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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표선해수욕장, 거우개

4코스(표선→남원) 2

by 커피소년


택시에서 내리자 백사장이 보였다. 표선해수욕장이었다. 커피를 뒤로 미루고 그곳으로 갔다. 새벽에 물이 빠졌는지 해변 곳곳에 흔적처럼 물이 고여있었다. 표선해수욕장은 호 모양으로 내륙으로 들어와 있다. 그래서 해변은 밀물에 바닷물이 채워지고 썰물에 백사장이 드러난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세천리 사람들이 끌려와 학살당한 해변이 이곳이었다. 썰물로 드러난 한낮 백사장에서 학살이 자행되었고 바닷물에 실린 시체들은 밤새 썰물로 바다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시 드러난 백사장에는 전날의 피 묻은 흔적은 없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해변이었다.


... 다음날 새벽에 내가 우리 아기를 업고 아빠 몰래 바닷가로 갔습니다. 떠밀려 온 젖먹이가 꼭 있을 것 같아서 샅샅이 찾았는데 안 보였어요.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옷가지 한 장 신발 한 짝도 없었어요. 총살했던 자리는 밤사이 썰물에 쓸려가서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습니다. 이렇게 하려고 모래밭에서 죽였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해변 근처 집에서 목격한 이의 증언, p226)


<좌 : 표선해수욕장 항공사진, 카카오맵 참조 / 우 : 표선해수욕자>


그 해변을 보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 남자가 아직 젖어있는 해변을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할까? 가시리가 있을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중산간이라 멀리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건물만 보였고 그 뒤로 모든 것은 하늘로 수렴되었다.


한라산과 해안지역을 연결하는 해발 200~600m 사이의 지역을 중산간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10만 년에서 3만 년 사이의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지형이 발달해 있다.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은 흐르며 식어서 오름과 곶자왈 그리고 벵듸라는 지형이 되었다. 용암이 만들어 낸 산이 오름이고 숲은 곶자왈이다. 곶자왈은 숲을 의미하는 ‘곶’과 나무, 덩굴, 암석이 뒤섞인 곳을 의미하는 ‘자왈’의 합성어다. 벵듸는 용암이 만들어낸 초원으로 ‘나무는 없고 잡풀만 우거진 거친 들판’을 말한다. 중산간은 평지보다 높으니 해변에서 그곳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생각했다. 거리를 생각하지 못했다. 멀리 있으니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새가름 위치>

소설의 인선 집과 아버지가 살았던 폐촌은 중산간의 새천리로 설정되어 있고, 세천리는 표선면 가시리 새가름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시리는 4·3 당시 노형리(538명), 북촌리(446명)에 이어 421명으로 3번째로 많은 양민이 학살당한 곳이다. 당시 새가름은 50여 채의 집에 200여 명이 살았으나 1948년 11월 15일에 토벌대가 마을에 불을 지르며 사라졌다.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 새가름’으로 비석에 글자로만 존재한다. 18코스에 있던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이 떠올랐다. 그곳은 불타버리고 남은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4코스 시작점 간세로 갔다. 시작 스탬프는 작년 4월, 3코스를 끝냈을 때 종점 스탬프와 함께 찍었다. 뒤에 있는 올레 공식 안내소에서 이번에 걸을 코스들의 와펜을 한 번에 다 샀다. 총 7개였다. 이번에도 하루에 두 코스씩 조금 무리하며 걸을 예정이다. 마지막 날만 오후 4시 비행기라 한 코스만 걷는다. 매번 하루에 두 코스씩 걸다 보니 당연시되어 코스를 줄일 수가 없었다. 그만큼 여유는 이번에도 없을 것이다. 이것도 성격이라면 성격이다. 와펜을 사고 옆에 있는 CU에서 에너지바와 1000원짜리 커피를 샀다. 커피를 잠시 마시며 짧은 여유를 가졌다. 하늘을 보았다. 무결하게 파랬다. 저렴한 커피에 택시 안의 감상을 녹여 마셨다. 올레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그 감상은 회상으로 어느 순간, 길 위에 펼쳐질 수도 있다. 그러면 그런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배낭을 메고 걸었다. 파란 화살표가 보인다. 길은 골목으로 꺾였다.


음식점들의 골목을 지나면 화살표가 작은 공원을 가리켰다. 공원을 가로질러 나오면 항구의 삭막한 콘크리트 바닥이 넓게 펼쳐졌다. 표선항이자 당케포구였다. 오래된 이야기에 의하면 포구는 물속에서 퍼 올린 흙으로 제주도를 창조했다는 설문대할망이 만들었다고 한다.


아주아주 오래전, 당케포구 근처에 폭풍우가 들이칠 때면 파도가 밀고 들어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곤 했다. 마을 주민들은 설문대할망에게 빌었다. 마을을 지켜달라고. 설문대할망은 포구를 만들어 주면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런 설문대할망을 기리기 위해 모래밭 끝머리에 할망당을 지었다. 할망당은 호를 그린 표선해수욕장의 오른쪽 끝, 해양경찰서 표선출장소 뒤에 있다. 당케포구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당케’는 ‘당이 있는 케(경작지)’라는 의미인데 ‘당’은 설문대할망을 기리는 ‘할망당’을 가리킨다. 당케를 처음 들었을 때 ‘감사합니다’라는 독일어‘Danke'가 먼저 떠올랐다. 설문대할망에 대한 감사라고 억지로 연결도 해보았다.


<당케포구, 멀리 하얀 등대가 보인다>

콘크리트 바닥 끝에서 왼쪽으로 방파제가 길게 뻗어있고 그 끝에 하얀 등대가 하나가 서 있다. 이곳은 하얀 등대, 포구를 드나드는 통통배 그리고 일출의 바다 풍경이 하나로 어우러져 해돋이 명소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근처에 해비치 리조트가 있다. ‘해비치’는‘해가 처음 비추는 곳’이라는 의미다. 표선해수욕장도 표선해비치해수욕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제주에서 이곳이 일출을 맨 먼저 볼 수 있는 곳일까? 아니면 해돋이 명소라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일까?


<불턱>

콘크리트 바닥 끝쯤에 해녀들의 공동체 공간인 불턱이 있고 이곳에서 길은 오른쪽으로 꺾였다. 현무암들과 거의 땅에 붙은 식물에 의해 검은 무늬가 그려진 초록 카펫 같은 넓은 벌판이 펼쳐졌다. 거우개였다. 카펫의 가장자리에 하얀 술이 길게 달려있듯 거우개는 바다로 향한 가장자리에 술처럼 검은 현무암들이 바다와 만나 길게 이어졌다. 그래서일까? 해안선과 면해 있는 풍경이 포구처럼 보여 거우개로 불렸다고 한다. ‘거우개’에서 ‘개’는 포구를 의미한다(15코스 영등할망 신화공원이 있던 ‘복덕개’도 포구다). 그러나 ‘거우’는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지난날, 이곳은 소금을 생산했던 염전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했을지 궁금했다. 종달리의 가마솥 방식인지, 구엄포구의 돌염전 방식인지, 애월 배무숭이의 소금물밭 방식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염전인지. 이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다. 아직도 염분은 남아있을까? 저 초록을 보면 염분은 시간에 많이 희석되었나 보다.


<거우개>

초록 속에서 헤매지 말라고 검고 작은 현무암들이 일정한 간격의 두 줄로 나란히 길을 안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벌판에 갇힌 연못이 오른쪽에 고여있고 돌탑, 돌조각상, 돌무지들이 평면의 길에 작은 입체감을 주었다. 길의 끝쯤에 작은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2층의 정사각형 돌무지가 있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쌓아 놓은 것 같았다. 1940년대 일본이 해안선을 지키기 위해 망을 보았던 망대였고 이 주변을 자위대 동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내가 망대를 사진을 찍는 사이 한 남자가 휙 지나갔다. 거우개 중간쯤에서 뒤돌아보았을 때 거우개 초입으로 들어서고 있었던 그다. 빠른 걸음이었다. 각자의 이유와 그에 따른 속도로 가는 것이다. 내 속도로 걸었다.


<거우개>
<망대와 등대>

거우개를 벗을 날 때 뒤돌아봤다. 하얀 등대가 검은 현무암의 밭을 딛고 엷은 파랑의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단단히 서 있었다. 멀리 통통배가 바다에 점처럼 부유했다. 거우개를 봤다. 검은 현무암과 초록의 식물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넓게 펼쳐져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눈에 띄는 망대 때문인지 현무암에 대한 짧은 생각이 들었다.


검은 현무암은 지질학적 시간 동안 한 곳에서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그 지질학적 시간에 사람의 시간이 덧붙어 흐르며 시간은 하나하나 매듭지어져 역사가 되었다. 매듭들은 현장에 있던 현무암의 구멍에 스몄다. 여기 거우개에도 검은 현무암들이 널려있다. 그 구멍에 스민 역사들을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늘 걸으며 보았던 염전의 현무암과 망대로 쌓인 현무암을 통해 삶의 고됨과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생각하며 역사의 두 매듭을 살짝 엿보았다. 역사의 현장을 피할 수 없는 현무암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풀들이 다르게 보였다. 한 때 피고 지는 풀들이지만 초록의 풀들은 검은 현무암들 사이에 피어 그들을 어루만지며 그들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것이 메마른 듯한 풍경에서 따스함을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자위대 동산>

올레 순례자 두 명이 망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걸어야겠다. 길은 해안도로에 닿았다.


(2025.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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