남이는 토끼도 개도 아니었다, 무려 고양이’님'이시기에 이 새끼고양이는 신문지 화장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렇게 선택받지 못한 신문지 화장실 대신 남이가 선택한 건, 나의 침대였다. 지금도 침대의 어떤 점이 남이의 배변 욕구를 건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퇴근 후 자취방 문을 열었을 때, 코끝을 자극하는 강력한 냄새와 함께 침대 위에 있던 맛동산을 처음 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고양이가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모래에 파묻는다고 말했던가. 아무래도 배설물 냄새가 독하단 사실을 자각하고 확실하게 숨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랬던 것일지도.
개든 고양이든 자신이 볼일을 본 곳에 기똥차게(다시 봐도 잘 어울린다.) 다시 볼일을 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이불을 들고 근처 코인세탁방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깨끗하게 빤 이불 위에 큰 수건을 깔고 고양이가 싫어한다는 시트러스계열의 룸스프레이를 뿌렸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다음날 나는 같은 자리에서 어제와 동일한 맛동산을 만났다. 아, 데자뷰인가.
이불을 빤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신문지 화장실로는 남이가 만족할 수 없단 사실이었다. 공중화장실의 얇디얇은 1겹의 두루마리 화장지, 아니 신문지를 비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남이에겐 그저 불만이었다. 3겹의 보드랍고 은은한 향이 나는 화장지 정도는 되어야 남이의 배변 활동이 가능했던 것. 그 화장지가 내 침대였다. 2일 연속 이불 빨래를 한 나는 지인에게서 급히 모래를 하나를 얻고, 생활용품점에서 조그만 리빙박스를 하나 사 왔다. 더 큰 화장실과 더 좋은 모래가 오기 전까지만 이용해 달라고. 아직도 내외 중인 남이를 조심스레 들어 화장실 안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조그마한 발을 잡곤 모래를 꾹꾹 밟아줬다. 어때, 남이야. 이 정도면 2겹 화장지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니?
나의 이 간절하고 애절한 마음이 남이에게 전해진 덕분인지 퇴근 후 침대 위엔 맛동산과 소변 자국을 발견할 수 없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여다본 임시 화장실에서 나는 처음으로 알감자와 미니 맛동산을 캤다. 이렇게 작은 고양이가 화장실 바뀐 걸 알아채고 정확히 그곳에 볼일을 보다니. ‘우리 애가 이렇게 천재입니다'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남이는 그 후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볼일을 본 적이 없다. 물론 남이의 쾌변을 위해 더욱 좋은 모래, 더욱 큰 화장실을 준비해 바쳤다. 그 마음을 알아준 남이도 화장실의 크기와 모래의 종류, 때론 위치가 바뀌어도 새로운 화장실에 한 번에 정착했다. 변비 한 번(그렇다, 고양이도 변비에 걸린다.) 걸린 일 없이 쾌변을 보는 남이 덕분에 감자와 맛동산을 캐는 번거로움은 매번 안도감으로 바뀌곤 한다.
아무튼 고양이님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조선시대 상분직(嘗糞職)이 된 것처럼 매일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
<초보 집사의 참고 영상>
고양이 소변 냄새 지독한 이유와 올바른 세탁법 / 오드캣스토리
https://www.youtube.com/watch?v=TvbBdFMIlhg&t=18s
고양이 소변은 ‘농축액'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냄새가 그 모양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