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 속의 선(線)이 현실이 되기까지

2010년 맡았던 프로젝트 16년뒤 승객이 되어 마주한 20분의 기적

by Steven Park

수서에서 평택으로 향하는 경전철 좌석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0여 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차창 밖 풍경이 빠르게 흐르는 동안, 나는 쾌적하고 빠른 속도에 감탄하는 승객인 동시에, 16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 명의 엔지니어가 되어 있었다.


​오늘, 나는 난생처음으로 내가 업(業)으로 삼고 있는 결과물을 '승객'의 입장에서 타보았다.


​2010년 겨울, 그리고 공정관리(Project Control)의 시작
​시계를 16년 전으로 되돌려본다. 내가 처음 공정관리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은 2010년 말이었다. 플랜트와 건설이라는 거대한 세계 앞에서 나는 모든 것이 낯선 상황이었다. 그때 내게 주어진 첫 번째 프로젝트가 바로 '경전철' 사업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경전철은 낭만적인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천, 수만 개의 액티비티(Activity)가 얽히고설킨 'WBS(작업 분류 체계)'였고, 붉은색으로 표시된 숨 막히는 'Critical Path(주공정선)'였으며, 매주 업데이트해야 하는 수많은 데이터와의 싸움이었다.


​땅을 파고, 구조물을 세우고, 레일을 깔던 그 치열했던 현장의 도면 속에서, 기차는 달리는 실체가 아니라 맞춰야만 하는 '납기(Due Date)'였다. 그렇게 치열하게 첫 프로젝트를 마쳤지만, 정작 나는 그 이후로 16년이 지나도록 내가 관리했던 그 시스템을 한 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20분, 그 짧은 시간 속에 담긴 16년의 무게
​오늘 수서에서 평택으로 가는 길, 나는 비로소 엑셀 표와 P6(공정관리 프로그램) 화면 밖으로 나온 '진짜 경전철'을 마주했다.


​일반 승객들에게 이 20분은 그저 '빠르고 편한 이동'일뿐일 테다. 하지만 나에게 이 시간은 남달랐다. 덜컹거림 없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승차감 뒤에 숨겨진 수많은 시행착오, 1분 1초를 단축하기 위해 현장에서 땀 흘렸을 동료들의 노고, 그리고 무엇보다 공정관리자로서 일정을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16년 전 나의 치열함이 스쳐 지나갔다.


​"참 편하네. 정말 금방이다."
​옆자리 승객의 무심한 한마디가 훈장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밤새워 관리했던 공정률(Progress)이, 수없이 수정했던 스케줄이 결국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을 아껴주는 '편리함'으로 치환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플랜트 공정관리자(Scheduler)로 산다는 것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건설과 플랜트 현장의 시간을 조율하는 공정관리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때의 경험은 이제 후배들에게 공정표를 가르치는 위치가 되었고, 다루는 프로젝트의 규모도 커졌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가 모니터 앞에서 씨름하는 그 수많은 데이터와 선(Line)들이 결국은 현실 세계에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실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탑승은 나에게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16년 전 풋내기였던 나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앞으로도 수많은 프로젝트의 시간을 지휘해야 할 나에게 주는 확신이었다.
​수서에서 평택까지 20분.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지난 16년의 커리어를 여행했다.
​도면 밖으로 나온 나의 첫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훨씬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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