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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아버지

4코스(표선→남원) 1

by 커피소년

우리는 목적지를 잃어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여정이다.

수잔 손택


걸을 때마다 항상 올레의 의미를 생각다. 주로 제주 해안을 도는 길에 큰길과 집을 잇는 작은 길인 올레로 이름을 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어디를 찾아도 설명은 없었다. 결국 올레의 의미를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의미는 설명이 아니라 해석이 되었다. 경험이 매번 다르니 해석 또한 달랐다. 이번에도 다를 것이다. 수잔 손택의 말이 이번 올레의 해석이 될까?



<개화산 랜드>


또 머물렀다. 개화산 랜드 사우나. 새벽 비행기라 어쩔 수 없었다. 지난번처럼 수면실에 코골이들이 없기를 바라며 들어갔다. 몇몇이 있었지만 다행히 코를 골지 않아 조용히 잘 수 있었다. 딱 한 번 모기가 귀찮게 윙윙거렸지만 한 번의 손놀림에 사라졌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샤워하고 따릉이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5시 10분. 그 시간에도 사람들은 많았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까지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 커피로 그 시간을 메웠다.


<김포공항 새벽하늘에 떠 있던 달>

세 번째 올레길이었다. 첫 번째는 무척 들떴고, 두 번째는 한 번 다녀왔다고 들뜸은 잠잠했다. 그래도 걸을 길에 대한 기대는 여전했다. 이번엔 그런 기대도 없었다. 그냥 걸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준비도 치밀하지 않았다. 숙소조차 떠나기 며칠 전에 숙제하듯 예약했다. 그래도 날씨는 검색했다. 4박 3일 중 셋째 날에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드디어 비를 맞고 걸어보나? 실망보단 작은 호기심이 잠깐 반짝이다 사라졌다. 고민은 날씨가 아니었다. 코스였다. 첫 번째 올레에서 끝난 3코스를 이어 4코스부터 순방향으로 시작할지, 두 번째 올레에서 끝난 15코스를 이어 14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을지 결정하지 못했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4코스로 이끌었다.


두 달 동안 소설을 5번 읽었다. 형식적으로 무척 흥미로웠다. 형식을 통해 내용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러나 형식의 탐구는 매번 실패로 끝났고 그럴수록 이해하고픈 갈증은 더해갔다. 그 사이 소설은 나와 밀착되어 있었다. 소설에 나온 P 읍은 표선면이었다. 표선면에는 표선해수욕장이 있고, 근처에 4코스의 시작점이 있다. 이번 올레의 시작 코스는 이렇게 결정되었다.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탐승하고 바로 잤다. 간간이 잠에서 깨 창밖 아래로 떠 있는 하얀 구름과 육지의 건물들과 바다 풍경을 잠시 보다 다시 잤다. 짧았지만 잠은 충분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고 바로 아침밥을 먹은 후 버스 정류장에 갔다. 야자수와 HELLO JEJU라는 글자가 변함없이 반겨주었다. 버스 전광판에 표선으로 가는 버스 121번이 표시되지 않았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올레 안내센터로 갔다. 표선행 버스는 7시 55분에 떠났고 다음 차는 9시 10분이라고 했다. 그때가 8시 10분이었다. 걷기도 전에 낭패감이 들었다. 아침을 안 먹었다면 충분히 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올레길의 암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멀리 했다. 안 좋은 느낌은 단지 해석일 뿐이다. 이 일은 다음 일에 나쁜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이번 올레 전체에 불행의 기운을 드리우는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내 잘못이었다. 떠나기 전 버스 시간을 검색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난 어떤 이유에서인지 검색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손을 놓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자주 다니는 시내버스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지금은 선택하면 되는 일이었다. 1시간을 기다렸다 다음 버스를 타거나 바로 택시를 타고 가거나. 4코스가 19Km, 5코스는 13.4Km로 총 32.4Km였다. 당연히 택시였다. 빨리 시작해야 했다.


표선해수욕장까지 40~50분 정도 걸렸다. 제주시를 빠져나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후부터 막힘없이 달렸다. 그동안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지나는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택시 기사는 나를 위한 배려였는지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아버지가 떠오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4월 초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보았던 그 회색 눈동자가 잊히지 않는다. 검은 눈동자가 생기의 호수인 듯 검은색이 회색으로 변하자 생기는 증발 해버렸다. 의사는 의식은 없지만 그래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르니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순간 당황해서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한때 아버지를 매우 증오했다.


고 3 반 배정 날, 자퇴한 날 위로해 주는 친구들과 함께 교정을 내려올 때 보았던 파란 하늘과 교문. 쇠를 깎아 과학교구를 만들던 영세한 공장 실내에서 희미하게 빛난 백열전구. 일을 끝낸 후 집으로 가지 않고 대학로에서 방황하다 중간고사를 끝내고 놀던 친구들과 우연히 만났을 때 말이 안 나와 당황하며 바라봤던, 가로등 불빛에 은은히 물든 은행나무. 같은 시기,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여동생이 어머니와 함께 다녔던 집 근처 봉제공장의 철문. 빚쟁이가 찾아온 날 ‘집에 없다’라고 시키고 아버지가 숨어들었던 단칸방 다락방의 작은 문. 어머니와 심하게 싸워 보다 못한 내가 말리려 아버지와 몸싸움할 때 방바닥에 뒹굴던 물건들. 어느 다방에서 아버지와 그 옆에 짙은 화장의 낯선 여자 그리고 파르르 떨던 나 사이에 놓였던 갈색 테이블. 아버지가 죽기를 매일매일 간절히 빌며 집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교회의 십자가. 자살하러 간 경포대에서 본 시시포스 같은 하얀 파도. 너무도 공부가 하고 싶어 검정고시를 거쳐 합격한 대학의, 어머니가 여러 지인에게 빌려서 마련해 주신 입학금. 전액 장학금만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어서 공부를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머물렀던 대학 도서관. 대학원 진학을 이야기했을 때 침묵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한 아버지 어깨너머에 보였던 꺼진 검은 화면의 TV.


<택시 창밖 풍경>

그때의 은유 같은 사물들이 뭉그러진 풍경 속에서 뚜렷하게 다가와 뒤로 사라졌다. 눈물이 났던가? 칠팔 년의 고통스러운 폭풍의 시간이 지나가고 일상적인 가족의 풍경으로 돌아왔을 때 여전히 아버지가 용서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조용히 그 풍경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최소한의 자식 도리만 하자고 선을 그었다. 두 번의 암 수술, 이명, 이유를 알 수 없는 여러 갈비뼈의 골절. 그리고 끝내 거동할 수 없어 입원한 요양병원. 입원 7개월 만에 맞이한 갑작스러운 죽음의 순간이었다.


그 시절의 증오는 들끓은 마그마 같았다. 화산 폭발로 마그마는 용암으로 흘러내려 서서히 식으며 딱딱하게 굳어가듯 1991년 경포대의 가을 바다에서 증오는 폭발했고 이후 잦아들었다. 그리고 마음도 딱딱하게 굳어갔다. 다양한 무늬가 새겨진 예측할 수 없는 모양으로 용암은 굳어가지만 그 증오는 마음에 짙은 어둠을 내려 그 흔적을 볼 수 없게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의 귀에 어떤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당혹스러웠고 부담스러웠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정말 힘들게 한마디 했다. “좋은 곳으로 가세요”라고. 아주 메마른 마지막 인사였다. 와이프와 어머니가 울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서야 심박동 그래프는 수평이 되었다. 미래의 어느 날에 이 순간을 후회할까?


장례가 끝나고 지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기력이었다. 해야 할 일들을 계속 미뤘다. 시간에 쫓기면 어쩔 수 없이 했다. 올레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와 숙소의 예약도, 코스 결정도 미뤘다. 그러다 급하게 잡았다. 머리는 빨리 하라고 조급하게 말했지만 마음은 어둠에 잠겨 움직일 수 없었다. 제주 공항에서 버스를 놓친 것도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견뎌야 했다. 두 가지에 의지하며 견뎠다.


<표선 해수욕장>

어느새 택시는 표선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각성이 필요했다. 커피를 마셔야겠다.


(2025.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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